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 떼어놓고 보면 해경의 대처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비인간을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하나의 집합체로 간주하고 이로부터 인지와 행동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실마리가 잡힐지 모른다. 손에 총을 쥔 사람과 손에 칼을 쥔 사람은 상이한 존재다. (중략) 마찬가지로 밧줄을 쥔 구조대원은 망치를 든 구조대원과 다르며, 100톤급 함정을 타고 있는 대원은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대원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각자 독특하게 사고 현장을 이해하고 전략을 세우며 특정 가능성이나 위험을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때로는 왜곡한다. 익수자 구조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갑판 위를 재배치하고 장비를 제작했던 123정은, 세월호 현장에서 맞닥뜨린 상황을 매우 편협하게 해석했고, 선내에 진입해 승객을 빼내 오거나 퇴선 방송을 송출하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 p.38~39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구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통신에 기대어 구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수많은 지시-보고를 위한 통신 중 어떤 교신도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큰 재난 상황에서 구조 세력을 출동시키고 모니터링하는 주체도 여럿이기 때문에 현장에 출동하지 않은 간부 중 한 사람이 책임을 지고 컨트롤타워를 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휘부의 역할은 현장 지휘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조 활동을 도울 수 있도록 구조 인력을 원활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통신 기술은 현장 세력들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도울 수 있도록 정착되어야 한다. 일상 시의 통신 규약 속 상하 조직의 틀에서 벗어나,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며 구조 활동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규약과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 p.56~57
CMIT/MIT 사례는 재난 해결의 종착지가 법정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법정은 다른 민형사 사건을 다루어 오면서 축적된 판단 기준과 법리를 바탕으로 판결한다. 그러나 많은 재난이 단일한 원인과 결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을 해결하는 과정과 과학기술적 규명 과정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난을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해 확실한 인과관계의 확인과 입증, 명쾌한 과학기술적 설명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겠지만, 이것이 담보되어야만 꼭 재난의 책임이나 해결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재난 상황에서 어떤 부분은 절대 끝을 맺을 수 없으며 계속되어야만 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에서 과학 연구와 조사가 그것이다.
--- p.74-75
세월호 특조위, 선조위, 사참위의 실패는 그다음 참사의 조사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2년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한 독립적 조사 기구 설치를 지지하는 운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는 시간과 자원을 투여한들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한국 사회에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법적 책임에만 집중하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로 재난 조사를 종료할 것인가? 조직적·이념적인 변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술적 대책만 추진하는 쳇바퀴 속에 머물 것인가? ‘재난 조사’라는 도전을 계속하기 위해 재난 조사의 실패를 곱씹어 볼 때다.
--- p.98
사참위 종합 보고서 두 권의 구조가 이처럼 비슷해진 것은 당연히 보고서 집필진이 그렇게 목차를 짰고, 그것을 위원회가 승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참위가 조사하는 두 참사에서 볼 수 있는 공통의 흐름 또는 유형을 보고서의 목차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많은 생명을 앗아 간 사건이 2014년 4월 16일 하루 동안, 그리고 1994년에서 2011년까지 17년 동안 발생했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사건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피해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데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다.
--- p.139
주체/객체, 인간/비인간과 같은 구분을 명료하게 하는 것은 입법이나 사법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법적으로 재난을 정의할 때도 사회/자연의 이분법이 중요하게 활용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느린 재난으로서 미세먼지의 발생과 그로 인한 피해는, 라투르 식으로 말하면 ‘혼종적’인 측면이 있다. 미세먼지 오염은 인간 활동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사막과 같은 토양에서도 발생하며,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 정체나 이상기후와 맞물려 더 심화되기도 한다. 미세먼지는 인간에게 각종 질병을 일으키며 식물의 생장도 저해한다. 미세먼지라는 재난은 근대적 이분법의 어느 한쪽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 p.187
이번 팬데믹 시기 코로나19 재난을 다루는 언론 보도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은유와 정서는 감염병에 관한 특정한 감정을 자극하고 특정한 방식의 대응 전략을 추동했다. 시시각각 경계를 넘어 확산되는 바이러스의 존재가 시각화되면서,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고 바이러스와 이에 감염된 사람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오염물로 인식되었다. 또한 바이러스의 공간적 확산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이상적인 목표로 추구되면서, 그것을 방해하는 사례들은 비난의 초점이 되고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는 불가피한 현상은 정책적 실패의 증거로 부각되었다. 이에 더해, 이러한 감염병 재난에 대응하는 기술적 수단에 대한 양가적인 인식도 명백히 나타났다. 팬데믹 초기에는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기대되었지만, 막상 백신 개발이 완료되고 접종이 시작되자 새로운 위험과 갈등을 내포하는 상품으로 다루어졌다.
--- p.160~161
재난은 처음에는 ‘새로운 것’으로 우리를 압도하지만, 점차 ‘익숙한 것’이 되어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유사-전례’는 현재의 재난과 완전히 똑같지 않더라도 그와 유사한 과거의 경험을 끌고 들어와 새로운 재난을 익숙하게 만든다. 2020년 초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역시 처음에는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와 시민을 당혹케 하는 매우 새로운 질병이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빗대어 이해할 수 있는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떠올릴 수 없었을 때는 도대체 코로나19가 어떻게 풍토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만약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된다면 우리는 이 질병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미크론=계절독감 레토릭’의 출현으로 계절독감이라는 ‘유사-전례’에 빗대어 코로나19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코로나19는 전례 없는 새로운 질병이 아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풍토병이 되기 시작했다.
--- p.176~177
음모론은 그 자체의 삶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씨앗에서 작게 시작하지만 자라나고 뿌리를 깊게 내리며 가지를 친다. 세월호가 복원성이 불량한 배였다는 사실에 대한 상세한 분석,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착, 충돌 흔적의 부재도 음모론을 잠재울 수 없었다. 음모론자들은 여러 가정을 동원해 세월호의 복원성이 양호했다고 제시했고, 솔레노이드 밸브가 돌아간 것이 침몰 후에 일어났을 수 있다고 했으며, 잠수함은 선체가 아닌 스태빌라이저에 충돌해 이를 휘게 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조사관과 유가족 중에는 세월호의 의혹이 아직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조사가 계속되면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세월호가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과 기술이 얽혀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우연과 오류를 낳는 실제 세상은, 그것도 세월호 참사처럼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세상은 어떤 공학·심리학·방재학 이론으로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를 100퍼센트 완벽하게 설명하고 이해하려 했던 의도는 음모론의 싹을 키우는 토양이었다.
--- 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