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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우아민 | 무니 | 2024년 03월 1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8 리뷰 9건 | 판매지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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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10g | 125*205*12mm
ISBN13 9791198558879
ISBN10 1198558873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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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장면이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들판으로 달려가다 돌아서 두 팔을 펼치는 모습, 제 코에 풀을 갖다 대고 귀 옆에 꽂는 모습, 그러다 웃음소리를 내며 가늘어진 눈가로 주름이 깊어지는 모습… 아름다운 풍경에는 여전히 당신이 달라붙어 있었지만 나는 어떤 음악을 한 곡 끝낸 것도 같다.
--- 「똑같은 재즈 연주는 없다 단 한번 뿐」 중에서

어떻게 사랑을 미워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르는 건 사람을 두렵게 하니까 조금은 알 것 같은 사실을 믿기로 한다. 사람이, 사랑이 그렇게 단순한 색일 리 없다. 눈물의 색, 기쁨의 색, 미움의 색, 연민의 색… 모든 색의 빛이 모인 흰빛에 가깝지 않을까. 그 빛의 파동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닿기도, 들리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 「고요하고 신중한 미움」 중에서

식물의 뿌리는 기묘하고 아름다워서 하루 종일 보래도 볼 수 있지 않니. 식물 내음이 나는 사람이 좋아. 너는 내게 동적인 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마음까지 조용한 건 아닐 거야. 어떤 사람은 입이 아니라 눈으로 말하기도 해.
--- 「넝쿨식물의 편지」 중에서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시간을 유영하며 변한다. 알만해지기도 하고, 체기가 내려가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앉기도 한다. 사람이 준 상처가 그랬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그랬고, 비 오는 날이 그랬다.
--- 「변덕스러운 진심」 중에서

사랑은 언제나 성숙과 미숙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익숙해질 수 없는 처음과 완전해질 수 없는 감정이 뒤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 「여름의 복숭아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나는 불 꺼진 까만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 현관을 노랑 조명으로 밝혀둔다. 그러면 열쇠로 문을 열면서도 둥근달의 표정을 한 애인이 서 있을 것만 같다. 노란색 조명은 촛불 같다. 영혼을 촉촉하게 하는, 숨긴 표정을 꺼내 들고 싶은.
--- 「우리는 노랑 분위기를 사랑해」 중에서

그렇게 사랑에 매달려 왔다. 그 매달림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나를 지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 기다려진다는 말, 보고 싶었다는 말… 이런 말들이 모인 안전한 세계가 있어 그곳에 나의 불안까지 의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불안해서」 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잔잔해지고 싶을 때 다시 펴 보겠습니다.
시가 잘 뭉쳐지지 않을 때 한 번 더 읽겠습니다.
마알간 책 하나 쓰기 위해 여행 짐을 쌀 때 꼭 챙기겠습니다.
- 이병률 (시인)
상실과 사랑에 내던지는 세밀한 풍경 언어

이 책을 읽으면 마치 비정형의 숲에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저마다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고 있을 때 피어오르는 숲의 전경은 꼭 새벽 연무를 닮았다. 작가가 체득한 풍경 언어로 세세히 적어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의 경계는 이내 흐려지고 구분되었던 자리가 흐트러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이것을 슬픔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은 삶에 끼어든 슬픔에 돌아서지 않고, 묵묵히 가로질러 가려는 한 사람의 소요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저벅저벅, 축축하고 무겁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어떤 결심이 필요했던 누군가가 지난 자리를 다시 걷는 기분으로.

슬픔이 기척을 내밀며 깨어나는 장면 속에서도 작가는 사랑을 수호하려고 한다. 지켜내고 싶은 것이 곧 살아가는 데 이유가 되는, 삶의 명백한 문법을 자신 앞에 주어진 풍경과 함께 드리워져 찾아 나선다. 상실이 주고 간 공백 속에서 침묵을 익히고, 사랑을 깨닫는 범벅 속에서 새 이름을 외우는 순간이다. 작가는 숨어 있기의 귀재가 되려고 하거나, 집 없는 날의 돌아감에 대해 생각하는 아득함, 침묵과 간격을 헤아리는 사유를 통해 이 숲을 지나며 발견하게 된 풍경 언어를 모국어로, 슬픔에 대해 말한다. 슬픔에 말문이 트이는 문장들 속에서 발음해본 적 없는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나란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난데없이 써 내려간 넝쿨 식물의 편지처럼, 무성하기만 했던 슬픔의 정체도 조금씩 알 것만 같은 이유는, 바로 이 풍경 언어가 집요하게 그 슬픔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찾아옴과 떠나감을 동시에 목격하게 되는 숲의 주소이자, 작가가 수집한 단어 ‘기울이다’처럼, 몸을 기울여 세상을 비스듬히 비켜 있는 것들을 만나고 싶어지는 세밀화의 현장이다. 슬픔을 외투처럼 껴입고 싶은 날에, 그리하여 슬픔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날에 우아민의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 서윤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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