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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별에서 왔다지요

: 안드로메다급 세계관을 지닌 그녀가 만난 뜻밖의 지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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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152*225*35mm
ISBN13 9791196708283
ISBN10 119670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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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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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별에서 왔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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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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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네, 녹취 사무소입니다.”
“야! 사장 바꿔!”
웬 남자가 다짜고짜 신경질을 내며 반말을 했다. 거기서부터 딱 감이 왔다. ‘진상 지구인’이 납신 거다.
“네, 전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이 녹취록 네가 쓴 거야?”
“뭘 보고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사무실 직인이 찍혀 있다면 그렇겠죠. 근데 왜요?”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내가? 네가 봤어?”
이런 일은 종종 있다. 분명히 녹음된 내용대로 기록한 건데 자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녹음 파일만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확인해 볼 생각도 안 한다.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거다.
수화기 너머 그 진상 지구인은 내가 아무리 차분하게 설명해도 말이 안 통했고, 내 고막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악만 써댔다. 결국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따르르릉.’
뻔하다. 조금 전의 그자다. 이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전화를 다시 건다. 아직 분풀이를 덜 했다는 거다.
“야! 왜 전화를 끊어?”
또 받자마자 거친 말부터 나왔다.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큰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줄 알았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사람은‘진상 중의 진상’이었다. 진상계의 챔피언이란 말이다.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이참에 네 장기들, 간이랑 허파랑 콩팥이랑 다 떼 줄까?”
이게 대체 뭔 소린가? 혹시 장기 밀매범이라도 되는 건가? 내가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전화기에서는 또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 등신아! 너 이거 누가 시켰냐고? 제대로 안 불면 네 장기 몽땅 빼 버린다! 알아들어?”
정말 예의라곤 한 치도 없는 거친 입이었다.

- 중략 -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했다.
“여보세요, 잘 안 들리는데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장기 다 빼 버리겠다고, 이 빙신아!”
“내 장기를 뺀다고요?”
“응.”
“참 꿈도 야무져.”
“뭐, 뭐라고?”
“오늘부터 조심해야겠네요. 까딱 잘못하다간 내 장기 잃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호호호.”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 사람의 말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듯이.
“이 상황에 웃어? 네가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너 죽을래?”
“아저씨가 말 까니까 나도 말 깐다. 찌질하게 말도 안 되는 협박 좀 그만해. 짜증 나니까! 아저씨가 내 장기를 어떻게 빼?”
“안 믿겨?”
“응, 완전 안 믿겨.”
“알았어, 기다려. 내가 너 골로 보내 줄게.”
“뭔 말이야? 알아듣게 얘기해. 골로 어떻게 보낼 건데?”
“네 장기 몽땅 빼 주겠다고!”
“언제?”
“지금 당장!”
그가 점점 약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원래부터 컸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나는 평상시 목소리 톤을 유지했다.
“당장? 장기를 전화상으로 도려낼 수가 있어? 그게 원격으로 가능한 거야?”
“아니, 멍청아! 내가 지금 너 있는 데로 가서 빼 준다고! 거기서 기다려!”
“진짜?”
“당연히 진짜지. 오늘 장기 도려내기 딱 좋은 날씨잖아. 비도 추적추적 오고 말이지. 안 그래?”
“꽤나 솔깃한 제안이긴 하네. 얼른 와.”
“뭐? 미친년! 진짜 가도 돼?”
가도 되냐니? 여기서부터 난 그의 말이 허풍이란 걸 깨달았다. 정말 올 사람이면 전화를 끊고 당장 온다. 이렇게 전화로만 소리 지르진 않는다. 허락을 맡는 일 따위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난 좀 더 당차게 나가기로 했다.
“당연히 와도 되지. 어서 와. 우리 빨리 보자.”
“내가 가면 끔찍한 일 생길 텐데 괜찮겠어?”
“어떤 끔찍한 일? 예를 들어 볼래?”
“너 고등어 먹어봤지?”
“응.”
“그 고등어처럼 네 배를 갈라서 너의 모든 장기를 남김없이 빼낼 거야. 어때? 섬뜩하지?”
“에이! 그깟 일로 내가 쫄 것 같냐? 알아들었고, 그럼 장기만 빼고 눈알은 안 빼나?”
“뭐?”
“눈알 말이야.”
“허억! 이년 미친년이네.”
“네가 미친놈이겠지.”
---「Episode 6 : 나의 소중한 장기들아 고마워」중에서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커 보이는 앳된 아가씨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말을 하려다 멈칫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 표정에 알 수 없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때 프린터가 갑자기‘윙’하며 소리를 냈고,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우리 프린터가 평소에는 얌전한 아이인데,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아, 알았다! 눈이 선한 왕눈이 손님이 와서 그런가 보다. 프린터 대신해서 인사할게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어떤 일로 왔어요, 어린 아가씨가?”
“저기…….”
그녀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시 망설이더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집어넣고는 서둘러 말했다.
“그냥 신분증 복사 좀 하려고요.”
며칠 뒤 그녀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사복이 아닌 햄버거 프랜차이즈점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며칠 전보다 안색이 더 안 좋았다.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고 입가 한쪽이 부르터 있는 것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내게 쇼핑백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아이스크림은 녹으니까 먼저 드셔야 할 것 같은데…….”
쇼핑백 안에는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아이스트림이 들어 있었다.
“어머, 이거 저 주는 거예요?”
“네에. 지난번에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해서요.”
“세상에! 그 누가 안 친절하겠어요? 왕눈이 소녀한테.”
그녀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김샛별, 21살이었다.

