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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과 정릉

: 전욱진의 2월

시의적절-02이동
전욱진 | 난다 | 2024년 02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3건 | 판매지수 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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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196g | 120*185*12mm
ISBN13 9791191859768
ISBN10 1191859762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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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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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사람은 어제에 있고
이렇게 나는 또 날짜를 스스로
조용히 옮겨적고 있지만

그 사람은 내가 다가온다 말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온다 말한다

눈이나 비처럼
하나하나 온다는 것

이곳에서 나의 슬픔이란
이런 것이다
---「2월 1일 믿는 사람」중에서

곧 저녁입니다. 어두워지면 이곳에는 사람도 짐승도 지나지 않아 무척이나 호젓해지지요.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만 어쩌다 지나가고, 신호등에는 노란빛이 계속 깜빡거립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시야에 가득 들어와, 그래서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앞이 깜깜한 곳.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은 더 또렷해지고 눈감아보면 문득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난 오래된 라디오 같은 게 되어선, 그들이 나한테 들려준 자상한 말을 소리 내보아요. 이곳에서 그건 완전한 혼잣말이지만 그게 퍽 슬프진 않습니다. 그 사람들을 나는 계속 지니고 살 것으로 분류해놨으니까. 그리고 거기에는 늘 당신이 꼭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니 꿈에라도 놀러오길. 당신이 이리로 와 나랑 같이 웃으면 좋겠습니다.
---「2월 3일 계절 서간―봄」중에서

이곳까지 데려다준 것과 같은 번호의 노선버스가 저기 간다. 아직 아무도 그 안에 들지 않았다. 저 앞 정류장에도 사람은 없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곳을 지나친다. 그러고 보면 2월은 저 널따랗고 기다란 차 같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멀어지지만 그 일조차 결국 다시 돌아오기 위한 일. 정차하는 장소같이 나는 오래 기다렸던 적도 있다. 시간을. 시간의 얼굴을 한 사람을. 내 안에 잠시 깃들어 살다 영영 떠나겠다, 그러고는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굴다 끝내 언제나 되돌아오고 마는.

이런 생각이 아니라면, 나 하나에 관해서는 굳이 해명할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고. 그렇게 앞이 조금은 막막해지지만, 그렇다고 더 나빠질 건 없다. 단지 코 안에 든 맑고 싸늘한 공기가 입 밖으로 나올 때는 탁하고 뜨듯해진다는 것. 나의 안개가 옅어지고 사라질 때 언젠가 그 누군가가 건네는 말이 되어 내 귀에 다시 들어올 것임을 알고 사는 것. 그런 날을 위해 귀 뒤를 깨끗이 씻고 손톱을 바짝 깎고 팔꿈치에 로션 잘 바르고 빗질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2월 4일 종점 일기 1―내가 보는 모든 것」중에서

사랑하고 오는 길에
나지막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빛을 통해 문득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

혼자 걷다 그만 넘어진 이에게
다가가 먼저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

세상의 오해와 맞서는 이의 곁에
가까이 서서 그의 편을 드는 사람

그러니까 도무지 사랑해서
그 빛에 자주 눈이 시린 탓으로
내리 걷다가 닿은 바닷가에서도

전속력으로 해변을 달리는 이가 보이면
끝내 늦지 않기를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

바다 앞에 어정대다 결국 웅크려서
어깨를 들썩이는 이의 옆에 앉는 사람

눈으로는 파도를 쓰다듬으면서
한 사람을 내내 생각하는 사람
---「2월 6일 나는」중에서

인간은 늘 어리석고 둔하지만, 누구에게나 특히 더 그렇게 돼버리는 시기가 있는 거 같아요. 마테오가 마테오가 아니었을 무렵, 절도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혔을 때처럼 말입니다. 다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해요. 삶은 자주 엉망이지만 거기엔 내 몫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아직 남아 있고, 그 아름다움은 반드시 예정되어 있다고. 마테오의 노래를 듣는 난 아직도 더럽고 치사하지만, 언젠가는 아니게 될 수도 있지요. 이제부터 착해지고 예뻐지겠다, 맘먹고서 지은 노래를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그럴 거예요. 나에게는 나의 아름다움이 준비되어 있다고 믿으며 살면 말입니다. 마테오가 된 매튜가 그걸 증명했잖아요.
---「2월 19일 매튜와 마테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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