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는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 속한 인간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땅은 한치도 없다.”라고 말했다. 카이퍼는 영역주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크리스천 예술가들의 예술적 작업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그는 크리스천 예술가들은 예술적 작업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동시에 부패한 세계가 줄 수 없는 더 높은 실재를 이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p.42, 「기독교미술이야기: 예술과 세계관」 중에서
그동안 한국의 기독교 미술가들은 무엇을 성취했으며, 어떤 족적을 남겼을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기독교 정신에 따라서 창작 생활을 해온 작가들이 있었기에 이방 문화로 들끓었던 이 땅에 새로운 문화를 확립하고 ‘구속의 아름다움’을 제시할 수 있었다.우리는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가운데에 두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셨다. 교회의 무관심과 세속주의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예술가들이 문화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 p.79, 「한국 기독교 미술의 형성과 전개」 중에서
이 글은 운보와 혜촌이 예술가로서 마태복음 4장의 본문을 대면하고 묵상함으로 예술가의 시각으로 본문을 이해하고 해석한 작업의 결과로서 도출해낸 작품에 대한 도상학적 해석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발견한 특징들은 문자로 기록된 성경 본문의 시각화와 감정과 정서, 분위기를 반영하는 입체감과 생동감을 주는 요소들이다. 이는 이성과 논리의 차원을 뛰어넘는 감성적 영역에 속한 문제들임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 p.97, 「운보 김기창과 혜촌 김학수의 성경읽기와 그리기」 중에서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하는 로크마커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 시대에 무엇보다 시급히 요청되는 미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그라지는 회복의 불씨 살리기일 것이다. 인간이 창조하는 예술은 회복을 지향하려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한 유지되기 힘들다. 근대 및 현대미술이 가히 병적인 상태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던 로크마커는 상실한 중심, 잊히는 이상, 인간과 자연 등과 같은 예술의 본질적인 명제들을 제기하며, 정신성과 세계관의 부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미학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나섰다.
--- p.130, 「한스로크마커, 현대 개혁주의 미술사의 여명」 중에서
렘브란트와 샤갈이 주목했던 창세기 22장 본문은 그들 각자의 신앙과 삶의 배경 속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 작품에 반영되었다. 그들의 작품들 「이삭의 희생」의 도상학적인 분석을 통해 성경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렘브란트와 샤갈의 작품 속에 묘사된 시각적인 다양한 요소들은 성경의 내용을 더 구체화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본문을 더욱 풍성하고 생동감 있게 읽고 해석할 수 있었으며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 p.163, 「렘브란트와 샤갈의 ‘이삭의 희생’ 해석」 중에서
프로테스탄트 화가로서의 사명 의식을 지닌 헌트는 동시대인들의 가슴에 다가갈 수 있는 그리스도상을 창안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새로운 도상을 사용하거나 기존 종교화의 상징성을 가져와 주변 사물을 통해 정교한 상징의미를 전달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그가 형상화한 그리스도는 전통 경배화 속의 고통당하는 희생자나 이콘화의 준엄한 심판자가 아니라, 관람자 개인에게 직접 다가가 감정의 울림을 주는 친근한 그리스도이다.
--- p.184, 「윌리엄 홀먼 헌트: 세상을 비추는 종교화를 추구한 화가」 중에서
세상이 열광하는 ‘새로운 미술’에 대해 그리스도인들 조금 더 깊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 늘 새롭게 역사하셨던 성령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은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새로운 피조물’로의 삶을 살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상상력, 그 새로움과 창의성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태초에 천지창조로 끝난 사역이 아닌, 지금도 그분의 영이 각 그리스도인의 마음속 성전에서 일하고 계신다.
--- p.204, 「새로움, 미술과 창조적 영성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