- 중략 -

우리는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샛별이는 내가 재밌다며 연신 해맑게 웃었다. 그러다 순간 웃음을 거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기 근데…… 혹시 여기 보험사기 건으로도 녹취가 들어오나요?”
“그렇죠. 보험사에서 맡기기도 하고 개인이 맡기기도 하죠. 그건 왜요?”
샛별이는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만 몇 번 끄덕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만남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샛별이는 가끔 내 사무실에 놀러 왔고 나와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때때로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는데 마치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 보였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났을 때, 샛별이가 내게 녹음 파일 하나를 건넸다. 파일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걸 다 들으니 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이거 진짜예요?”
샛별이가 시선을 떨구며 힘없이 대답했다.
“네.”
“이 사람들은 누군데요?”
“그게…….”
차마 예쁜 샛별이의 입으로 그 쓰레기들을 소개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하겠다. 첫 번째 쓰레기는 샛별이의 새아빠이고, 두 번째 쓰레기는…… 도무지 믿기지 않겠지만 샛별이의 친엄마다.
“이거 어떻게 녹음된 거예요?”
“제가 엄마랑 통화하고 전화를 끊은 줄 알았는데, 안 끊어졌더라고요. 제 핸드폰에 자동 녹음 기능이 있거든요. 그래서 엄마랑 새아빠가 대화하는 게 녹음됐어요.”
“세상에! 정말 신이 도우셨네요. 이런 게 녹음되다니!”
지금부터 두 인간 말종의 대화를 공개하겠다. 계부(새아빠)의 비열한 목소리로 시작된다.

