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큰 키 때문에 항상 맨 뒤에 섰고 교실에서는 맨 뒷줄에 앉았다. 교실 뒤쪽에 앉으면 교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내가 그 세계의 일부로 느껴지기보다는 경계로 밀려나와 그 세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은 몹시도 자연스러워서 내가 원래 그 세계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생각나지 않았다. 어딜 가도 나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뒷자리를 찾았고 어느 집단에 가도 나는 아웃사이더가 될 재목이었다.
---「맨 뒷줄의 아이」중에서
나는 세상을 너무 조심조심 살아서 무슨 일에서도 팔을 끝까지 못 뻗는 사람이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숨을 헐떡이며 사람들에게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구나. 야, 정신 차려. 아마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종종 하는 말처럼 말이다. 그치만 그 사람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만났는데 정작 나만 만나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누구였을까」중에서
『솔라리스』를 읽은 것은 생각나지만 그 고립된 행성에서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갔다는 것 말고는 소설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도 않았다. 내 기억들은 가물가물 깜박이다 어딘가로 사라져 숨어버리거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한다. 시간에 휩쓸려 희미해지는 것 말고도 무언가가 우리 기억을 단박에 앗아 가는 일도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 내용이나 오래 만나지 못한 누군가의 이름 같은 것이 아니라, 나를 당신을 잊기도 한다는 것은 신비롭고도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잊혀져 완전히 사라지기도 할 터이다.
---「기억의 나무」중에서
그리고 나는 여전히 장차 무엇을 하겠다는 포부를 품거나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꿈을 꾸지 않고 산다. 내일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만 다음 달에 다음 해에 무엇을 할지는 생각할 줄 모른다. 그러는 대신 이렇게 하루를 살고 그것을 기록한다. 그리고 가끔은 공원의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햇볕을 쬐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때때로 바람을 맞으며 걷기도 한다. 그건 은퇴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거더라고.
---「이게 내 인생일까」중에서
나무와 함께 여기저기 옮겨 다니던 우리랑 좀 비슷한 데가 있었다. 나무를 키우면서도 한군데 정착하지 못했지만 이제 나무들을 땅에 심고 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여름씨 지인의 농장 이전 소식을 들었다. 나무는 어쩌고? 놀란 나의 물음에 여름씨는 너무 쉽게 대답했다. 파서 옮겨 심으면 되지. 그럼 우리도 언젠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나무를 파서 또 어딘가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거네? 나는 좀 싱겁게 웃었다. 나무를 심는다고 정착이 되는 건 아니었구나.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중에서
조선시대 문인 이옥은 담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연경(烟經)』이라는 책을 썼는데 담배 피우기 좋은 때를 모두 적어놓았다. 달빛 아래서 피우기 좋고, 눈이 내릴 때 피우기 좋으며, 비가 내릴 때 피우기 좋고, 꽃 아래에서 피우기 좋다. 물 위에서, 다락 위에서, 길을 가는 중에, 배 안에서, 베갯머리에서, 측간에서 피우기 좋다. 홀로 앉아 있을 때, 친구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 책을 볼 때,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붓을 잡고 있을 때, 차를 달이고 있을 때 좋다! 내가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다면, 감히 여자가 어디서 담배질이냐고 아무도 지랄하지 않을 때라고 적겠다.
---「이토록 유쾌(해)하고 친밀한 흡연」중에서
나는 소리보다 문자에 반응한다. 나는 오랫동안 문자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의 시민으로 살아왔다. 이 공화국의 시민은 공화국이라는 말의 의미 그대로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의사대로 문자의 세계를 살아간다. 이 공화국에는 국경도 없고 입국 심사 같은 것도 없다. 단지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좋아하기만 하면 이곳의 시민이 될 수 있다.
---「문자공화국의 시민(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