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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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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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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70g | 128*188*20mm
ISBN13 9788954696203
ISBN10 8954696201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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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다 같이 먹는 게 맛있지”가 지점장의 말버릇이었다. 전에 지점장과 돈가스덮밥을 먹으러 갔던 아시카와 씨가 창백한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지점장의 속도에 맞춰 급하게 먹었더니 탈이 났다며, 그녀는 손수건을 쥔 손으로 배를 누르고 있었다.
--- p.6

후지 씨는 책상에 올려놓은 휴대전화를 왼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도시락을 먹는다. 젓가락으로 집은 달걀말이는 니타니가 마트에서 자주 사 먹는 매끈하고 균일한 노란색 달걀말이와 달리 흰색과 노란색과 갈색이 섞여 집에서 만든 티가 났다. 후지 씨는 좋겠다, 나랑 똑같이 야근해도 집에 가면 저런 음식이 절로 나오고, 아침과 점심 도시락도 뚝딱 준비되니까, 먹는 걸로 고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잖아.
--- p.7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고, 하지만 누군가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회사는 돌아가지 않아. 그러면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고, 그 사람만 계속 일하게 돼. 출세는 하겠지만 일을 잘하는 게 꼭 출세하고 싶다는 건 아니잖아. 할 수 있으니까 그냥 하는 거지.”
--- p.17

그런데 여기 오고 이 주쯤 됐을 무렵 벌써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제칠 수 있겠다, 오래 걸릴 것도 없이 바로, 손쉽게. 그런 눈으로 보게 된 사람을 존경하기란 어렵다. 그리고 일말의 존경심도 없으면, 자신이 직접 선택하지도 않은 직장 동료에게 단순한 호의를 지켜나갈 수 없다.
--- p.21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바라보면 내가 점점 닳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라고 이 사람에게 말해봤자 그게 무슨 뜻인지 전달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턱에서 힘이 빠진다. 씹는 게 귀찮다. 아시카와 씨 같은 사람들은 ‘손쉽고 간단한’ ‘5분 레시피’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먹을 것과 마주하는 시간을 강요한다.
--- p.30

누구나 자기가 일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후지 씨는 그렇게 말했다. 무리하지 않고 퇴근하는 사람이든, 남들 배로 노력하는 사람이든, 야근을 안 하는 사람이든 자주 하는 사람이든, 자기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시오 씨도 그렇지? 하는 물음에 말문이 막힌다.
--- p.45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나도 그러고 싶고. 그런데 자신을 소중히 하겠다면서 집에 간 사람 몫의 일은 누가 하느냔 말이야. 그 시기에 꽃가루 알레르기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결국엔 꽃가루 알레르기로 힘들다고 집에 간 사람 일을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 다른 사람이 하게 되잖아, 힘들게 야근하면서.
--- p.46

회의 자료 같은 걸 누가 만들고 싶겠는가. 이런 그래프를 만들기 위해 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다들 저 하고픈 일만,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만, 편한 일만 고르면서 살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일이 굴러가지 않는다. 일이 굴러가지 않으면 회사는 망한다. 그런 회사는 망해도 된다는 건 너무 생각 없는 소리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겠습니다, 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아시카와 씨의 어두운 안색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 p.70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한 시간 가까이 걸려 만든 음식이 고작 십오 분 만에 사라진다. 끼니는 하루 세 번 돌아오고, 매일 챙겨 먹는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니타니는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만들어놓은 걸 파니까 굳이 직접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맛있다”라고 말한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몸과 머리를 움직일 에너지를 섭취하는 활동에 하나하나 ‘맛있다’라는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리고 그걸 입 밖에 내어 아시카와 씨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게, 역시 피곤하다.
--- p.72

“우리는 서로 돕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예전에는 가지고 있었던 걸, 손에서 놓아가는 거죠. 그러는 게 살기 편하니까. 성장의 일환으로. 누군가와 같이 먹는 밥보다 혼자 먹는 밥이 맛있는 것도 그중 하나고요. 굳세게 살아가는 데 다 같이 먹는 밥이 맛있다고 느끼는 능력은 필요 없어 보이니까요.”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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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맛을 낼 수 있다니 놀랍다.” 날마다 쳐내도 쏟아지는 업무, 능글맞은 상사, 일을 잘하건 못하건 모두가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의 사무실. 그리고 그 속에서 매일 먹어야 하는 ‘밥’을 대하는 세 남녀의 서로 다른 태도, 그들 사이에 은밀히 오가는 오후 세시의 수제 디저트. 구하기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이 재료들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맛을 낼 수 있다니 놀랍다. 읽는 내내 속이 복닥거렸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어쩐지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솜씨 좋은 작가가 안쪽에 숨겨둔 기묘한 뒷맛까지 꼭 음미해주시기를.
- 장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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