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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30*200*20mm
ISBN13 9791193710029
ISBN10 119371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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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사실은 수희도 자비출판을 통해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었다. ‘개나 소나 시인이냐’며 명주를 깔봤지만, 수희의 처지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 p.49

자격증이 필요 없는 분야임에도 필요 이상 자격을 따지는 곳이 바로 문단이다. 수희는 문단의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인 자격증을 얻기 위해 수도 없이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이었다.
--- p.54

시들어가는 육체에 매달릴 필요 없이 정신적인 영역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신의 영역 중 하나가 시였다. 하지만 지금 수희는……. 그 정신의 영역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작은 욕심에서 비롯된 어긋남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다.
--- p.59~60

나오자마자 불쾌한 소리와 마주쳤다. 수희는 얼굴을 찌푸리며 소파 쪽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TV를 보며 트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입김이 수희의 코 쪽으로 몰려왔다. 낮에 먹은 비지찌개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수희는 코를 틀어막으며 남편을 쏘아보았다. 젊은 시절 가슴을 요동치게 하던 남자. 큰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흠모하는 낭만적 감성과 세상을 바꾸려는 야심찬 눈빛을 고루 갖고 있던 남자.
--- p.61

수희는 낙심했다. 물론 떨어졌다고 시를 못 쓰는 건 아니다. 은설의 지적대로 시를 쓰는 데 진짜 가짜는 없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발표할 루트도 많다. 그래도 계속 미련이 남았다. 꼭 등단해 명주 같은 부류와는 글이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데.
--- p.76

스탠드형 생화여서 꽤 비싸 보였다. 화환 띠에는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동창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꽃값을 갹출한 10여 명의 명단이었다. 마음속으로 무시해왔던 동창들이지만, 그래도 화환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니 고맙고 반가웠다. 명단에 명주의 이름은 없었다. 그 사실이 수희를 더 기쁘게 했다. 은설은 명주에게도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알렸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명주의 이름은 없었다. 당선 축하 전화도 없었다. 주제 파악을 해서 질투심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수희의 추측이었다.
--- p.83

수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켰다. 메모장 기능을 띄우고 머릿속으로 정리한 해명들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키패드를 누르는 손가락이 여느 때보다 빨리 움직였다. 입가엔 살짝 미소가 피어올랐다.
--- p.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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