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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 7
해설| 끝에서 본 시작(죽음), 혹은 시작에서 본 끝(삶) … 25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연보 … 265 |
Rainer Maria Ri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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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여기로 오겠지만, 나라면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여기서는 죽어간다고.
--- p.7 중요한 건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 p.8 나는 내가 몰랐던 어떤 내면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이제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른다. --- p.9 여기에 당신의 죽음이 있다. 왔던 것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죽는다. --- p.13 나는 아무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짐 가방 하나와 책 상자 하나만 들고, 또 사실 호기심도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삶일까. 집도 없고 물려받은 물건도 없고, 키우는 개도 없는 그런 삶이란. --- p.20 어려서 시를 쓰면, 그 시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며, 평생 동안, 가능한 한 길고 긴 삶을 사는 동안 의미와 달콤함을 모아야 한다. --- p.23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는 경험들이다. --- p.23 추억들이 우리 안에서 피가 되어 생명을 얻을 때, 시선과 태도가 되고, 이름 없는 것으로서 더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될 수 없을 때, 그제야 비로소 너무나 드문 어느 한순간 시구 하나의 첫번째 단어가 그 한가운데서 생겨나 밖으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p.24 젊고 보잘것없는 이 외국인 브리게는 다섯 층계를 올라온 곳에 이렇게 앉아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밤이나 낮이나 글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 p.28 내 오래된 가구들은 창고 한구석에 방치되어 썩어가고 있고, 나 자신은, 아, 나에게는 몸을 누일 집 한 칸 없고, 내 눈 속으로는 빗물이 스며든다. --- p.46 나는 어린 시절을 달라고 기도했고, 나의 어린 시절은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힘들다는 것을, 나이가 드는 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 p.67 나는 울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기치 않게 너무나 갑자기 거기 있었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 앞에서 울었는데,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 p.74 모든 책을 읽겠다는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면, 한 권의 책을 펼칠 권리도 없는 것이었다. 한 줄 한 줄에서 세계가 등장했다. 읽을 때마다 빗장이 부서지며 세계가 열렸다. 그 앞에서 세계는 온전했고, 아마도 그 뒤에서도 세계는 온전히 그대로였을 것이다. --- p.195 운명은 무늬와 형상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한다. 운명이 힘든 이유는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 자체는 단순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삶에는 우리에게 걸맞지 않은 크기의 몇 가지만 있을 뿐이다. --- p.200 사랑하는 여인은 언제나 사랑받는 남자를 능가한다. 삶은 운명보다 위대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받는 사람을 넘어선다. --- p.201 사랑하는 여인들은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탄식하지만, 자연 전체가 그들의 비탄에 참여한다. 그것은 영원한 자에 대한 비탄이다. --- p.227 꽃과 열매는 성숙해지면 떨어지고, 동물들은 서로를 느끼고 가까워지며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신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 끝낼 줄을 모른다. --- p.229 우리에게 일 년이 무엇인가? 그 모든 세월이 무엇인가? 신에 대해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 밤을 견뎌낼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부터 한다. 그다음에는 병을. 또 그다음에는 사랑을. --- p.229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타버리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영속하는 것이다. --- p.241 미래 없이 존재하는 느낌과 함께 눈을 뜨곤 하지 않았던가? 모든 위험에 대한 권리를 맡아놓은 것도 아니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죽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약속해야 하지 않았던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삶을 계속하도록 한 것은 돌아오고 또 돌아오면서 자리 하나를 보존하려 했던 이 지독한 기억의 고집이었을 것이다. --- p.246 어느 시인이 그때 그가 겪은 나날의 길이를 삶의 짧음과 설득력 있게 결합시킬 수 있겠는가? 어떤 예술이 외투를 걸친 그의 빈약한 모습을 그의 거대한 밤들이 이루는 초공간 전체와 함께 불러일으킬 만큼 드넓을 수 있겠는가. --- p.246 신에게로, 그 공간으로 자신을 내던진다고 여겨지는 밤들이 찾아왔다. 지구로 잠수해 마음의 해일을 타고 지구를 낚아채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충분한 힘을 느꼈던, 깨달음으로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 p.247 |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삶을 노래한 시인
망각과 기억의 심연에서 길어낸, 살아가리라는 예감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는 평생 유럽 각지를 여행했고,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프라하대학교에서 법학과 예술을 공부하던 무렵, 시집 『삶과 가곡』을 자비로 출판하여 무료로 배포했고, 그후 뮌헨으로, 베를린으로 옮겼다. 이때 발표한 일련의 서정시들에서 나타난 릴케의 세계는 공허하고 외로웠다. 스물다섯 살 때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에 매료되어 평생의 벗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러시아로 떠났고, 그 직후 20세기가 찾아왔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릴케는 로댕의 제자인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해 예술인 공동체 마을 보릅스베데에 머물렀고,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특히 로댕에 심취해 이듬해 파리로 옮겨가 사 년간 그의 작업실을 오가고 때로는 함께 지내며 『오귀스트 로댕』을 완성했고, 수차례 로댕론을 강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릴케는 벨 에포크 파리에, 대도시 파리에 압도되었다. 살로메에게 보낸 편지에서 “삶이라 불리는 모든 것이 두렵고, 파리에서, 사람들 속에서 너무나 외롭고 외롭다. 오가는 모든 것이 나를 밀어낸다”고 쓰기도 했다. 이때 경험한 릴케의 파리는 후에 말테의 파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 파리에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반색하고, 대부분은 부러워합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파리는 대도시이고, 여러 가지 신기한 유혹으로 가득합니다. 