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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못 버는데 찻집이나 할까?

: 캐나다 시골의 찻집 주인이 영국 앤 공주의 티파티를 준비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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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314g | 148*210*12mm
ISBN13 9791190631808
ISBN10 119063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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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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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가서 ‘무릎을 감추는 교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물었다. 몇 차례 대화 끝에 학년 부장 선생님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 그러시면 이민을 가세요.”

나는 딸아이의 학교에 다녀온 다음 날 바로 이민 신청을 했다. 참고 견디는 것도 교육이고 적어도 친구들과 ‘함께’ 통과하는 공동체 정신만은 건지지 않겠나, 어차피 사회가 부조리하다면 그걸 견디고 대응하는 걸 배우는 것도 좋지 않겠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나도 힘을 내서 채울 거라는 핑계를 대며 애써 지탱하고 있던 끈이 ‘탱’하고 끊어져버린 느낌이었다. 더이상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부모와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남편이 직장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일 등 한바탕 말 못할 소란이 일었으나 결국 2012년 겨울, 우리 가족은 캐나다 동부의 멍크턴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멍크턴에 도착한 날은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큰 눈이었다.
--- p.18

나는 음악이 색깔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칸딘스키가 《컴포지션》 연작을 통해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추상적 방식이 아니라 진짜로 빛과 소리의 자연과학적 ‘깔맞춤’으로 말이다. 소리와 빛은 둘 다 파장을 가지고 있는데 도미솔과 RGB의 파장 비율이 1 : 4/5 : 2/3 로 똑같아서 소리와 빛의 관계가 일대일로 대칭을 이룬다고 한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추상화로 번역된다. 몬드리안의 색색의 네모들은 크기(장단)와 채도(음색)에 대응해 음악이 된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그림으로 번역해서 음악 갤러리를 만들면 좋겠다. 액자에 ‘엘튼 존 컴포지션 《굿바이 엘로우 브릭 로드》’나 혹은 ‘바흐 구성 《골드베르그》’라고 적어 놓으면 참으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림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실제로 2000년 일본의 한 넥타이 회사는 종달새 소리를 색깔로 바꿔 자연스럽고 세련된 넥타이 상품을 만들었다.)

무채색의 배경에 채도가 낮은 빨간색의 면들이 몽글몽글 떨어지는 쳇 베이커를 들으며 고독하고 달콤하게 히비스커스를 홀짝인다. 오늘은 폭설의 풍경과 만나 쳇 베이커를 소환했지만 화사한 햇빛이나 산들바람에 매칭한다면 능히 댄스곡을 불러올 재간을 가졌다.
--- pp.37-39

오늘은 어쩐지 아름다운 여인이 첫 손님으로 올 것만 같았다. 찻집 문을 열자마자 과연 예상대로 긴 치마를 입고 분홍색 카디건을 걸친 손님이 들어왔다. 발목까지 내려온 긴 모직 치마는 무릎에서 발을 향해 날렵한 경사를 이루고, 딱 맞게 입은 파스텔톤의 분홍색 상의는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오랜만에 보는, 캐나다 시골마을에서 보기 힘든 빛나는 매칭이다. 젊은 시절 에스모드에서 패션을 전공했던 나는 누가 입은 옷에서 특별한 취향을 읽는 걸 즐긴다.

“어떤 차를 마시면 좋을까요?”
파르라니 깎은 수염에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이런 경우는 미리 대비해두지 않아서 당황했다. 나무 쟁반을 든 채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크롤 해본다. 여자 손님께 권하면 좋은 차 폴더는 건너뛰고 남자 손님에게 어울리는 차 폴더도 건너뛰어야겠지? 롤업 롤다운. 손님 기분 별 폴더, 날씨 별 폴더…… 머릿속 폴더를 다 열어봐도 여자 옷을 감쪽같이 소화해내는 남자를 위해 마련해둔 폴더는 없다.

