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이꾼들이 배 위에 앉자
사랑 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좋이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좃니는 바다는 어디
건너 서서 저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 p.21, 「바다」중에서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p.41, 「못 잊어」중에서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맛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알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 p.62, 「비단안개」중에서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초(苦椒)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 p.81, 「님과 벗」중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 p.132, 「초혼(招魂)」중에서
평양에 대동강은
우리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 가다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과 이도령도 살았다지요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는 담양
꿈에는 가끔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찾아 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 p.151, 「춘향과 이도령」중에서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p.156, 「산유화」중에서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怜悧)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啼昔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 p.166,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중에서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바잽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붓는 벌불에 터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 줄을 모른다더라
잊음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저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가 들려나 다오.
--- p.184, 「고독」중에서
강 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건너가지 않고서 바재는 동안
때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다리를 무너치고 흘렀습니다.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갔던가!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 저편서
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
--- p.213, 「기회」중에서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여위네
가을 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 p.303, 「실버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