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크루지는 맷돌 손잡이를 움켜쥔 손아귀처럼 악착같은 짠돌이 중 짠돌이였다. 스크루지! 쥐어짜고, 비틀고, 움켜쥐고, 긁어모으고, 한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탐욕스럽고 죄 많은 늙은이! 어떤 쇠붙이로도 작은 불꽃 하나 못 일으키는 부싯돌처럼 모질고 냉정했으며, 꽉 다문 굴 딱지처럼 음험하고 고독했다. 내면에 가득한 냉기는 늙은 얼굴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뾰족한 코는 더 뾰족해지고, 뺨은 쪼글쪼글 오그라지고, 걸음걸이는 뻣뻣해지고, 벌겋게 충혈된 눈과 검푸른 입술,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는 심술궂어 보이게 했다. 머리와 눈썹, 철사처럼 뾰족한 턱에는 희끗하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스크루지는 언제나 침울한 기운을 퍼뜨리면서 삼복더위에도 사무실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크리스마스 때조차 단 1도라도 온기로 녹여 주는 법이 없었다.
바깥이 덥든 춥든 스크루지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어떤 온기도 따뜻하게 해 주지 못했고, 어떤 한기도 춥게 만들지 못했다. 쌩쌩 부는 바람도 스크루지보다 매몰차지 않았고, 펑펑 내리는 눈도 스크루지만큼 집요하지 않았으며, 억수같이 내리는 비도 스크루지에 비하면 자비로웠다. 아무리 모진 날씨라도 스크루지를 당해 낼 수 없었다. 폭우와 폭설, 우박, 진눈깨비는 오직 한 가지 면에서만 그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었다. 스크루지와는 달리 종종 ‘후하게 내린다’는 것.
--- p.14~16
“잘 듣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네.”
유령이 소리쳤다.
“알겠네. 하지만 모진 말은 하지 말아 주게. 듣기 좋은 말로 꾸미지도 말고. 제이콥, 부탁이네!”
“내가 어떻게 자네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이야기해 줄 수는 없네. 사실 그동안에도 나는 보이지 않는 채로 자네 옆에 앉아 있었지.”
그다지 유쾌한 말은 아니었다. 스크루지는 벌벌 떨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그것 역시 속죄를 위한 가볍지 않은 벌이야. 오늘 밤 내가 여기 온 건 자네에게 일러 주기 위해서라네. 자네에게는 아직 나와 같은 운명을 벗어날 기회와 희망이 있다는 말이야. 내가 어렵게 마련한 기회와 희망이네, 에버니저.”
“자네는 언제나 좋은 친구였지. 고맙네!”
“자네에게 세 유령이 찾아올 걸세.”
“그게 자네가 말한 기회이자 희망이란 말인가, 제이콥?”
유령만큼 안색이 침울해진 스크루지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렇다네.”
“나, 나는 그런 유령들을 안 만났으면 하는데…….”
“그 유령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자네는 내가 걸었던 길을 피할 수 없어. 내일 새벽 종소리가 한 시를 알리면 첫 번째 유령이 나타날 걸세.”
--- p.51~52
유령과 스크루지는 복도를 지나 건물 뒤편에 있는 문까지 걸어갔다. 문이 열리자 허전하고 쓸쓸해 보이는 긴 방이 나타났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널빤지 책상들이 늘어선 모습은 방을 더욱 황량해 보이게 했다. 그중 꺼져 가는 난롯불 옆 책상에 외로운 아이 하나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스크루지는 책상 한쪽에 앉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가엾은 옛 모습을 보며 울었다.
건물 안에 여운으로 남은 메아리 소리, 교실 벽 뒤에서 쥐들이 찍찍거리며 싸우는 소리, 쓸쓸한 뒷마당의 반쯤 녹은 홈통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축 처진 포플러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탄식 같은 바람 소리, 텅 빈 창고 문짝이 하릴없이 여닫히며 비걱거리는 소리, 난로 속 장작이 탁탁 타들어 가는 소리까지, 어느 하나 스크루지의 마음에 구슬피 와닿지 않는 것이 없었고 제멋대로 눈물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이 없었다.
유령이 스크루지의 팔을 툭 치더니 책 읽기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 스크루지를 가리켰다. 그 순간 갑자기 이국적인 옷차림의 남자가 놀랄 만큼 생생하고 또렷한 모습으로 창문 밖에 나타났다. 허리띠 위로 도끼를 차고 손에는 나뭇짐을 한가득 진 당나귀 고삐를 쥐고 있었다.
“아니, 알리바바잖아!”
스크루지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 p.70~72
“횃불에서 뿌린 향에 무슨 특별한 풍미라도 들어 있습니까?”
스크루지가 물었다.
“그럼. 나만 가진 풍미지.”
“이날 먹는 모든 만찬에 다 어울리는 겁니까?”
“정성껏 준비한 만찬이라면 무엇에든 어울리지. 보잘것없는 만찬에 가장 많이 쓰이고.”
“왜 가난한 집 만찬에 가장 많이 쓰인다는 거죠?”
“내 향이 가장 필요한 곳이니까.”
“유령님.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세계의 존재 중에 왜 하필이면 유령님께서 이 가난한 사람들이 순수하게 음식을 즐길 기회를 빼앗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스크루지가 말했다.
“내가 말이냐!”
유령이 소리쳤다.
“매주 일요일마다 맛있게 요리할 도구를 그들에게서 빼앗지 않으셨습니까? 그 사람들이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인데도요. 안 그러십니까?”
“내가 그랬다고!”
유령이 소리쳤다.
“안식일이 되면 빵집이나 다른 가게가 문 닫기를 바라시잖아요. 그러니 그게 그 말이지요.”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유령이 버럭 외쳤다.
“제 말이 틀렸다면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그런 일이 유령님의 이름으로, 아니면 유령님 가족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는 이 땅에 그런 자들이 몇 있기는 하지. 우리를 잘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우리 이름을 들먹여 욕망, 오만, 악의, 증오심, 시기심, 독선, 이기심에 젖어 사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나 우리의 일가붙이 가족이 이 세상에 존재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이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이 저지르는 짓은 그들의 탓으로 돌려라. 우리를 탓하지 말고.”
--- p.1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