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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문보영
재단사들 다 주고 가버리기 적응을 이해하다 여행자의 트렁크 사람을 버리러 가는 수영장 오각형 도서관 손실 단조로운 빨래 직전의 물병 소원들 모자 구출하기 Part. 2 이소호 도시 건강 보감 1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도시 건강 보감 2 프리한 3.3% 직장인 소호 씨의 하루 개미는 뚠뚠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네 회사를 정주행하면 시름을 드려요 디프리 한 장 주세요 환상 교차로 상처 잇기, 잊기 Part. 3 오은 오전 7시 36분의 시 눈이기도 하고 비이기도 한 것 오전 11시 47분의 시 밝으니까 되었다 오후 1시 23분의 시 마음을 점치기, 마음에 점찍기 오후 5시 49분의 시 늘어질 때 늘어나는 것 오후 10시 37분의 시 딴눈으로 밤을, 뜬눈으로 아침을 Part. 4 황인찬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서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사람 잃어버린 천사를 찾아서 종말을 상상하지 못하기 미래 빌리기 때로 선생님을 엄마라고 잘못 부르기도 하지만 잃어버린 정신을 찾아서 왜 사냐건 웃지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슬픔은 텍사스 소 떼가 되고, 내 마음은 호수가 되고 |
저문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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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리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때문에 선잠을 자느라 나는 현실과 꿈 어딘가에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난 잠결에 백팩을 멘 승문원을 본 것 같다.
--- p.17 나는 이 층의 좁은 복도를 걸으며 유리 전시장 안에 꽂혀 있는 읽을 수 없는 책을 구경했다. 모두 포 르투갈어로 된 서적이어서 한 문장도 읽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읽을 수 없 는 책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일기 를 쓰고, 세상을 더듬거리는 것이 성 나자로 도서관 이 나에게 준 위로였다. --- p.34 자칭 ‘개인주의자’인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봐주고 있다, 라고 느끼게 하는 거였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가여운 예술가를 자신들이 거두어 먹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늘 자랑스레 떠들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지금은 코로나가 개인주의자 회사원들을 많이 구원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 p.78 프리랜서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밀물과 썰물. 그러니까 프리랜서와 디프리랜서. 나는 일반적으로 축복받은 프리랜서의 삶을 살지만 디프리랜서의 삶이 지속되기도 한다. --- p.90 그날부터 그는 빛과 가까워지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블라인드를 걷는 것이 되었다. 블라인드를 걷을 때면 빛살이 빛발이 되었다. 햇빛과 햇볕, 햇살과 햇발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를 휘감았다. 눈을 떠야 아침이라고 오랫동안 굳게 믿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횟수가 몰라보게 늘었다. 빛을 일찍 마주하고 싶었다. 몸에서 빠져나간 뭔가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밝을 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 p.125 혼자 있을 때는 적당히 숨기거나 적절히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억지로 외면했던 나 자신으로 살아도 되었다. 하루 만에 그는 적당히 게으르고 적절히 자유분방한, 원래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10년의 직장 생활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릴없이 꼿꼿하고 철두철미했던 그가 할 일 없이 느긋하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 상태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 늘어질 때 늘어나는 것은 ‘나로 사는 시간’이었다. --- p.140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물건들을 더는 쓰게 되지 않았을 때, 그건 다 어디로 갈까.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물건을 언제 어떻게 처분하는 것일까. 내 주변에는 장난감을 물려줄 만한 아이가 있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그 물건들은 그냥 버리는 것일까. 하지만 그냥 버리기엔 멀쩡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잃어버린 것들의 행방을 알지도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 p.157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호칭으로 타인을 부르느냐가 아니라 그 호칭을 통해 타인과 어떤 거리 감각을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리라. 일로 만난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서로를 존중하는 느낌이 들고, 이웃을 언니나 형 등의 가족 호칭으로 부르면 한층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호칭은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낯선 이들을 적극적으로 환대할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이 있을까. 그런 이름을 고민하는 미래가 우리에게 과연 찾아오기는 할까. --- p.177 |