나를 생각해보면, 어떤 점에서는 그런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고, 그 결과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격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계관은 조금 변했다고 할 수 있고, 어쨌든 나의 삶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내 안에서 모든 사물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이 차츰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지금까지 어떤 것보다 더 나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몇 가지 차이가 존재합니다. 변화된 어떤 세계, 새로운 의미로 가득찬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롭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조금 힘겹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일에도 여전히 초보자입니다. (74쪽) 젊은 시인 말테는 대도시 파리의 어느 골목, 다섯 층계를 올라간 춥고 좁은 작은 방에서, 고립된 삶 속에서 글을 쓰려 한다. 조각조각 떠오르는 기억들, 일상에서 마주친 두려움과 불안, 얼굴 없는 이웃들의 삶, 이름 없는 죽음들, 끊임없이 방 천장을 가로지르는 소음들을 생각하고, 글을 쓴다. 형식적인 구분은 없지만 소설은 페이지를 달리한 장을 기준으로 총 2부로 나뉜다. 1부에는 파리에서 목격한 일들, 어린 시절의 신비로운 기억들과 죽음들, 보들레르와 입센, 베토벤, 크리스티안왕, 말테가 사랑한 아벨로네와 여섯 장의 태피스트리 연작 [여인과 일각수] 이야기가 이어지고, 2부에는 아버지의 죽음,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남자, 괴테와 베티나 이야기에서 사포, 루이즈 라베, 엘레오노라 두세 등의 예술가와 샤를 대공, 샤를 6세, 교황 요한 22세 등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단상들이 있다. 그리고 2부의 마지막인 성경의 ‘탕자’ 이야기를 통해 말테는 사랑받는 것을 거부하고 사랑하며 살리라고, 삶과 사랑의 방식을 바꾸리라고 암시한다. 삶의 문제를 고민했던 릴케는 그것을 끝까지 파보기 위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말테를 삶의 가장자리 끝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를 죽음 옆에 두었다. 시로 쓴, 시가 된 소설 릴케의 온 세계를 담은 유일한 장편소설 릴케의 전기와 말테의 허구 사이의 경계가 종종 모호해지는 이 반자전적 소설에서 파리는 덴마크 청년 말테를 무겁게 짓누른다.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 벽을 짚고 힘겹게 걸어가는 임산부, 죽기 위해 병원으로 몰려가는 듯한 사람들, 무도병에 걸린 남자, 수레를 끌며 꽃양배추를 파는 맹인, 나병 환자, 온갖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서로 대화도 하지 않는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 같고, 다가올 운명만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말테의 내면에 들어간 우리는 죽음이 가득한 흑백의 파리를 눈앞에서 보듯 그 내면의 두려움과 공명하게 된다. 나는 여기 내 작은 방에 앉아 있다. 나, 브리게는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기에 앉아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생각하기 시작하고, 생각을 한다. (26쪽) 말테는 짐 가방 하나와 책 상자 하나뿐인 허름한 방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 그의 예민한 신경은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유난히 긴장되어 있다. 파리에서의 삼 주는 그를 흔들고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는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는 것부터 제대로 하려고 한다. 모든 것을 살펴봐야 하고, 모든 것을 느끼고 이해해야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서 모든 기억이 자기 안에서 생명을 얻고 자기 자신과 분리될 수도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시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1부가 불안과 죽음의 책이라면, 2부는 사랑의 책이다. 어머니와 함께 레이스를 풀어 구경하던 일, 이웃 슐린가의 불타버린 저택을 방문한 일, 어린 시절 어른들의 선물에 환멸을 느낀 일, 용감한 샤를 대공 이야기 등 많은 회상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줄기는 사랑에 빠진, 사랑을 하는 여인에 대한 찬가다. 엘로이즈, 베티나, 사포 등 중세와 르네상스시대 여인들이 보여준 위대한 사랑에 말테는 이렇게 경탄한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타버리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영속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도 그에게는 남에게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신의 사랑만을 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쓸쓸한 영혼의 여정, 절묘한 시적 산문의 보물이라 일컬어지며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고독과 깊이 공명하는 이 “불안의 책”에서 말테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머물 ‘존재의 자리’에 도달하였음을 암시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였다는 점에서 종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와 함께 거론되는 이 소설을 읽어내는 일은 사실 지난할 수도 있다. 모든 문장이 규칙적이고 합리적이고 언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독자의 세계로 들어온다. 글은 언어가 아니라 느낌으로 전달된다. 강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 그림이, 춤이 탄생하듯 릴케의 산문은 그의 감정이 그대로 문장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릴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핏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장려한 언어를 듣고 그 언어로 시를 쓰겠다는 열망에 휩싸인 사람 같았다. 그의 앞에는 이 언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당혹해하는 일이 놓여 있었다. (248쪽) |
우리 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 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걸작. - 엘리자베스 하드윅 (언론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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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이지만 릴케는 세계다. - 아베 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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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마음속에 깃든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인간을 보았고 또 사랑했다. -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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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작품은 나에게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그것이 평생에 걸쳐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 글이 흔들리고 떠오르고 마침내 눈을 뜨기까지 집념이 어떻게 온몸에 피처럼 흘러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다. - 윌리엄 개스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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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는 끊임없는 고통이었고, 순교였으며, 알 수 없는 상승이었다. -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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