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도착한 것은 2020년 8월 말이었다. 허드슨강변에 위치한 거대한 컨벤션 센터인 자비츠센터(Javits Center)가 병동으로 활용되던 팬데믹 때였다. 다행히 코로나 팬데믹 최악의 시기는 넘긴 때였지만, 여전히 길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다. 이를 두고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신호등 바뀌는 소리가 들린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내가 알던 뉴욕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뉴욕의 미술관, 갤러리, 작가들의 스튜디오는 열려 있었다. 그해 여름부터 다시 열기 시작했다고 했다. 뉴욕에 도착한 초기에는 갤러리 지구(Gallery District)라고 불리는 첼시나 어퍼이스트사이드의 갤러리를 드나들며 미국 미술시장의 자본력을 새삼 느꼈다. 뉴욕의 하우저앤워스와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ner)에서는 각각 조지 콘도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가 바로 직전 년도에 작업한 작품을 만날 수도 있었다.
---「프롤로그」중에서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뉴욕의 미술시장과 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면모나 직역 간의 역학관계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기대고 있던 삶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관점의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흔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뚜렷한 삶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계획 탓에 다가온 기회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운 좋게 파악하더라도 이를 놓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인생에 정해져 있는 것은 별로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공식 같은 것은 더욱 없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우연한 요소로 예상치 못한 기회를 얻기도 한다. 뉴욕은 성공의 길이 참 다양한 도시다. 처음부터 대단한 자본이나 인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느 분야에서든 실력만 인정받으면 출신 국가를 비롯한 여타 배경도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누구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브루클린의 작은 동네에서 시작했어도 훌륭한 안목을 갖춘 갤러리스트가 있다면, 5년이 채 되기도 전에 미국 서부, 유럽을 거쳐 메이저 갤러리로 거듭날 수 있는 곳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우스갯소리 중에는 뉴욕의 대형 로펌은 두 인종이 잡고 있는데, 바로 유대인과 동양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중략) 미술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한인 작가들이 그들만의 영역 을 구축하며 명성을 쌓고 있었다. 특히 근래에는 해외 메가 갤러리와 손을 잡고 해외에서 커다란 성공과 인지도를 얻는 경우가 많이 보였다. 숯을 이용한 작업으로 유명한 이배 작가는 지난 2018년 페로탕(Perrotin)의 전속 작가가 되었는데 이후 그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2023년 여름, 뉴욕 록펠러센터 단독 전시에서는 센터 앞 채널가든에 커다란 조각을 설치하여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뉴욕 미술시장에 부상한 한인 플레이어들」중에서
나무의 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 어둠을 통해 생명을 가꾸듯 때때로 짙은 어둠은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당시에 마음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시작한 조각 활동이 나 자신을 더욱더 자유롭고 성숙하게 가꿔간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이유로 지금껏 중단 없이 조각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박세윤, 우리 모두는 어둠과 빛을 통해 성장한다, 나무처럼」중에서
예술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감정과 믿음, 고민을 배출할 수 있는 통로다. 그래서 전시가 인간의 어떤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고민해 왔다. 그렇게 내 고민에 응답해 줄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바탕으로 전시 주제를 선정하고 있다.
---「그레이스 노, 전시기획은 인간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중에서
코인이나 사업 등으로 큰돈을 번 ‘뉴머니’의 경우 예술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MoMA나 구겐하임미술관 등 큰 기관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여하고자 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신의 데이트를 감동시키려는 목적으로, 그간의 이렇다 할 후원 기록 없이 파티만을 위해 돈을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경우는 애교라고 할 정도로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렇듯 예술을 후원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예술을 도구 삼아 재력을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면 예술의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지현, 전시기획의 핵심 하드웨어, 자본력!」중에서
이렇게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의 전 영역에 깊이 뿌리내리면서 우리의 사고방식과 철학적 사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터에 근거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분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신체의 일부분이 된 스마트폰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트래킹한다. 우리가 데이터의 일부가 될 것인지, 아니면 데이터를 활용해 목소리를 낼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미술과 미술관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미술관도 디지털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다각화하고,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든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지영, 미술을 향유하는 문턱을 낮추다」중에서
한국 컬렉터들은 작품을 투자처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서 돈이 되는지, 몇 년 뒤 가치가 얼마나 뛸 것 같은지와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당연히 뉴욕의 컬렉터들도 작품의 투자가치를 보지만, 한국 컬렉터들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작품의 경제적 가치를 추종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중적인 작품을 주로 사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의 컬렉터들은 취향이나 줏대가 더 강하다. 컨텍스트 아트 마이애미에서 만난 컬렉터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한지로 작업한 서정민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다. 한지를 좋아하는 것 같길래 비슷한 소재로 작업한 전광영 작가의 작품도 자연스럽게 권했지만, 그 컬렉터는 이 작품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무래도 전광영 작가의 인지도가 더 높기 때문에 혹할 법도 한데, 작가나 작품의 네임 밸류보다 개인적 취향과 안목을 믿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종원, 성장을 위한 두 가지 조건, 유연성과 민첩성」중에서
예상보다 한눈에 반해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은 잘 없었다. 사람들은 작품을 처음 접하고, 집에 가서 계속 생각이 났는지 한 번 더 보러왔다. 사람마다 달랐지만, 적어도 두 번은 보고 작품을 구매했다.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에 ‘공감’을 느꼈기에 구매를 결정했을 것이다. 이렇게 작품이라는 콘텐츠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양태를 관찰하고, 여기에 나만의 시각을 더해 미술시장을 알아가는 것에 큰 희열을 느낀 시기였다. 지금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SIA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정식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으니, 오히려 잘 몰랐던 분야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미지의 것이라 계속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말이다. SIA에서 지식을 쌓고, 현재 업무를 맡아 하면서도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재미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아무래도 직접 마주하며 피부로 배우는 경매시장과 그 구성원의 면모가 상당히 다양하고 흥미롭기 때문인 것 같다..
---「캐서린 림, 고객이 구매를 결정하는 시점, 공감」중에서
프랜시스 베이컨도 내가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섬세한 감정선의 표현이나 색채와 구도 등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내딛는 붓 터치에서 위대함이 느껴진다. 한 번의 붓 터치로 수십, 수백 시간을 투자한 작품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에게는 붓 터치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때로는 우연하게 그은 붓 터치도 멋있을 수 있지만, 훌륭한 작가일수록 우연에 기대지 않고 의도했을 확률이 높다. 베이컨의 작품에서는 그가 셀 수 없는 시도와 경험을 통해 의도한, 과감한 붓 터치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대범함, 자신에 대한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혼신을 다한 노력 등이 함께 담겨 있다. 이런 붓 터치 하나하나가 모여서 자신의 시그니처가 되는 것이다.
---「김민구, 붓 터치 하나하나가 모여 시그니처가 된다」중에서
관객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 방문해 작품을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초대받은 듯 특별함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실제 거주 중인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아담한 사이즈 덕에 관람객과 작가 사이, 그리고 관객들끼리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관객은 큐레이터의 방에서 차나 커피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책도 읽으면서 여유롭게 작가와 큐레이터와 함께 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사고, 예술에 반영된 최근 사회적 흐름 등을 계속해서 고려하게 된다.
---「전영, 지속 가능한 나만의 속도를 찾아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