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과 계향이 마주보고 앉아있다.
책상 위엔 김계향이라고 써 있는 펜글씨 책이 있다.
혜원 : 너 입술이?
계향 : 응?
혜원 : 쥐 잡아먹은 거 같아.
계향 : 이쁘지? 컨셉이야.
혜원 : 응.
계향 : 잘난 가족도, 잘난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면 무시당해. 너도 조심해.
혜원 : 난 결혼 안 할 거야.
계향 : 나도.
혜원 : 음…… 해도 가장 늦게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계향 : 그냥 확 50이나 60 될 때 해버려.
혜원 : 그럴까?
계향 : 넌 그 나이가 돼도 충분히 아름다울 거야.
혜원 : 혼자 사는 게 속은 제일 편하대.
계향 : 응. 남편은 내가 선택하지만 시댁은 랜덤이잖아. 내가 선택한 사람 때문에도 고달픈데 더 힘들어지면 어떡해. 시댁은 가족이 될 수 없고, 며느린 딸이 될 수 없어.
혜원 : 이쁜 정원을 열심히 가꾼 소녀가 있었대. 그런데 웬 토끼가 나타났고, 그 토낄 잡으러 사냥꾼이 나타난 거야. 그러다가 그 소녀가 아끼는 정원을 망치게 되었대. 소년 어려서 하지 말라는 말도 못했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대.
계향 : 우크라이나 침공 생각나. 설마 인어공주처럼 불쌍한 얘긴 아니지?
혜원 : 나 이야기 아직 안 끝났다.
계향 : 미안. 소녀는?
혜원 :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게 되었대. 그래서 다신 토끼가 나타나지 않게, 그리고 사냥꾼도 나타나지 않게 뒀고, 정원이 있는 집에서 이쁘고 행복하게 잘 살았대.
계향 : 강아지들이 정원 안 망치고?
혜원 : 응. 안 망치고.
계향 : 걔들도 아나 보다 소녀가 정원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혜원 : 응. 정원은 건드리지 않았대. 완벽한 소녀의 정원이지.
계향 :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커다란 거대 고양이가 살고 있었대. 엄청 오랜 나이를 산 고양이였는데 그 고양이가 사랑한 소녀가 있었대. 그 고양인 소녀에게 약속을 했대. 예쁜 계절에 말야. 비가 오나 꽃이 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에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거나 모든 계절을 함께 하겠다고. 그 소녀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는데 그 고양인 소녀가 사는 건물론 절대 들어가지 않았대. 소녀가 건물 밖으로 나오면 이따금씩 나타나 소녀 주변을 맴돌고 소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돌아갔대. 상처가 있었나봐. 아울거리며 뭔가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소녀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잘 가는지 따라다니면서 말이야. 그러다가 그 고양이가 사라졌대.
혜원 : 왜? 어디로 간 거야?
계향 : 좀 더 나은 미래가 있겠다 싶은 곳으로. 옛날 사람들은 내세를 믿었대. 근데 그건 남겨진 자에 대한 위로 아닐까?
손님 : 미안해 학생. 나 이거 주문해도 될까?
계향 : 아, 네. 플라워 에이드요? 알겠습니다.
혜원 : (플라워 에이드 티백이 담긴 물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얼음이 담긴 잔에 붓는다)
계향 : 드시고 가세요?
손님 : 응.
계향 :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혜원 : 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올빼미 두 마리가 있었대. 번갈아가면서 둘은 똑같은 얘기만 했대. 그렇게 7년이 지난 뒤 올빼미 두 마릴 발견한 고양이가 있었대. 고양인 올빼미들이 하는 대화를 듣다가 올빼미에게 이야기를 했대. “그 얘기 다섯 번짼데. 어? 또 하네?” 올빼미들은 그때 알게 되었대. 누군가 처음으로 거울처럼, 그리고 그림자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둘만의 세상에 처음으로 느낀 감정, 바로 친절함이었어. 고양인 그렇게 몇 번을 그 올빼미들이 있는 숲속을 지나가다가 피아노를 치게 되었대. 도돌이표가 들어간 올빼미들을 위한 음악을 말이야. 올빼미들은 그 음악이 너무 좋아서 계속 듣고 싶었대. 또 들을 수 있을까 하며. 올빼미들은 고양일 그리워했대. 이름도 모르는 그저 숲속을 몇 번 지나간 고양일 말이야.
계향 : 떨어진 별을 줍는 소년이 있었는데 꿈속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소녀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대. 소녀가 사는 세상은 파란 하늘에 커다란 구름이 있는 곳이었고, 소년이 사는 세상은 주황색 태양이 지는 공간이었대. 소년은 그곳에서만 잠을 잔대. 아주 짧은 잠을. 소년이 잘 땐 소녀가 꿈을 기록하고, 소년이 별을 주울 땐 소녀가 기도를 한대. 소망을 담은 아름다운 기도를. 눈물과 함께 별이 뚝 떨어지면 소년은 그 별을 주워.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만날 수가 없었대.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존잴 어떻게 알았냐고? 바람이 전해줬대. 태양이 전해줬대. 비가 내려 전해줬대. 둘은 거짓말 같은 얄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끝내 그게 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대. 별을 줍는 소년이 꿈을 기록하는 소녀에게 바랬던 건 소녀의 미소였고, 꿈을 기록하는 소녀는 별을 줍는 소년과 함께 구름 위를 산책하고 싶었대. 그러다 둘은 천둥이 치고 벼락이 96번 쳤던 6번째 해에 만나게 돼. 이쁜 모습으로. 그리고 둘은 영원히 함께 하자며 손을 잡았대. 둘은 구름 위를 산책했고, 소년은 미소를 지었대. 천둥과 번개가 걷히고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30분, 그 시간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사람들은 매직아워라고 부른대. 해가 지기 30분 전, 그 시간에 둘이 만나게 돼서 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으니까. 이 이야긴 하늘 위 새들이, 땅 위 꽃들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