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한 저자는 특별히 다수 세계 그리스도인에게서 도전을 받았다. 그 그리스도인은 자주 잘못 사용되는 본문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막 14:7)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이 구절은 가난한 자를 너그럽게 돌보라는 율법의 명령(신 15:11)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민감한 북미의 그리스도인도 이 텍스트를 시혜자의 관점에서 읽기 쉽다. 즉 우리에게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시간과 의무가 항상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을 억압하는 정권 아래 사는 가난한 다수 세계 그리스도인은 세상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핍박자가 항상 있을 것임을 기억하게 하는 비극적인 말씀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내어 전 세계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의 다양한 성경 해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여성과 다양한 소수자 무리, 가난한 사람들의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죄를 깨닫고 새롭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가진 전통적 이해가 튼튼해지고 강화될 것이다. 모든 전통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 새로운 것도 뿌리를 내리고 전통이 되면 나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장 전반부에서 살펴본 문학적 해석처럼, 우리는 모든 사회-과학적 해석을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 역사에서 나왔든, 압력 집단에서 나왔든 각각 그 장점을 살펴야 한다. 모두가 다 합당하거나 유익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성경 이해의 지평을 크게 넓힐 것이다. 이 장에 있는 각주가 다른 장보다 좀 더 많지만, 독자들이 그런 작업을 정확하게 시작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다.
--- 「3. 문학적 및 사회과학적 해석법」 중에서
우리는 성경의 진실성을 수용하는 일은 단순히 편견에 사로잡힌 교조주의, 즉 자체의 출발점을 무작정 가정하는 입증되지 않은 전제론이 아님을 믿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변증학자들이 전문 용어로 ‘전제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 속 계시의 진실성과 같은 신념을 가정함으로써 시작한다. 반대로 우리는 수정된 증거주의자나 입증론자의 입장을 수용한다. 라이트는 그런 접근법을 ‘비판적 실재론’이라고 하며 우리는 그와 의견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검증하여 수용 또는 기각하는 어떤 가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모든 대안적 진리 주장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접근법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생존력과 방어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믿는다. 이것은 존재 및 실재의 문제를 경쟁하는 다른 대안들보다 덜 어렵게 설명한다. 우리는 과학적 의미의 증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카넬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철학 체계를 분명히 성경에서 발견하는데, 그러나 이 철학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성경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검증해 보면 이 체계가 다른 철학 체계들보다 삶을 더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 「5. 해석자」 중에서
… 현대의 독자는 성경 텍스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가? 저자가 텍스트에 한 가지 의미만을 담았을지라도 한 가지 의미 이상을 가질 수 있을까? 텍스트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경우, 저자의 의도는 이들보다 더 중요할까? 분명 현재의 해석자들은 텍스트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뭐든지 할 수 있다. 저자가 나타나 항의할지라도 우리는 텍스트를 가지고 유희를 하고, 부지중에 그릇 해석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다. 앞 장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텍스트를 현대의 범주로 분류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텍스트에 대해 이상한 질문을 하거나 해체하고 재구축할 수 있다. 인쇄된 페이지의 행간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는, “복음주의 해석자로서 성경 텍스트를 다루는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전하시는 것을 찾으려 한다면, 그래서 성경 텍스트가 의미하는 것을 찾으려 한다면, 이것이 우리의 방법론과 해석 방법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목적이 저자/텍스트 중심적이라면, 역사적, 문법적, 문학적, 문화적 방법론 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정확한 해석 방법론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텍스트의 의미와 관련된 몇 가지 전략적 질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 「6. 해석의 목표」 중에서
이전 장들에서, 우리는 해석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해독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정의했다. 그러나 해석으로 시작된 이 과정은,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텍스트가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분명, 텍스트가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기 전에는 올바른 적용을 찾을 수 없다. “적용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우리 삶과 연관된 구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운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용 단계를 위해 사용되는 용어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적용을 해석의 일부라 하고, 다른 이들은 적용을 별개의 단계로 생각한다. 어떤 이는 텍스트가 당시에 ‘의미했던’ 것과 지금 ‘의미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복음주의 학자들이 사용해 왔던 가장 널리 알려진 구분 중 하나는, 의미와 의의 사이에 대한 허쉬의 논의를 따른 것이다. 이 경우 ‘의미’는 성경 텍스트가 원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의도했던 사상을 가리키고, ‘의의’란 후대의 다른 상황에서 원래의 의미가 지닌 함의를 가리킨다. 이 관점에서 보면, 특정 본문의 의미는 그것을 읽는 독자와 상관없이 일정한 반면, 의의는 독자마다 다를 수 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여러 학자들은 화행이론을 적용해 발화 행위를 발화 수반 행위 및 발화 효과와 구별한다. 즉, 텍스트가 말하는 것과 그 텍스트에서 저자가 이루려고 의도한 것(이를 위해 필요한 기법 포함), 저자가 의도한 결과를 구별한다. 그러나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이슈는 분명하다. 성경은 원래의 독자를 넘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적용의 적절성을 파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성경의 메시지는 오늘날의 삶에 대해, 즉 보편적인 삶과 구체적으로는 각 개인의 삶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 「12. 적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