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더스가 〈라신〉의 문을 열고 들어온 2008년 어느 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첫 문장」중에서
와인에 관한 〈지식이 많든 적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억지로 와인을 이해하려고 달려든다면, 억지로 대답을 찾아내려고 애쓰거나 자신과 와인의 관계에 억지로 타인의 대답을 끼워 맞추려고 애쓴다면 와인을 (그리고 다른 많은 것을) 오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pp.36~37
〈맛의 층위〉 같은 이야기가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층위〉라는 단어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경험은 그렇다. 〈맛의 인상〉이라고 하면 더 정확하려나? 처음에는 산미와 광물성에 집중한다. 각각 또렷하게 도드라지는 특성들이니까.
--- p.48
중요한 사실은 와인이 와인메이커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나는 와인메이커를 와인의 짝꿍이라고 즐겨 부른다. 그렇게 와인은 농산물에서 기술의 산물, 예술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예술품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와인을 예술에 빗대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와인은 예술적으로 표현되는 무언가, 와인메이커의 심미관을 표현하는 무언가로 거듭날 수 있다.
--- p.55
소믈리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결코 내가 따르는 와인보다 훌륭한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와인은 나보다 우월하다. 나는 망치기만 할 뿐이다. 내가 코르크를 따는 순간 파괴의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내게 하찮게나마 능력이 있어서, 행운이 따라서, 옆에서 도움을 주는 셰프가 있어서 그 덕에 음식과 와인 사이에, 식당과 와인 사이에, 사람과 와인 사이에 관계와 공동체와 어우러짐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경험이 생성되고 더 즐거워진다.
--- p.71
나는 와인을 대할 때 타인을 따라 하지 않는 태도가 지극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살면서 그저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받아들여진다고 느끼기 위해 많은 것을 따라 하지만, 와인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남을 따라 하는 행위는 무익하다. 맛에 관한 이해는 아주 사적인 영역이다. 나는 결코 타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맛보지 못할 것이고, 타인도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맛보지 못할 것이며, 이는 누구든 마찬가지다.
--- p.86
나는 어떤 와인을 만들고 싶을까. 사실 나의 목표는 과즙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그 목표를 자신에게 주입하려고 애쓰고 있다. 뻔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마 나는 와인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싶은 것 같다. 뻔한 해결책을 쓴다면 기대하던 것만 얻을 수 있으니 참으로 시시하다.
--- pp.140~141
시작은 자기 자신이다. 이제 조명을 받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 자신이다. 와인에 관해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 와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자기만의 맛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풍미를 찾자. 자신의 과거, 자기만의 풍미, 자기만의 맛 역사와 접촉하고, 자기만의 맛 언어가 감각의 언어로 거듭나게 하자. 남의 것을 받아들이지 말고 흡수하자. 함께 와인 속으로 뛰어들자.
--- p.164
우리에게 와인의 이름은 아주 중요하다. 사람들은 작은 문구에 관심이 많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입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의미 해석과 이야기가 문구에 덧붙여지는데, 내게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다.
--- p.330
〈훌륭한 와인〉이란 표현은 오랫동안 과용되었으나 여전히 유용하다. 한 와인이 다른 와인보다 훌륭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와인메이커와 상관이 있을까?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어떻게 답한다 한들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 p.469
기록은 미적 형식이 되고, 내게 떠오른 생각이나 직감은 지금 눈앞에 있는 기록물 속에 존재한다. 나와는 관련 없이 홀로 오롯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꼭 완성된 문장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개의 낱말이 모여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내 기록물은 엉망진창이고, 나는 이대로 만족한다. 대단히 기발한 점은 없지만 그것도 괜찮다.
--- p.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