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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06이동
이산화 | 읻다 | 2024년 01월 2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10건 | 판매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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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128*200*20mm
ISBN13 9791193240212
ISBN10 1193240212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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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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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세요. 토끼는 그냥 발견이 아닙니다. 생물에 대한, 자연스레 우리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이해를 뿌리부터 뒤집을지도 모르는 발견이라고요. 그리고 인간의 뇌는 그런 충격을 받길 원하지 않아요.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믿기 힘든 광경을 보면 잊어버리려 온갖 애를 쓰죠. [...] 멜, 우리들의 뇌가 토끼에 대해 진정으로 알길 거부하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 p.12~13

재차 말문이 막혀버린 채, 형혹은 정면에서 반짝이는 두 눈을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수수께끼 같은 감정의 연쇄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눈. 하지만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형혹에 대한 이해가 뚜력하게 형체를 갖춘 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형혹은 세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세성은 형혹을 전부 이해하고 있었다.
--- p.27

갈색 코트 아래로 껑충 뻗어난 다리. 원래의 두 배쯤 늘어나서 유연하게 뒤로 휘어진 목.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고 피어나 연신 접혔다 펴졌다 하는 흰색 깃털들. 인기척을 눈치채고서 이쪽으로 돌린 눈동자에는 복잡한 오색 빛이 만화경처럼 일렁였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만면에 지어 보인 특유의 경쾌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란이 반갑게 흔들어대는 손의 형태를 어림짐작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았다. [...] 그 모습이 뜻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해 봄에 설란은 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p.45

그랬더니……. 지구가 보이더군. 놈들에 비하면 한없이 가냘프기 짝이 없는 행성 하나가, 놈들의 터전인 광대한 어둠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어. 그때 깨달았지. 우주 저편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살고 있을지언정 저 행성만큼은 수십억 년 동안 우리의 은신처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저 작고 푸른 행성만 건재하다면 우주의 그 모든 광기와 혼돈 속에서도 희망은 있으리라는 사실을. 그래, 아까 달에 갔을 때 뭘 봤느냐고 물었지? 이제야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겠군.
--- p.78

“[…]우리가 내린 모든 결정은 적과 싸우고, 적에 대해 알고, 그러는 동안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일이었어. 그리고 전쟁에서는 적을 증오할 수밖에 없지. 이해하겠나? 그땐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이었네.”
--- p.87

얼마든지 부풀고 뻗어나가며 맥동하는 몸. 거대한 폐와 성대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녹색 파이프오르간. 오직 멋진 노랫말을, 화끈한 고함을 외치기 위해 검은지빠귀가 스스로 고안해 낸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옛날에는 감히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 형상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리양파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로부터 온전히 해방된 몸의 반짝임이 눈에 새겨져 도무지 지워지질 않았으므로.
--- p.111

계절이 바뀔수록, 북반구 다음에는 남반구를 향해, 달콤한 환상은 차례차례 현실을 집어삼켜 갔다. 질병과 맞서 싸우기 위한 시스템은 맞서 싸우고픈 마음조차 들지 않는 행복이란 증상 앞에서 철저히 무력했다. 인간의 이성이 쌓아 올린 문명은 토대인 이성 그 자체를 공격하는 재난을 견뎌낼 방도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화면 속 랜슬롯 박사의 눈에서도 우윳빛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모습을 은정은 어렴풋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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