‘혹시 그 차라면?’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직 정체 파악을 마치지 못한 묘한 차가 하나 있었다. 뱅드로즈(Bain de roses). 한국말로 하면 ‘장미 목욕’ 쯤 될까? 우아한 맛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름은 아니다.
--- pp.87-88

손님이 불쑥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한다. 마뜩지 않아 하는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네?”
“남편이 소리를 질러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거든요.”
평소에는 좀처럼 말을 걸지 않는 손님의 갑작스러운 자기 고백에 적잖이 놀랐다.
“여기 오면 평온해져요.”
오해했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 그녀는 자신만의 평온함을 찾아서 우리 찻집에 왔던 것이다. 어쩌면 일주일에 한 번 버건디 립스틱으로 입술을 바르고 정성껏 자신을 꾸민 다음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음악을 키스 자렛(Keith Jarrett)으로 얼른 바꾸었다. 언젠가 지쳤던 나를 어루만져 반복하여 일으켰던 《Hymn of Remembrance》라는 곡을 그녀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녀가 우두커니 찻잔을 들고 있는 동안 잔잔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퍼져간다.
--- p.123

경매에서 이긴 다음 날 멍크턴의 유일한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워낙 조용하고 한가한, 뉴스 거리가 많지 않은 작은 도시라지만 이게 뉴스에 나올 만한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 망설이는데 기자가 말한다.
“당신이 마니토바주의 경쟁자를 이긴 거에요.”

멍크턴 옥션이 인지도가 높아져서 미국이나 캐나다 다른 주의 수집가들까지 이번에 참여했는데 막판에 한국에서 이민 온 제시 킴이라는 여자가 다른 주의 최종 경쟁자 마니토바의 비더를 이겼다. 게다가 찻잔 하나 값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으니 우리 도시의 뉴스거리라는 것이다.

승리의 앤슬리를 가져다 다른 찻잔들 사이에 놓았더니 그동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다른 찻잔들이 일순 ‘오징어’가 되어버렸다.

--- pp.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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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홍대 댄싱 퀸에게 촌스러운 스탭을 구사하며 ‘뻐꾸기’를 날리던 대머리 피디의 후배이자 딱 일 년 전 세계여행을 하면서 멍크턴 찻집을 방문한 목격자, 그리고 지금은 밤낮없이 편집실 귀신이 된 나는 맘의 여유라곤 손톱에 때만큼도 없는 상태로 책을 집어들었다.

우러난 차를 보는 맛, 그 향에 배인 이야기가 뭉클하다. 잠시나마 내 몸에 절실한 히비스커스 한 잔을 다운로드한다. ‘깡’이 센 제시 언니가 우아한 몸짓으로 타준 차 한 잔 같이 드셔보시길 권한다. 근데 이 가족, 내일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 강효임 (MBC《PD수첩》PD)
이 책은 향긋한 차에 관한 책일까요? 그렇습니다. 캐나다의 소도시 멍크턴에서 찻집을 하는 필자가 차에 관해 해박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히비스커스, 콤부차, 다르질링에서 저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뱅드로즈와 겐마이차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차에 대한 지식을 풍부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접할 수 있습니다.

차 한 잔과 함께 듣는 빌 에반스와 쳇 베이커의 재즈는 덤이죠. 물론 차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찻잔 곁을 흘러가는 삶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의 숨 막히는 교육 환경 이야기로 시작해서 캐나다의 낯선 소도시로 이민 간 한인 가족이 집을 구하고 찻집을 열기까지의 고투를 거쳐, 이야기는 어느새 먼 이방의 삶과 사랑에 대한 소묘로 흘러갑니다.

찻집을 찾는 벽안의 손님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노인이 가져온 한국 찻잔, 영국 앤 공주의 애프터눈 티 파티 준비 소동 등등. 흥미진진한 사연들 속에서 독자는 타향을 고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민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스르르 마지막 페이지에 닿을 만큼 맛깔스러운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캐나다 시골 찻집의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 이장욱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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