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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 난임에 관한 사적이고도 정치적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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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치유 에세이 75위 | 명상/치유 에세이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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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302g | 130*210*15mm
ISBN13 979119138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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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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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상은 임신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시간 감각 역시 생체 주기를 기준으로 달라졌다. 수정란을 키울 준비를 하던 내막이 착상에 실패한 결과 몸 밖으로 탈락하는 월경혈은 임신 실패의 상징인 동시에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이었다. 월경 시작일부터 이틀은 눈물 바람으로 이불이 얼룩지기 마련이었지만, 3일 차부터는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난포가 무럭무럭 성숙하기를 바라며 생활과 식습관을 가다듬었다.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몸,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에 임신 테스트기는 영원히 한 개의 선만을 보여 줄 것만 같아서 점차 절망적인 마음이었다.
--- p.36

그랬던 엄마가 딱 한 번 나에게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친 적이 있다. 언니가 결혼 5개월 만에 임신한 후 걸려 온 전화에서다. 이미 3년째 임신 준비 중인 나는 소식을 접한 후 충격받은 마음을 숨기려고 언니에게 최대한 밝은 척 말했다. “축하해!” 나의 극심한 난임 스트레스를 곁에서 지켜본 언니였지만, 가족 구성원의 임신에는 타격감이 없으리라 판단했는지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투덜거렸다.

“엄마는 딸이 임신했다는데 그다지 좋아하는 기색이 없으시더라.” 살가운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서툴지언정 소외된 사람한테는 마음 아려하는 엄마의 성정을 알기에, 언니의 좋은 소식을 마음껏 축하하기에는 아픈 손가락이 돼 버린 내가 걸렸던 모양이다. 난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동생에게 전화통을 붙들고 무심한 엄마를 흉보는 언니의 투정에, 나는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지만 모르는 체했다. 그 뒤로 우리는 내가 아이를 갖기 전까지 한동안 서서히 멀어졌다.
--- p.126

누군가 말했다. 사회적 약자는 힘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사람이라고.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없는 것 역시 아이에 대한 사회적 집착이 큰 이 사회에서는 결핍 상태, 즉 상황에 따라 ‘사회적 약자’ 처지일 수 있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남들로부터 오해를 사고 부당한 질문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여느 소수 집단과 같다. 부당한 질문의 특징은 질문에 이미 질문자의 편견이 포함돼 있으며, 대답과 상관없이 답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왜 아이가 없어?”라는 질문.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두는 일이 정상적인 삶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난임 부부는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사정을 고백해도 “병원 가서 적극적으로 시술받는 건 어때?” 따위의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이미 아이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시술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거듭 실패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만 같노라고 정직하게 대답하면, 질문자의 얼굴에 떠오를 낭패감을 감당하기 어려워 사실을 그대로 전할 수 없다
--- p.152

이 책을 쓰는 몇 달간 철저히 ‘난임 당사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그 애씀은 내가 이미 당사자의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취해야만 하는 노력이었다. 나는 과거 난임 시절, 결국에는 자기 아이 갖기에 성공하고 나서 ‘지나고 보니 아름다웠더라’ 회고하는 극복 서사가 담긴 텍스트를 일절 외면했다. 그랬던 내가 당사자를 벗어난 처지에서 회고 형식의 책을 낸다니 우습기도 했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써야 한다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는 자랑 이외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 고민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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