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로마 시민들의 함성 가득한 콜로세움으로, 르네상스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 피렌체로, 긴 항해를 마친 청교도들이 도착한 아메리카 동부의 황량한 해안으로, 루터 킹 목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책은 2000년의 시간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입니다.
그렇게 역사의 ‘핫플’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고뇌에 빠진 이집트 왕녀 클레오파트라, 결전을 앞두고 잠을 설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미지의 항로를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와 같은 영웅뿐 아니라, 기독교인에게 누명을 씌운 네로 황제, 복수심으로 불타는 메리 여왕, 개신교를 핍박하는 프랑수아 왕과 같은 역사의 ‘빌런’들도 만날 것입니다.
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고대 신학자들의 열띤 논쟁의 현장에 앉고, 비장한 표정으로 원정을 떠나는 중세 십자군 행렬에도 끼어 보고, 천혜의 요새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지는 순간을 함께 아파하기도 할 것입니다.
--- p.8-9, 「프롤로그」 중에서
Q. 왜 예수님은 로마가 제국으로 통일되던 시대에 오셨을까요?
A. 성경 역사는 제국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합니다.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 그리고 로마, 이렇게 5대 제국이 영향을 미칩니다. 이 중에서 신약 시대 교회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제국은 로마입니다. 교회 역사와 로마 역사는 마치, 담쟁이덩굴처럼 얽히고설키며 흘러갑니다. 로마 역사를 펼쳐 놓고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보면,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순간이 없습니다. 로
마제국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이 양자 옥타비아누스(훗날, 아우구스투스)에게로 계승되어 그가 초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제정 로마의 출범이 교차되는 격동의 시기에 예수님이 오신 거예요.
--- p.24, 「1장_교회, 은밀하게 위대하게」 중에서
자, 마음으로 떠나는 성지순례 시간입니다. 다 같이 튀르키예(터키)의 카파도키아로 떠나봅시다. 이곳은 용암이 굳어져서 형성된 아름다운 계곡과 자연경관으로 유명합니다. 이 수려한 경관을 보기 위해, 매일 아침 관광객들을 태운 수십 대의 열기구가 하늘을 수놓습니다. 전설적인 SF 영화 《스타워즈》 아시죠? 이 시리즈를 연출한 조지 루카스 감독이 지구가 아닌 우주의 어느 행성을 닮은 곳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 장소로 선택한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입니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에 ‘데린쿠유’라 불리는 지하 도시Underground City가 있습니다. 2000년 전, 로마의 박해를 피해 성도들이 이주해서 살던 지하 도시죠. 데린쿠유는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처럼 85미터, 대략 지하 20층 깊이에 있습니다. 카파도키아에 있는 총 36개의 지하 도시에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이 최대 1만여 명까지 거주했다고 합니다.
--- p.34, 「2장_익투스를 아시나요?」 중에서
AD 1세기, 지진과 화산 폭발, 흑사병과 같은 자연재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세상을 외면하고 영적인 세계만을 추구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소란스럽고 무질서했습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어떻게 판단하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거짓을 주장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누구에게 물어 봐야 하나?” 지도자의 부재와 이단이라는 암초에 부딪힌 교회는 좌초해 침몰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 혼란과 위기의 순간에 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네, 바로 정확한 ‘기준’Canon이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진리의 전달자인지, 누가 사탄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단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무엇을 믿어서는 안 되는지 구분할 기준이 필요했어요.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더 이상 말이 아닌 문자로 기록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교회에 필요한 것은 책이었습니다.
--- p.52-53, 「4장_교회, 성경을 갖다」 중에서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세상 권력은 신뢰를 잃게 됩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영적인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갑니다. 힘의 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혼란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소망은 교회였어요. 제국 곳곳에는 수도원이 등장하여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삶의 중심지 역할을 합니다.
로마제국은 약화되었지만 로마 교회는 오히려 더 힘을 얻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습니다. 서방의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설했던 동방의 로마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의 수도로서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격동의 역사를 지나며 교회는 더욱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그렇게 고대 제국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기독교가 중심이 된 이 새로운 시대를 ‘중세’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BC와 AD가 나뉘어지던 무렵에 시작되었고, 고대가 저물고 중세가 시작되던 때에 교회는 역사의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교회의 책임과 사명은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습니다.
--- p.92-93, 「7장_제국의 몰락」 중에서
Q. 왜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나요?
A. 중세Middle Ages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 1453년까지의 기간, 즉 AD 5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의 시기를 말합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고대 최강의 제국 로마가 장악하고 있던 유럽의 판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때부터,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중세’라는 말은 고대와 현대 사이의 중간 시대라는 의미로, 위대했던 고대와 화려한 현대 사이에 끼어 있는, 대단치 않고 별 볼 일 없는 시대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은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문주의자들의 시각이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유럽 역사를 고대, 중세 그리고 현대로 구분하면서 중세를 부정적으로 보았죠. 1330년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는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빛나는 고전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그에게 중세는 위대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이 단절된 “암흑의 시대”Dark Ages로 보였을 것입니다.
서로마의 멸망으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면서,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주도해왔던 유럽의 주도권이 그들에게 야만인 취급을 당하던 북방의 게르만인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유럽의 새 주인이 된 게르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로마의 문명을 파괴했어요. 이렇게 5세기,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찬란한 고대 역사가 끝나고, 유럽의 주인이 바뀌면서 지적, 문화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화려하고 찬란했던 고대가 저물고 암흑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런 생각 속에서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의 사상과 문화를 부정하고, 대신 고대 사상을 직접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슬로건인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중세를 뛰어넘어 문명의 원천인 고대로 다시 돌아가 고전을 발견하고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발견하면서 유럽의 문예 부흥으로 꽃피우게 되고, 이는 근대 이후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게 되죠.
--- p.126-127, 「10장_황제의 굴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