일상을 벗어나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여행하기
갤리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때문에 선잠을 자느라 나는 현실과 꿈 어딘가에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난 잠결에 백팩을 멘 승문원을 본 것 같다. ―문보영, 「다 주고 가버리기」 부분 문학은 종종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 되기도 한다. 그 세계는 어느 정도 현실 같기도 꿈 같기도 한 장소다. 문보영은 짐을 꾸리며 독자를 여행에 동참시킨다. 존엄사 단체인 디그니타스를 방문하기 위해 유럽 여행을 온 친구 ‘소롱포’의 이야기, 그리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연상케하는 도서관과 입장하려면 비둘기 세 마리를 데려와야 하는 기이한 서점에 관한 이야기가 뒤섞이며 독자는 다양한 문학적 장소를 둘러보는 경험을 한다. 문보영과 함께 영감을 주는 가벼운 여행길에 올라보자. 직업인의 우울과 고통이 시가 될 때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봐주고 있다, 라고 느끼게 하는 거였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가여운 예술가를 자신들이 거두어 먹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늘 자랑스레 떠들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이소호, 「개미는 뚠뚠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네」 부분 이른 아침에 일어나 9시까지 출근하고 6시까지 일한 뒤 퇴근하고 밥 먹고 나면 깜깜한 밤인 세상. 제대로 쉴 시간도 부족한데, 출근하는 예술가들은 창작의 시간을 어디에서 짜내야 할까? 시간이 없다. 잠을 쪼개는 수밖에 없다. 이소호는 불면의 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전환하면서 직업인이 겪는 우울과 고통, 그리고 예술가의 불안을 녹여낸다. 시 「도시 건강 보감」, 「직장인 소호 씨의 하루」 등에서 그 부정의 감정을 위트 있게 형상화한 시인 이소호가 들려주는 사회인 이소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공감대가 어떻게 시로 변화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보통 사람의 보통 시간 속에서 탄생하는 시적 순간 하루 만에 그는 적당히 게으르고 적절히 자유분방한, 원래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10년의 직장 생활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릴없이 꼿꼿하고 철두철미했던 그가 할 일 없이 느긋하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 상태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 늘어질 때 늘어나는 것은 ‘나로 사는 시간’이었다. ―오은, 「늘어질 때 늘어나는 것」 부분 시는 평범한 일상의 어디에 잠들어 있는 것일까. 그러다 어떤 계기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일까. 오은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보통 사람의 보통 시간을 따라가며 시가 잠에서 깨어나려는 순간을 지켜본다. 눈을 뜨면 아침이라고 말하는 이, 눈을 떠야 아침이라고 말하는 이, 배꼽시계를 가진 이 등등.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평범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평범한 시간에 균열이 생긴다. 번아웃이 오는 줄도 모르고 성실하던 사람이 성실을 상실하는 순간 ‘내가 나로 사는 시간’이 깨어난다. 규칙이 깨지는 그 순간에 찾아오는 풍요와 자유는 시와 많이 닮아 있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시간이 아닌 보통 사람의 보통 시간 속에도 시가 깃들어 있고 깨어난다는 것을 오은은 말맛 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나간 시절과 우리의 마음에 깃든 이상하고 아름다운 장면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물건들을 더는 쓰게 되지 않았을 때, 그건 다 어디로 갈까.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물건을 언제 어떻게 처분하는 것일까. 내 주변에는 장난감을 물려줄 만한 아이가 있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그 물건들은 그냥 버리는 것일까. 하지만 그냥 버리기엔 멀쩡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잃어버린 것들의 행방을 알지도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황인찬,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사람」 부분 글과 기억은 서로를 통해 탄생하고 오래 남게 된다. 기억은 문학의 가장 소중한 양식이자 유산이다. 자신의 기억하는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사건과 사물을, 그때의 이야기와 감정을 돌아보는 것은 한 작가가 문학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이다. 황인찬은 세발자전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종말론이 파다했던 청소년기를 돌아본다. 그는 어릴 적 항상 착하다는 말을 들어왔다면서도,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한심한 인간이라고도 한다. “고백이랍시고 문학의 형식으로 자신의 한심함을 전시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잘 안다면서도 “결국 모든 문학은 고백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와 함께 우리가 이 시대에 잃어버린 것과 남기려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