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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1. 인형의 발 2. 5월 3. 조용한 생활 4. 조용한 생활 2 5. 도쿄 6. 가을바람 7. 회색 그림자 8. 일상 9. 편지 10. 욕조 11. 있을 곳 12. 이야기 13. 햇살 『냉정과 열정 사이 Blu 』 1. 인형의 발 2. 5월 3. 조용한 호흡 4. 가을바람 5. 회색 그림자 6. 인생이란 7. 과거의 목소리, 미래의 목소리 8. 엷은 핑크빛 기억 9. 인연의 사슬 10. 푸른 그림자 11. 3월 12. 석양 13. 새로운 백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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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비는 끝없이 내리고 있다. 빗발이 세찬 것은 아니지만, 공기에 섞여 내리면서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은 비, 마치 온 세계를 우리에 가두어 넣으려는 듯한 비다. 비는 나를 침묵하게 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만 떠오르게 한다. 그 겨울의 그 비. 나는 그 방에 갇혀 있었다. 그때까지의 행복한 기억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샘솟아 넘치는 애정과 신뢰와 정열에,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나와, 라고 쥰세이는 말해주었는데. 나와, 라고, 막 캐낸 천연석 같은 순수함과 강인함과, 그리고 부드러움과 난폭함으로. 그 비. 그 거리. 그 나라에서의 사 년간. 아가타 쥰세이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 학생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 무엇이다. 봉인한 기억. 뚜껑을 닫아 종이로 싸고 끈으로 꽁꽁 묶어 멀리로 밀쳐내 버렸다고 여긴 기억.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거리도, 대학 생활의 흔해빠진 즐거움도, 쥰세이와의 일도 모두모두.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그때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알베르토의 공방에서,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피렌체에 간다는 것을. 두오모에 오른다는 것을. 쥰세이와 나눈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발차 벨이 울리고, 문이 닫혔다. 몹시 흥분해 있었지만, 동시에 아주 담담했다. 나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전에 없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감정이, 해방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Blu』 어제와 똑같은 하루였죠. 이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언제든 어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는 조금 전이지만 내일은 영원히 손을 뻗칠 수 없는 저편에 있다. 떠나지 않겠노라던 당신은 지금 여기 없네 영원히, 이를 수 없는 언제나, 지나쳐버리는 여기에, 나는 살아가고 있네 그 문 건너편에 피렌체의 거리가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르노 강, 조반나의 공방, 베키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우피치 미술관, 그리고 두오모. 다시 가슴속에서 과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거기에 십 대의 아오이가 서 있었다. 혼자서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는 아오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상상 속의 그 모습을 향해 소리 높여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가냘픈 어깨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지금이라도 쓰러져버릴 듯한 고독한 그녀의 모습을 향해.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아오이를 잊겠다고 결의했다. 오늘날까지, 내 가슴속의 아오이는 집요하게 일상 속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독감을 한 고비 넘긴 것처럼 모든 것이 가벼워졌다. 아니, 그것은 가벼움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움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너무 무거워서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복원사로서 무엇을 어떻게 복원시켜야 좋을지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찢어진 그림을 어떻게 복원시켜야 할까. 바니스를 칠해야 할까, 판화의 뒷면을 조사해야 할까, 아니면 벌레 구멍을 막아야 할까, 먼저 액자를 바꿔야 할까, 아니면 접착을 다시 해야 할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격심한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올 뿐이었다. 나는 일어섰다. 언제까지 여기 누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하면서……. --- 본문 중에서 |
서로를 분신처럼 사랑해
과거에 못 박힌 두 남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다시 돌아가고픈 사람 또한 존재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어떤 과거는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고 도리어 더 뾰족해져 우리를 찌른다. 아오이와 쥰세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그렇다. 교포 출신의 아오이와 쥰세이는 도쿄의 대학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다. 일본인이지만 둘 다 일본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었고 도쿄에도 발붙일 곳이라곤, 의지할 사람이라곤 없었기에 그들은 서로의 뿌리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함께 있던 시절은 고독하고 외로운 한편으로 서로밖에 없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리라. 헤어지고 팔 년이 흘렀다. 아오이에게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아도 그녀를 받아들여 주는 헌신적인 남자 친구가 있고, 쥰세이에게는 열정적이고 그를 향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옛날에 그랬듯 새로운 애인을 분신처럼 사랑하지는 못한다.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두 남녀는 가슴에 점처럼 남은 그리움을 소화하지 못해 비가 올 때면 떠올린다. 서로를, 그리고 지나가듯 한 약속을. 십 년 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는, 흘러가듯 한 약속이 가까워지며 평행선을 그리던 두 이야기는 이 지점에 이르러 한 점으로 모인다. 헤어진 지 8년, 여전히 서로를 잊지 못한 두 남녀는 약속일이 다가오자 결국 모든 일을 제쳐두고 피렌체로 달려간다. 두 삶이 교차된 이후 다시 각자의 길을 갈 것인지, 혹은 그대로 한 선으로 이어질지. 예측 불가능한 두 사람의 삶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또 다른 교차점과 가능성을 내보인다.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냉정과 열정이 그들을 그러한 선택으로 이끄는지를 지켜보는 것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로소Rosso’ 혹은 ‘블루Blu’ 한 권만 읽어도 좋지만 두 권을 연달아 읽거나 연재된 순서대로 한 장(章)씩 번갈아 읽으면 더욱 좋다. 그때마다 이 이야기는 번번이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사랑도 한 사람의 몫은 이 분의 일이라 말하는 책, 사랑이 주는 행복과 그에 비례하듯 드리우는 그림자를 그린 책, 냉정과 열정 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