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좋은 악역’이 소름 끼치는 상황을 연출하기 전,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모니터를 통해 눈에 보이게 만드는 도입 부분의 ‘희망과 위로’ 파트를 담당하는 방사선사다.
가끔 기대와는 다르게 치아의 수명이 끝났다는 선고 전, ‘절망과 슬픔’ 파트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처럼 치과 진료 시 치과의사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다음 에피소드의 예고편이 될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하여 모니터에 띄우는 ‘치과 방사선사’가 정확한 나의 배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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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 번씩 자가면역질환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으며 생활하는 내 몸은 정확히 시간의 흐름에 맞춰 반응한다. 주사를 맞기 4일 전부터는 소염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약을 안 먹고 버티면 육체 통증에 더해 우울감까지 추가된다. 무모한 도전임을 깨닫고 후회를 하며 약통을 여는 것을 2주마다 반복한다.
주삿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오면 3일 정도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피로감이 심하고, 이후 일주일 정도는 컨디션이 괜찮다. 최근 몇 년간 사실상 한 달에 절반만이 상태가 정상인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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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평균에 한참 못 미치지만, 절밥의 추억은 잊지 못하고, 대외 평가 일정에 맞춰 회의실을 빌릴 수 없어 당황하던 때에 도움을 준 직원은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조금 더 양보하고 배려하기로 결심한다.
더불어 기억해야 할 일들도 기억하기 힘든 게 인생이다. 기억 안 해도 되는 불필요한 일들을 기억해서 가뜩이나 부족한 뇌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일, 억울했던 일, 가슴 아팠던 일 등을 기억에서 지우면 자연스럽게 좋은 기억들로 채울 공간이 마련된다. 그러다 내 저장 장치가 꽉 차면 이웃의 해마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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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가 중요한 경기에서 동료들은 다친 선수를 탓하지 않는다. ‘○○○ 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졌다’라는 인터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부상은 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가장 억울한 사람은 당사자이고, 누구든지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링커 투혼’이나 ‘부상 투혼’을 욕하지는 않는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투지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할 뿐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가장 힘든 건 본인이다. 나와 내 가족이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불편한 몸으로 인해 더디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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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하루하루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저녁 6시경 귀가해서 여섯 시간 육아에 전념했다. 자정이 되면 쓰러지듯 잠이 들어 여섯 시간 정도 취침했다. 여덟 시간 이상 수면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아니었다. 육아로 지친 삶은 나에게 만성피로와 함께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1분 이내에 잠들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선물해주었다. 삶이 힘겹다고 느껴진 시기에 알게 된 비그린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내 가게니까 하게 돼요”라는 사장님의 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피곤하지 않고, 즐겁게 하게 된다’라는 의미였음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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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과는 국내 45개 대학에 개설되어 있고, 매년 신입생 2,400여 명이 입학을 한다. 3년 또는 4년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고, 시험에 합격하여 면허를 취득한 경우에만 ‘채용 서바이벌’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서바이벌의 코스는 ‘정규직, 계약직, 인턴’ 세 가지로 나뉜다. 코스별 난도는 병원의 규모와 정규직 전환 가능성에 따라 달라진다. 궁극적인 목표인 ‘빅5 병원’의 정규직 입사 가능성이 높을수록 경쟁의 난도가 높아진다.(…)
졸업을 앞두고 두 달간 병원에서 현장 실습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2개 학교, 16명 학생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일주일씩 파트를 돌아가며 8주간 실습을 진행한다. 실습의 많은 시간을 벽에 바짝 붙어서 관찰하다 보니 실습생들에게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애칭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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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좋은 일들도 많다.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쓴 딸로 인해 가슴 아픈 일들이 많겠지만, 아이와 함께 만들어갈 일상의 소소한 추억들 또한 더욱 두터워질 것으로 믿는다. 비록 어른이 된 지금은 거짓말을 많이 해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은 못 받게 되었지만 예쁜 딸이 매일매일 더 큰 선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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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0권 이상의 책을 읽다 보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껴진다. 글자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사는 내 기준에서는 사계절이 모두 독서의 계절이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은 “당신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최고의 투자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서만큼 가성비 좋은 투자도 없다. 실패하지 않는 투자를 원한다면 ‘북페’에 가서 취향에 맞는 다양한 북(Book)을 선택해 읽어보자. 문학도 좋고, 비문학도 좋다. 독서로 인해 통장 잔고의 변화는 없을 수도 있지만, 삶의 만족도와 자존감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잊지 말자. 좋은 글은 언제나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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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되기 어려운 질병과 함께하다 보니 의욕과는 다르게 천천히 움직이는 육체와 한없이 약해지는 정신으로 힘겨울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아픔과 동행하려고 노력한다. 몸이 아프면 잠시 쉬고, 마음이 아프면 달래준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그만두고,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소중한 지인들의 “잘 지내?”라는 안부 인사에 “‘잘 지낸다’의 기준치를 낮게 하면 잘 지내”라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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