반 고흐는 응당 모든 화가들 중에서 가장 진정으로 화가인 자로 남을 것이다. 작품이라는 엄정한 수단과 자신이 가진 도구라는 엄격한 틀로 한정되는 회화, 그 회화를 넘어서고자 하지 않았던 유일한 자.
또한, 자연에 대한 이 독점적 재현 속에서 반격의 힘, 심장 한가운데에서 끄집어낸 요소를 솟아오르게 만들기 위해, 자연을 재현하는 관성적 행위인 회화를 절대적으로 넘어선 유일한 자, 절대적으로 유일한 자. […]
내가 이 몇 줄의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반 고흐의 핏빛 붉은 얼굴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갈린 배 사이로 내장이 드러난 해바라기들이 성벽처럼 늘어서 있는 곳에서,
부연 히아신스와 보랏빛 청색 풀때기가 불똥을 튀기며 타오르는 장관 속에서.
--- p.74~75
반 고흐 그림의 격하게 몰아치는 빛은 우리가 그림에서 시선을 뗀 순간, 그 어둠의 낭송을 시작한다.
고작 화가일 뿐인, 단지 그뿐인 반 고흐,
철학도, 신비도, 의례도, 심리술도, 제식도 없이,
역사도, 문학도, 시도 없이,
그의 그을린 금빛 해바라기가 그려졌다.
--- p.76
연극은 / 인간의 해부학을 붙잡아 / 그것으로 삶을 치유하고 다스리는 / 상태, / 장소, / 지점이다. / 그래, 생生을, 그것의 흥분, 울부짖음, 꾸르륵댐, 텅 빈 구멍, 가려움, 홍조, 멈춘 순환, 핏빛 소용돌이, 피의 성마른 돌진, 기분의 매듭, / 회복, / 망설임까지도.
--- p.109
사람의 얼굴은 텅 빈 힘, 죽음의 벌판이다.
제 몸과 결코 어울리지 않았던, 몸이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했던 하나의 형태를 갈구하는 오래된 혁명적 요구. [...]
사실 사람의 얼굴은 제 얼굴 위에 일종의 영원한 죽음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으로부터 얼굴을 구해내는 것은 분명 화가에게 달린 일이다,
얼굴에 그 고유의 생김새를 돌려줌으로써.
--- p.119~120
오직 반 고흐만이 인간의 머리에서, 터져버린 심장 박동의 폭발하는 불꽃과 다름없는 하나의 초상화를 이끌어낼 줄 알았다.
바로 자기 자신의 초상화를.
중절모를 쓴 반 고흐의 머리는, 영원이 다 할 때까지 반 고흐 그 자신 이래로 그려질 수 있을 추상화의 모든 시도를 무화하고 불가능하게 만든다.
--- p.121
인간의 호흡에는 급변하고 부서지는 여러 음조가 있고, 비명과 비명 사이에서 그 전이는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이를 통해 불현듯 사물들의 몸 전체가 열리고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이러한 몸의 열림과 약동은 우거진 산림에서 산에 기대어 세워 둔 나무 한 그루처럼, 팔다리 중 하나를 받치거나 쓰러뜨릴 수 있다.
--- p.154
사회 내부에 조신하게, 또는 마지못해 통합되는 대신, 사회가 관성적 안정을 위해 마련한 갖가지 경계선을 교란하고 겉치레 아래 본색을 꿰뚫어보는 위험 분자들이 있다. 부르주아적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제도 그 자체를 뒤흔드는 의식, 사회를 향한 탐문 조사를 시도하는 우월하고 총명하며 통찰력 있는 의식, 어떤 틀에도 맞춰지지 않고 불거져 나오는 그 광포한 의식을 사회는 정신의학을 내세워 말도 안 되는 섹슈얼리티의 기준을 빌미 삼아 광인으로 명명하고 수감하여 치료를 빙자해 제압한다. “모든 광인에게는 이해받지 못한 천재성이 있다. 그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은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고, 삶이 그에게 마련해준 질식으로부터의 탈출구는 오직 광기에서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56쪽) 아르토는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광기로밖에는 표출될 수 없는 광인들의 천재성이 “반항적 자기주장의 약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인으로 규정당하는 의식의 주체, 진정한 광인으로 사는 주체는 사회의 갖가지 틀이 개인성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발휘를 좌절시키는 덫임을 매 순간 온몸으로 느끼기에, 또한 매 순간 온몸으로 사회와 불화하는 존재다.
--- p.184, 「옮긴이 해제」중에서
자신의 고통을 의학에 양도하는 것, 그렇게 존재 전체가 의학과 사회가 정한 신체적, 도덕적 표준 범주에 포섭됨으로써 사회와 타협하는 것, 그것이 ‘치료’된다는 것의 아르토적인 의미인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아팠으며 이 고통이 지속되기만을 바란다. 왜냐하면 생명이 결손된 상태는 내 넘치는 역량에 관해 ‘건강하기만 하면 됐다’라는 프티부르주아적인 포만함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범죄다.” 고통은 치료가 목적일 때는 의학과 사회의 대상이 되지만, 고스란히 겪어 내리라는 다짐 하에서는 자기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된다. 아르토는 말한다. “나는 내 고통의 주인이다.” 그에게 병은 하나의 상태다. 건강은 병든 상태보다 “더 추하고 비겁하고 치사한” 또 다른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 p.198-199, 「옮긴이 해제」중에서
“하나의 거대한 코스모스로서의 우주는 없습니다. 개개인은 오직 자기에게만 속하는 자기만의 세계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세계를 살아 있게 만듦으로써, 다시 말해 팔과 손과 다리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이고 빼앗길 수 없는 의지의 숨결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그 세계에 입문할 수 있습니다. […] 세상에 태양, 달, 별이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반 고흐가 열두 개의 촛불을 단 모자를 쓰고 밤중에 그림을 그리러 간 것처럼 각자가 스스로 자기만의 불빛을 밝히는 참된 세상에서처럼 행동하지 않고, 보편적 빛이라는 이 점에 관해 신이라 불리는 양아치 개념에 동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 외부의 자연이나 타인에게서 찾지 않아도 인간의 몸에는 충분한 태양과 행성, 강과 화산, 바다와 늪지가 있는데도 말이죠.”
--- p.207, 「옮긴이 해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