계부 : “네 딸 복어 먹었대냐?”
엄마 : “그랬대나봐.”
계부 : “근데 아무렇지도 않대?”
엄마 : “응. 3일이 지났는데도 괜찮은가 봐. 목소리도 쌩쌩해 보여. 어떡하지?”
계부 : “아우씨! 그러니까 치사량을 알맞게 측정해서 딱딱 맞게 넣었어야지. 복어 내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내가 질리도록 얘기했잖아!”
엄마 : “그렇게 해서 보냈는데, 이상하네. 다른 복어에 있는 내장도 더 넣어서 보내 줬단 말이야.”
계부 : “근데 왜 아직도 멀쩡해? 지금쯤 반응이 왔어야 할 거 아니야?”
엄마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계부 : “야! 그러니까 내 말대로 했어야지! 그래야 단번에 보낼 수 있다고 누누이 얘기했잖아! 이게 뭐냐?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엄마 : “나도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거잖아!”
계부 : “복어 또 언제 먹일 거야?”
엄마 : “당분간 못 먹이지. 샛별이가 복어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눈치챌 수도 있잖아.”
계부 : “야, 이 맹추야! 보양식이라고 하면서 먹이면 되지. 쓴 한약도 먹는데, 복어를 왜 못 먹여?”
엄마 : “그건 그러네.”
계부 : “최대한 날을 빨리 잡으라고! 이런 일은 속전속결로 해야 돼. 알겠어?”
엄마 : “알았어. 빠른 날로 잡아 볼게.”

나는 이 자들의 목적이 짐작 갔지만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엄마하고 새아빠가 샛별 씨에게 왜 이렇게 하는 거죠?”
샛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게…… 보험금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제 앞으로 보험이 여러 개 들어져 있거든요.”
---「Episode 21 : 신의 한 수」중에서

찜통처럼 푹푹 찌는 한여름이었다. 오전 11시경,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한 젊은 아가씨가 어색하게 목례를 했다. 내가 “어서 오세요.”하며 반겨 주었지만,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머뭇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나를 봤다가 뒤를 돌아보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 같았다.
“이 문 좀 잠그면 안 될까요?”
5분쯤 지난 후, 그녀는 겨우 안정되었는지 소파에 살며시 앉았다. 그리곤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나는 심히 걱정되었지만 애써 미소를 머금고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녀가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15년간의 지옥 같은 경험들을.

비극은 그녀가 10살 때 시작되었다. 이상한 종교 집단에 빠져 남편과 자식도 버리고 떠났던 그녀의 엄마가 어느 날 나타나서는 어린 그녀를 데려갔다. 사랑했던 아빠와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하고 만 그녀는 숙소가 있는 교회에서 엄마와 함께 지냈다.

- 중략 -

그 집단의 모든 사람이 목사를 우러러보고 그자의 말이라면 껌뻑 죽었다. 목사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은 곧 성경과 같다. 아니, 성경보다 위대하다. 또 내가 한 모든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보다 정확하다.”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다. 이제껏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은 단 한 번도 강림한 적이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위대한 신인 나를 영원히 추앙토록 하라. 그게 너희들이 죽을 때까지 할 일이다.”

- 중략 -

그녀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 목사가 그녀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이제부터 혼자서 자거라. 그리고 문은 잠그지 말도록 해라.”
황당한 지시였지만 누구라도 그의 뜻을 거역할 순 없었다. 그녀는 혼자 자기 시작했고, 그래도 무서워서 문은 잠그고 잤다. 그랬더니 그자가 다시 불러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은 반드시 문을 열어 놓고 자거라. 신의 뜻이니 반드시 열어 놓거라!”
하지만 그날도 그녀는 문을 잠그고 잠을 청했다. 한밤중에 누군가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겁에 질려 떨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목사가 소리죽여 말했다.
“뭘 꾸물대고 있니? 지금 문 앞이다. 어서 문 열어! 어서!”
그녀는 문을 열어 주었다. 여기서 왜 열어 주었느냐고, 열어 준 그녀도 책임이 있는 거라고 비난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린 시절부터 수년간 정신적 지배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상황에서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음을. 대신 그녀는 지혜롭게 행동했다. 목사가 방으로 들어온 순간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른 것이다. 어느 날부터 목사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날의 녹음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전부는 안 되겠고 일부분만 공개해 보겠다.

