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는 기원전 720-680년경 “모라셋인 미카”가 기록했다. “미카”는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 또는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이다. 선지자 미카가 활동했던 시기를 보면, 북왕국 이스라엘의 경우 프카히야, 페카, 호세아의 통치 기간에 해당하고, 남왕국 유다로 보면, 요담, 아하스, 히스키야의 시대에 예언했다(미 1:1, 렘 26:18,19 vs. 미 3:12). 미카는 선지자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는데(사 1:1), 차이가 있다면, 이사야가 본 환상은 남왕국 유다와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관한 것인 반면, 선지자 미카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관해서도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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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은 반드시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것이지만, 종국에는 “남은 자들”(Remnants)을 중심으로 회복된다. “남은 자들의 교리”는 “미카”의 핵심 주제다. “미카”는 소선지서 중에서 “남은 자들의 교리”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6회 - 2:12; 4:7; 5:3; 5:7; 5:8; 7:18), 그만큼 “남은 자들에 관한 예언의 비중”이 크다. 장차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견뎌 내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을 주 하나님께서 모으실 것인데, 재림 때 이들을 중심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롬 11:26) 받게 된다.
특히 “미카”는 “남은 자들에 관한 교리”를 언급하면서 “양과 목자”의 관계를 제시하는데, 목자인 왕께서 이스라엘의 양 무리를 이끄시는 것이다. 신약적인 관점에서는 “목자와 양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정된다(시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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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군대의 딸이여, 이제 군대로 모이라. 그가 우리를 포위하였으니, 그들이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관의 뺨을 칠 것이라.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 그러므로 진통하는 그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는 그가 그들을 버려 두실 것이나 그후에 그의 형제 중에 남은 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라』(1-3절). 주님께서는 포위 공격에 대비해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소집하고 계신다(1절). 『그들이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관의 뺨을 칠 것이라.』(1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키는 이사야 50:6의 참조 구절로 보인다. 『내가 치는 자들에게는 내 등을, 머리카락을 뽑는 자들에게는 내 뺨들을 맡겼도다. 내가 치욕과 침뱉음으로부터 내 얼굴을 숨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0:6).
이스라엘이 적군의 포위 공격에 대비해 군대를 소집하는 때는 적그리스도에게 포위당할 대환란 때를 예언적으로 가리킨다. 과거 히스키야왕 때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산헤립은 적그리스도의 유형이다(왕하 18:17; 19:3-8, 렘 50:17).
미카 5:1-3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중적인 언급이다(벧전 1:11). 뺨을 맞은 『이스라엘 재판관』(1절)은 초림 때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사 50:6, 마 26:67), 예로부터 영원부터 나오신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2절)는 재림 때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사 11:13).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의 탄생(1,2절)과 재림 때의 통치(3절)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통하는 그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는 그가 그들을 버려 두실 것이나 그후에 그의 형제 중에 남은 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라』(3절). 주님께서는 “진통하는 그 여인이 해산하는” 대환란 때까지 이스라엘을 버려 두셨다가(사 6:9-12) 그 후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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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7절에서 엿보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율법의 제사 의식을 따르는 데 있어서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을 첨가했다는 데 있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그 율법을 발판 삼아 걸레와 같은 자기 의를 자랑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계명의 참된 본질을 망각하고 인간의 생각을 덧입힌 행위로는(마 15:2) 하나님께 바르게 돌아올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책무와 그의 규례들과 그의 명령들과 그의 계명들을 항상 지킬지니라』(신 11:1). 율법을 지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고, 그 뒤에 그분의 책무와 그분의 규례들과 그분의 명령들과 그분의 계명들을 항상 지키라는 것이었다. 미카 당시의 유대인들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실패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서 주신 율법을 정확히 지키지 않았고, 그렇기에 인간의 전통을 첨가해서 지키려 했다. 미카서 본문은 그것이 과도해져서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인신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망상에까지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육신적인 생각대로 섬기려는 사람은 미쳐 가는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 믿음으로 섬기지 않고, 새벽기도회, 경배와 찬양, 금요철야금식, 작정 헌금 같은 성경에 없는 “육신적인 종교 행위들”과 장로, 권사, 여자 집사, 여자 목사 같은 성경에 없는 “육신적인 직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은 사악한 죄이다. 일 년 동안 매달 얼마를 바치겠다며 작정 헌금을 하고, 수천 번의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강물 같은 새벽기도회들을 드리고, 자기 몸이 죽기 직전까지 금식을 한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사악한 죄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는 멸망 전의 이스라엘과 같은 교인들을 넘치게 목도하고 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들어왔다면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으로 섬기려 했던 옛 습성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가 바르게 정립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이전의 종교적 열성을 보이려고 한다면 반드시 고침을 받아야 한다. 6,7절의 질문에 이어지는 8절 말씀이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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