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부터 예언하기 시작하여 남유다의 멸망과, 남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후에 돌아오는 것까지 예언합니다. 그러니까 예언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700년 후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예언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언서도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별명은 ‘제5복음서’입니다. 실제로 예언한 기간이 60년이 넘었고, 예언의 스펙트럼은 수백 년에 걸쳤으며, 예언의 중요성도 어느 예언자보다 뛰어났습니다. 이사야는 모든 선지자, 즉 예언자들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이해하면 다른 예언서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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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에도 예언서는 은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언서가 강단에서 잘 선포되지 않고, 오히려 남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언서의 본질은 우리 신앙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도려내어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대할 때 편식하지 말고, 예언서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언서에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야 삽니다. 들어야 복을 받습니다. 들어야 성숙해집니다. 내 신앙이 오래되었을수록 반드시 예언서를 통하여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사야서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다시 말씀 앞에 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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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런 제사를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 것일까요? 이유가 뭘까요?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 놓고, 그것을 더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나는 하나님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더 채워 주세요.”라는 고백입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 제일의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p.29
하나님은 역사의 마지막을 정해 놓으시고, 그렇게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주인입니다.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아닙니다, 다르게 될 수는 없을까요?” 안 됩니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결정적 미래는 선포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학생이 공부를 많이 했든지, 전혀 하지 않았든지 정해진 날짜가 되면 시험을 치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날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그날이 온다고 알려 주었고, 그날이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말해 주었으니 이제는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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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문제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발생한 그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을까요? 있겠지요. 그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빨리 데려가 달라거나 빨리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비결입니다. 문제 해결의 기도가 아니라 문제 탈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문제 탈출 기도란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이고,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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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성격과 기질과 배경과 환경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다루는 방법도 다릅니다. 하나님이 가장 합당하고 적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어떤 사람은 껍질이 얇아서 타작이 잘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깨 같은 사람은 막대기로 톡톡 치면 금방 돌아옵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정신 차려야지. 하나님이 싫어하실 텐데.” 바로 깨닫습니다. 아이들도 그렇잖아요. 잘못해서 꾸중하려고 “이리 와!” 부르면 벌써 눈치를 채고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어요.” 합니다. 그렇게 빨리 뉘우치는 애는 매를 덜 맞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맞으면서도 째려봅니다. 그럼 호되게 맞는 겁니다. 인간이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막대기로 톡톡 쳐도 되는데, 어떤 사람은 도리깨질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수레바퀴를 굴려야 하고, 말발굽으로 찧어야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껍질이 벗겨지고 알곡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곡식마다 알곡을 얻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것은 막대기, 어떤 것은 도리깨, 어떤 것은 수레바퀴, 어떤 것은 말발굽, 이렇게 다양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하나님은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종자도 다양하게 주시고, 타작 방법도 다르다고 농부들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이 우리라고 하는 종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시겠어요? 나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 p.3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