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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 초판 한정 감상 수집 티켓 증정 (도서 내 삽지) ]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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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344g | 115*188*30mm
ISBN13 9788954696593
ISBN10 895469659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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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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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장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이십오 년 전 벌어진 사고를 떠올렸다. 전날 밤 쏟아진 폭설이 볕에 녹았다가, 해가 기울며 몰려온 한파로 투명하게 얼어붙은 어느 겨울날이었다. 검은 아스팔트가 비칠 만큼 얇아서 ‘검은 얼음’이라고 불리는 블랙 아이스를 밟고 김회장이 운전하던 차가 미끄러졌다. 살얼음의 속임수에 보기 좋게 넘어간 거였다. 앞서가던 활어 수송차의 후미를 들이받을 때 트럭의 대형 수조에 적힌 문구가 김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활어가 타고 있습니다. 위급 시 활어 먼저 구해주세요.
그 문장들은 날생선처럼 김회장의 가슴에서 퍼덕거렸다. 비루하고 신성했다. 아니 비루해서 신성했다.
(……)
김회장은 그 사고 이후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했고, 목표가 정해지면 무조건 직진했다. 그 시절 건설 사업에 뛰어드는 건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관련 기업들이 속수무책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블랙 아이스를 밟은 김회장은 마치 구도에 오른 사람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 p.8~9

유한은 똑똑히 보았다. 성달산터널을 빠져나온 순간 새빨간 너울이 거대한 불새처럼 활공하며 고가 위에서부터 아벤 앞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유한은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짓이기며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끼이익 하는 새된 소리가 노면에서부터 허공으로 뿜어져나왔다. 묵직한 이물감이 차체 위를 스쳤다. 핸들이 좌우로 거칠게 떨렸다. 270을 찍었던 속도계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가공할 만한 제동력으로 아벤이 멈추기 직전, 앞 범퍼 왼쪽이 중앙분리대를 날카롭게 긁었다.
아벤은 1차로에 완전히 멈춰 섰다. 유한의 심장이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뒤따르던 맥라렌과 페라리가 앞서가던 황소의 광란을 목격하고 급하게 감속하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떨리는 목소리에 결기가 담겨 있었다.
“김유한, 무슨 일이야?”
“돌아가.”
“어딜?”
“집으로. 오늘 레이싱은 취소야”
--- p.17~18

문득 준희의 시선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차량의 우측 앞바퀴를 덮는 펜더가 찌그러져 있었다. 완만한 굴곡이어서 눈에 잘 띄지는 않았다. 차체 높이가 겨우 10센티미터 남짓인 전면 하단부에는 미세한 얼룩이 묻어 있었다. 준희는 플래시 라이트를 비추어 오염 부위를 꼼꼼히 살폈다. 타이어를 살펴보다가 왼쪽 앞바퀴 내측에서 붉은 섬유 올 흔적을 발견했다. 부딪힌 것이 벽뿐만이 아니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를 보내겠다고 전화한 김회장은 유한이 ‘실수’했다고 말했다. 그 실수에 이 상황도 포함되었던 것일까?
--- p.43

“만약에 자네들에게 백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나?”
인성은 저 양반이 드디어 돌아버렸군, 하고 생각했다. 금지옥엽 아껴왔던 자식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백억이 생길 리가 없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한참 만에 인성이 대답했다. 침묵이 숨막힐 정도가 되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워섬긴 것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김회장의 머리가 수굿하게 기울어졌다.
“내 질문이 틀렸군. 만약 자네들에게 백억의 보수가 주어진다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겠나?”
--- p.95~96

준희는 차를 완전히 멈추고 비상등을 켰다. 1초, 2초, 3초. 오른쪽 골목에서 낮은 배기음이 퍼져왔다. 아벤이 떠들썩하게 자신의 등장을 알리고 있었다. 준희가 다시 차를 몰아 오른쪽 골목을 살짝 지나치며 핸들을 왼쪽으로 꺾더니 후진 기어를 넣고 아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윈디의 엉덩이를 틀었다.
“여기 일방통행인데요?”
“그래서 후진으로 들어갔잖아요.”
인성의 말을 준희가 받아쳤다. 차의 위치로 봤을 때 맞는 방향이긴 했다. 자동차가 모로 비껴서 도로를 막았다는 점이 문제긴 했지만.
“내려요!”
“네?”
“가서 아벤 회수하라고요!”
인성이 떠밀리듯 내렸을 때, 일방통행로를 신나게 달려오던 아벤이 윈디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당황한 유한이 후진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 p.125~126

“그랬으면 유영이라도 잘 돌봤어야지. 열아홉 살 애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엄마가 어디 있어?”
“그렇게라도 고칠 수 있는 병이면 고쳐줘야지. 엄마니까.”
“이모, 아직도 그게 병이라고 생각해?”
이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은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좁은 자동차 안에서 팽창된 적막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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