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말씀은 글자 이상의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스스로 일하신다.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은 스스로 해석자’(Scriptura interpres sui ipsius)라고 고백한 이유이다. 심지어 요한복음은 말씀이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시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은 것이다. 그 육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말이다. 따라서 성경은 사람이 쓴 것이지만, 임의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곧 영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영으로 말씀을 읽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는 성경 읽기가 불충분하다는 뜻으로, 성령이 우리 눈을 밝히 열어 주셔야 온전히 읽히고, 그 뜻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시편 기자(記者)가 고백한 것처럼 말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그러므로 성경 묵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과 연구보다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기다림. 곧 성령의 역사를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그 말씀을 온전히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묵상에 수동적인 측면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게 기다리며 묵상하는 우리에게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 말씀을 사모하여 묵상하고 따르는 것은 이미 살핀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고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후 벌어지는 우리의 길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 이상의 기적으로 나타나게 될 테니까.
이 책은 성경 전체를 통독하는 이들을 위해 썼는데, 더 깊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을 통독하려 한다면 먼저 이 책의 사도행전 부분을 읽는다. 그때 사도행전의 전체 그림이 매우 쉽게 그려질 것이다. 이같은 읽기를 마치고 사도행전을 읽는다면, 그 전체 주제와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본문을 이해하고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좀 더 용이하도록 각 장의 말미에 그 성경 부분의 전체 개관과 성경읽기표를 함께 넣었다. 아마 즐거운 성경통독이 되리라 믿는다.
---「서문」중에서
애굽에 갈 때는 70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인 까닭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래 애굽의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도행전 7장 6절의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는 기록을 볼 때 400년 이상 애굽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오랜 날 동안 왜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비밀을 알기 위해 역사를 좀 살필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애굽은 나일 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를 중심으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이다. 이처럼 비옥한 애굽은 주변 나라들의 침략 대상이었다. 그러던 중 외국의 통치자라고 불렸던 힉소스 족(히 타이트 + 후리 + 셈 족)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출현하여 시리아, 팔레스틴, 애굽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그때 애굽을 점령한 힉소스 족이 애굽의 15,16,17대 왕조를 세웠고, 기존의 수도인 테베를 폐하고 고센 지방의 아바리스에 새로운 수도를 세운 것이다.
그 정확한 연대에 대한 주장은 다양한데,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15대 왕조는 멜라트의 BC 1791년부터 버넬의 1750년, 그리고 캠브리지 고대사의 1674년까지로 그 추정연도가 넓다. 하지만 힉소스족의 통치는 18대 왕조를 연 아모시스에 의해 종결되는데, 그것을 멜라트와 버넬은 1567년으로, 캠브리지 고대사도 같은 연도로 추정한다. 그래서 대체로 모세가 태어난 시기를 BC 1350년 경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약 BC 1750년 경에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힉소스 족의 통치 기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버넬의 경우 183년, 멜라트의 경우 224년, 캠브리지 고대사의 경우 107년 정도 이어진 것으로 보는데, 길게는 200년, 짧게는 100년 정도 힉소스 족이 통치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은 애굽의 총리대신을 지낸 요셉의 후광 때문에 적게는 100년부터 200년 정도 부귀영화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모시스의 18대 왕조가 세워지면서 외국인 통치자로 불리던 힉소스 족은 축출되었는데, 그때부터 애굽인이 볼 때 외국인이었던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_출 1:8
--- p.40~41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죄가 늘 공동체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현실은 촘촘히 얽힌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회개는 자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다윗은 암논의 행위에 대해 분노했었다(삼하 13:21).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암논을 징계하지 않았다. 사실 다윗은 암논을 징계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이 부도덕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때 다윗은 회개했어야 했다. 하지만 다윗은 이때도 촘촘히 얽힌 미래를 보지 못했다. 현실만 보고 대충 넘어가길 원했다. 이제 다윗의 죄는 촘촘히 얽혀 압살롬에게로 넘어간다. 압살롬은 자신의 친누이 다말을 위해 분노하였고 암논을 죽인다.
--- p.116~117
우리가 역대상을 읽으며 안도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을 인정하신 이유가 그의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역대상을 읽으며 정말 안도하는 것으로, 우리가 비록 범죄한 존재들이지만, 결국 역대상에 기록하지 않은 허물과 죄에 대한 기록처럼 우리의 모든 잘못의 기록들이 지워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기록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주를 바라보며 살려고 했던 아름다운 노력과 헌신들은 매우 자세히 기록될 것이다. 다윗처럼 말이다. 역대기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말하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아름다움만 기록하시는 하나님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 p.163
하지만 그로부터 약 12년 후, 바울이 1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인 61-63년 경에는 놀랍게도 그 감옥에 마가도 같이 있었다(골 4:10). 뿐만 아니라 어느 사이엔가 마가는 바울에게 바나바의 사촌보다 ‘동역자’(몬 1:24)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바울은 그의 최후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 디모데에게 쓴 편지인 디모데후서에서 마가를 데리고 올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때 바울은 마가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평가하였다. 이같은 기록들을 볼 때, 마가는 바울 사역의 후반부에 바울과 함께 있었고, 복음에 대한 바울의 풍부한 이해를 전수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마가가 복음의 초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수난에 있음을 정확하게 알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 p.398
이같이 아픈 마음을 가지고 돌아온 바울이 ‘눈물의 편지’ 혹은 ‘혹독의 편지’라고 불리는 ‘세 번째’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고린도 교회로 보낸다. 이것도 소실되어 어떤 편지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후에 쓴 고린도후서로 미루어 보면, 그 편지의 내용이 매우 강했던 것 같다. 그 편지를 보낸 후에 바울은 마음이 매우 힘들어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고후 7:8)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바울이 써놓고도 후회할 만큼 ‘혹독한 어조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답장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우울증에 걸릴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궁금해서 디도를 만나려고 드로아까지 갔지만, 디도가 더디 오자(고후 2:13) 마게도냐로 넘어간다. 사실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 복음의 문이 열려 전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그의 평생 목적인 복음 전도조차 할 마음이 아니었다. 고린도 교회 때문이었다.
--- p.477
사실 다른 교회들과 달리 에베소서에 어떤 논쟁이나 토론이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년을 지내는 동안 매우 깊은 가르침을 받고서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의 관심은 오히려 성숙에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선 신앙의 기본적 이해로, 마치 그동안의 가르침을 정리하려는 듯이 교회론,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인간론, 종말론과 윤리론으로 이어지는 구속사를 아름답게 서술한다. 다른 서신에서 볼 수 없는 평온함과 수려한 전개이다.
--- p.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