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라한 시작이 나중에 소설을 쓸 때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줄지 그땐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내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에 당시 경험이 고스란히 담겼다. 다양한 경험, 그중에서도 실패한 경험이 많을수록 소설을 쓰는 데 좋다. 소설은 얄궂게도 실패를 먹고 자란다. 나는 마음이 평안하고 살림이 넉넉한데 소설을 쓰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 p.15, 「실패한 경험이 많을수록 좋은 직업」 중에서
나는 제작사 관계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왜 무명작가의 망한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려느냐고 물었다. 제작사 관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언론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어 원작으로 삼을 만한 소설을 샅샅이 찾아봤는데, 『침묵주의보』보다 괜찮은 작품이 없었다는 거다. 또한 기존 한국 소설과 달리 서사가 뚜렷해서 영상화하기에 장점이 많다는 평가도 받았다.
--- p.51, 「분노와 열등감은 좋은 창작의 동기 :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중에서
살면서 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면,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직시해 보자. 처음에는 아플지 몰라도 치료 효과는 확실하다. 나는 소설 집필을 마치면서 비로소 탈상을 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경험자로서 확실한 효과를 보장한다.
--- p.62, 「자기 치유를 위한 소설 쓰기 :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중에서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직장인 생활을 해본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작가를 배출하는 시스템은 출판사, 대학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출판사 편집자와 대학 강사 등 일반적이지 않은 직업군이 유독 소설에 자주 노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쓴 산문집이나 웹소설, 웹툰이 기존 한국 소설이 외면해 온 영역을 메우며 소설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p.72, 「많이 경험하고 부족하면 취재하자 : 장편소설 『젠가』」 중에서
전 과목 평균 100점 만점에 90점인 학생과 수학 점수만 늘 100점이고 나머지는 낙제 수준인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전자가 후자보다 석차에선 앞설지 몰라도, 수학 올림피아드에 대표로 나갈 가능성은 전자보다 후자가 더 높지 않을까. 단점 보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장점을 강점으로 극대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초고는 본판이 엉망이지만 매력 하나는 확실했다.
--- p.80-81, 「장점을 강점으로 극대화하라 : 장편소설 『정치인』」 중에서
장편소설 공모로 등단에 도전하는 일은 주식 투자와 비교하면 집중 투자와 비슷하고, 단편소설 공모로 등단에 도전하는 일은 분산 투자에 가깝다. 투자에 정답은 없다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라. 게다가 주식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일지 몰라도, 장편소설 집필은 대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다. 공모에 당선돼 출간에 성공하더라도, 인세로 의미 있는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데다 단편소설 청탁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 p.110, 「등단 기회를 늘리는 전략 : 단편소설」 중에서
장편소설을 쓰는 과정은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이는 허세나 과장이 아니다. 나는 장편소설 초고 한 편을 완성하는 사이에 최소한 4~5kg의 몸무게가 빠지고, 완성 후에는 후유증 때문에 최소한 한 달 이상 방전 상태로 지낸다. 내가 아는 최고의 다이어트 방법은 장편소설 쓰기다.
--- p.136, 「조금 늦게 시작해도 괜찮은 직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