- 중략 -

하아! 꽃보다 고운 그녀의 인생에 어쩌면 이렇게 끔찍한 일이 발생한 걸까?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는요? 어머니는 알고 있어요?”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다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버렸다.
“설마…… 다 알고 있는데도 가만히 계셨던 건가요? 아니죠?”
“엄마는 저더러…… 그 일을 무덤까지 갖고 가자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 중략 -

그녀는 녹취록을 가급적 빨리 받고 싶어 했다. 내가 그날 중으로 완성해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기다리는 시간에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 일에 적합한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하니 그녀에게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소장님, 제가 지금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혹시 같이 가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같이 가 드릴게요. 근데 문자메시지 녹취록을 작성해야 해서 핸드폰은 여기 두고 가셔야 해요. 괜찮아요?”
“네. 두고 갈게요.”
서둘러 그녀를 변호사 사무실에 데려다주고 녹취 작업에 착수했다. 작업 중에도 수시로 분노가 치밀었다. 그자가 한 바로 이 말 때문에.
“너를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 이래야 네가 구원을 받을 수 있어!”
구원은 개뿔! 목사의 탈을 쓴 쓰레기 같은 인간! 나는 그 목소리를 겨우 몇십 분 들었음에도 토가 나올 지경인데, 수년간 들어온 그녀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런데 이상했다. 그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어, 한여름인데, 왜 이리 춥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거울 속에 이상한 광경이 보이는 게 아닌가! 거울은 창문을 비추고 있었는데 유리창 밖으로 두 남녀의 머리통 같은 것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창문을 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뭘 잘못 봤던 걸까?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을 때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다.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다 싶어 창가로 다가가 유리 너머 밖을 살짝 내다봤다. 역시나 내가 제대로 봤던 거였다. 두 남녀가 사무실 앞을 얼쩡대면서 수상스럽게 서성대고 있었다.
근데 그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확 돋았다.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달까?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이 빠른 걸음으로 복도 끝으로 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안 보였다. 그제야 나도 안심이 됐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출입문이 스르륵 열렸는데 갑자기 사무실 공기가 한겨울처럼 차가워지면서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나는 오들오들 떨며 속으로 ‘오늘 나 진짜 왜 이래?’라고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나이 지긋한 흰머리의 남자와 중년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가 문 앞에 서서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이죠?”
그 눈빛이 기분 나빠서 대답 없이 둘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여자가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면서 아까보다 더 꼴 보기 싫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는 여기 직원?”
그러고는 작업 중이던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확 들이밀었다. 나는 깜짝 놀라 서둘러 모니터를 껐다.
“저기, 손님! 남의 기록을 그렇게 들여다보시면…….”
“여기 맞네. 잘 찾아왔어!”
내 말과 동시에 여자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흰 머리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어진 둘의 행동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여자가 귓속말로 속닥거리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은 영락없이 두 악당이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었다. 여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가 녹취 사무소인 거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알죠? 여기 왔죠?”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조금 전에 상담했던 그녀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누구고, 그녀가 여기 왔던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있는 대로 다 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고로 생깠다.
“누구요? 누가 여기 왔다는 거죠?”
그때 흰 머리 남자가 소파에 앉았다. 그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성경책을 탁자에 놓고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나는 숨죽인 채 그를 바라봤다.
곧이어 그가 느끼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전데요.”
“○○○ 어디 갔습니까?”
그런데 이 목소리, 아주 낯익었다. 누구더라? 어디서 들었더라? 순간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오! 마이! 갓! 조금 전까지 음성파일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 그 목사, 아니 그 악마의 목소리였다!
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흰머리 남자가 기름진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쓱 쓸어 빗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행동이 마치 영화 속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그의 손은 굼벵이처럼 아주 아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말도 아주 느려 터지게 하는 것이 몹시 괴기스러웠다.
“○○○ 빠알리 오오라고 하아세요오. 지이그음 다앙자앙.”
그건 마치 악마가 입을 벌려 내 귀에 바싹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하마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악마가 무서워서 그랬다는 게 아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는 동안 녹취 의뢰인의 상대방이 나를 직접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은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 황당하잖아. 이게 가능하다고? 진짜?’
---「Episode 26 : 종교인의 탈을 쓴 악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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