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적 관점의 진실은 환경적 현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건물들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0퍼센트를 생산하며, 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40퍼센트는 건설업이 차지하고 있다. 건축의 시의성을 논하는 사실상의 모든 회의에서 통하는 주문은 이것이다. ‘건조 환경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 ‘영향’은 비단 경제나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주제에 관해 점점 늘어나는 각종 출판물과 온라인 강연들을 보라. 건조 환경은 우리에게 심대한 감정적 영향까지 주고 있다. ‘행복’과 ‘웰빙’, ‘거주 적합성’, ‘장소감’은 점점 더 감정적이 되어가는 용어들 속에서 우리의 건조 환경이 논의되는 몇몇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용어들이 숱하게 쓰인다는 것은 그런 감정들이 명백히 결핍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 p.2
“건축이 미술관의 일을 대신한다는 믿음이 더 커져갔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가 건축가들로 하여금 민중에게 ‘기쁨’을 주라고 독려했고 공공 부문에는 건물 설계를 검토할 때 단지 비용이나 기능성만 생각할 게 아니라 ‘감탄 요인’을 고려하도록 촉구했다. 미국에서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유럽의 박물관 프로젝트에서도 똑같이 선택을 받아 기용되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맨체스터의 북부 제국 전쟁 박물관을 설계했고, 자하 하디드는 볼프스부르크의 파에노 과학 센터를 설계했으며, 칼라트라바는 그의 조국인 스페인의 발렌시아와 테네리페를 위한 박물관들을 설계했다. 물론 다른 이들도 있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공모전의 입상자였던 쿱 힘멜블라우는 리옹의 콩플루앙스 박물관을 설계했고, 웨스트브러미치에서는 윌 알솝이 ‘더 퍼블릭’을 설계했다.”
--- p.19
“20세기는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의 일탈을 자각하게 만들었고, 여기에는 아마도 건축의 일탈도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서히 그 반대 상황, 즉 이데올로기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일탈과 타협해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합의를 이루는 것조차 골칫거리인 세계에서는 결국 숫자가 지배한다. 하지만 숫자는 의미를 거의 보상하지 못한다. 방법적인 면에서 우리는 하나의 헛된 노력을 그다음의 헛된 노력과 비교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절대적인 무작위성 법칙의 근간은 궁극적으로 숫자의 힘임을 발견할 뿐이다.”
--- p.43
“지난 몇십 년간 상의 수는 실무 건축가의 수보다 상당히 더 빠르게 증가해왔다. 이론적으로는 그게 모든 건축가의 수상 기회를 늘려주고 상을 골고루 수여하게 되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추세가 일어났다. 하나의 상은 그다음 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판명된다. 가장 저명한 건축상들을 보라. 프리츠커상,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와 미국 건축가 협회의 골드 메달, 일본 미술 협회의 프리미엄 임페리얼, 그리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평생 공로상인 황금사자상은 늘 똑같은 목록에 있는 건축가들이 돌아가며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 p.61
“1970년대 들어 ‘지속 가능한’이라는 단어는 자원을 관리하는 방법 이상을 정의하게 되었다. 이 말은 하나의 생활 방식을 내포했다. 미래는 더 이상 몇몇 비전가들의 선견지명이 아닌 모두의 손에 맡겨졌다. 차후 세대들이 적어도 세계대전 이전 세대와 동일한 번영을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려면, 억제되지 않는 소비와 성장에 기초한 생활 양식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제시한 증거가 정치인들에게는 충분하지 않았고, 사회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성장의 한계』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리뷰는 성장을 멈추는 게 해법이라는 생각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 오염을 통제해도 소용없다는 주장은 틀렸을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고 말이다.”
