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는 어떤 책인가?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온 이후 “세 권의 역사책,” 곧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가 기록되었다. 유대인들이 본토로 귀환한 이후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기록되어 있고, 여전히 바빌론과 페르시아 지역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에스더”에 기록되어 있다. B.C. 485-465년에 기록된 “에스더”의 저자는 “모르드캐”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하지 않다.
한편 성경 66권 중에서 “여자의 이름”을 따라 제목이 붙여진 두 권의 책이 있는데 “룻기”와 “에스더”이다. 특이한 점은 “솔로몬의 노래”와 더불어 “에스더”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만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가 그토록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책도 없다. 에스더 전체를 통해 “역사의 무대 배후”에서 놀랍게 역사하시고 부지런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기적의 시대”가 아닌 “믿음의 시대,” 곧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요 20:29)라고 인정받는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적용과 풍성한 교훈을 제공해 준다.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한 장면, 한 장면이 우리의 눈을 스쳐 지나갈 때, 우리는 위대하신 주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에 전율을 느끼게 되고, 우리의 모든 인생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겠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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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에게 들어가는 일은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함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딤전 6:16)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는 나를 보고서 살 자가 아무도 없음이니라.』(출 33:20)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지상에 오신 것이다.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요 1: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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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덫에 걸린” 악인의 번영과 몰락
하만은 모르드캐를 제거하려고 세운 바로 그 교수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자기 덫에 걸려 버린” 일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롬 12:19). 성도들의 원수들은 『자기들이 만든 구덩이에 빠지고 자기들이 숨겨 놓은 그물에 발이 ?ㄴ리는 법이다(시 9:15). 『확실히 주께서는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셨으며 주께서 그들을 파멸에 던지셨나이다. 어찌 그들이 순식간에 황폐하게 되었나이까! 그들이 공포로 완전히 멸절되었나이다. 사람이 깨어났을 때의 꿈과 같이 오 주여, 주께서 깨시면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 73:18-20). 하만은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스스로 자랑했지만 그에게는 부와 명예가 또 하나의 “덫”이었다. 그 덫에 걸린 하만은 영원히 살지 못하고 결국 썩어짐을 보았다. 그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고, 그의 영화가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했다(시 49:6-9,16,17, cf. 눅 12:20). 『사람이 존귀할지라도 오래 살지 못하니 그가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12,20). 누가 인생을 잘 사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하고, 그 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사후의 심판을 대비하는 사람이다(전 12:13,14).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 5:10)이 기다리고 있다! 말하자면 현 세상의 정욕들을 거부하고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인생이 가장 잘 사는 인생인 것이다(딛 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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