--- p.75
“우리의 건강(과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상황들이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되어갈수록, 그런 상황들에 적용되는 언어도 그렇게 변한다. 과거에 ‘사무실(office)’이었던 것이 이제는‘일터(workplace)’가 되었다. 과거에 우리의 ‘건강’이었던 것이 이제는 우리의 ‘웰빙’으로 진화했다. 의미론적 변화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건강한(healthy)’ 것이나 ‘잘(well)’ 있는 것에 대한 이해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각각에 내포되는 책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건강은 개인들이 스스로를 ‘위한’ 치료를 받았다고 기대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어느 정도 외부 요인들에 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웰빙은 대개 그 개인들에‘의한’ 선택의 문제다.”
--- p.92
“‘살 수 있는’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live-able’은 1610년경 영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는 영국의 소도시들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때였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말 그대로 ‘생존 가능성이 높은(likely to survive)’이라는 뜻으로 쓰인 용어였고, 보통은 ‘생존 가능성이 낮은’을 뜻하기 위해 ‘un’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문학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에서 ‘liveable’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났는데, 이는 한 시골 영지의 변경안과 관련하여 쓰인 말이었다. ‘살 만하게 만들어 놓으려면 적어도 다섯 해는 여름마다 손을 봐야 할 테니 말이야.’ 이런 쓰임은 더 이상 삶의 가능성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거주지와 그곳의 지속적인 개선 가능성에 적용되는 말이 된 것이다.”
--- p.108
“이 원리에 대한 설명은 기묘하게 작위적이다. 장소 만들기에 관해 말해주기보다 대부분 장소 만들기를 옹호하기만 하는 모양새라는 점에서, 나머지 원리들과도 ― 그리고 해당 기사 전체와도 ―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왜’ 그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단 얘기다. 숭배 대상(장소)의 증거는 숭배 행위(장소 만들기) 자체에만 있을 뿐이다. 총 11개의 원리가 있는데, 삼각화의 원리가 없었다면 총 10개였으리라. 장소 만들기의 야망이 거의 성서적임을 감안해보면 차라리 10개로 정리하는 게 더 적절한 모양새였을 텐데.”
--- p.128
“플로리다의 창조 계급 이론에 대한 비판은 그간 차고 넘쳤다. 부의 성장과 창작자들의 존재가 과연 상관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그 이론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가는 길을 열고 만연한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비난까지, 게다가 플로리다 자신의 동기를 문제시하는 더 개인적인 공격까지, 이제는 그 이론만큼이나 유명해진 책망의 목소리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적절한 비판은 플로리다 자신이 2017년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나눈 담화에서 한 말이리라. ‘그들은 제가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젠트리화한다고 말했습니다.’”
--- p.162
“영국의 시스템은 유럽의 다른 어떤 계획 시스템보다도 더 건설 주도권을 시장으로 내려 보냈다. 승인되는 허가 건들은 규제의 결과이기보다 타협의 결과이며, 여기에는 아름다움의 개념이 포함된다. 이 위원회가 명시한 희망 중 하나는 아름다움이라는 보다 제도화된 개념이 영국의 계획 시스템에서 적어도 그것의 변종 중 하나를 없애고 ‘예측 가능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시스템 자체를 더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여전히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 p.187~8
“갓길 보도 연구소, 델브, 구글… 이 셋의 모회사인 실리콘밸리 거대 기술 기업 알파벳(Alphabet)은 딱 알맞은 시기에 부동산 개발에 관여하고 있었다. 구글 본사가 위치한 만안 지대의 고립 구역인 마운틴뷰의 집값은 2010년부터 2배 이상이 올라 2018년에는 중위 주택 가격이 미화 2백만 달러에 달했다. 이 소도시의 많은 주민들은 더 이상 셋집을 구할 여력도 없고, 하물며 거기서 집 한 채 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구글에서 자유 계약직 보안 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주민의 생활 조건을 묘사한 기사에 따르면, 그는 매월 미화 2,500달러를 내야 하는 월세 아파트 대신 매월 800달러만 내면 되는 캠핑용 자동차를 선택했다. 2019년 3월이 되자 마운틴뷰의 의원들은 하룻밤 캠핑용 차량에서 묵는 무단 점유자들을 내쫓는 법안에 투표했다.”
---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