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생 미셸
“내가 진짜 파리지엔이야. 이젠 기억하는 게 많지 않지만. 보다시피 늙었으니까.”
“내가 자란 동네는 특권층 사람들이 살던 지역이었지. 하지만 난 말이야, 부르주아처럼 행동하진 않았어.”
잊을 수 없는 드골 장군의 연설. 피레네산맥을 가로지르는 3일 낮, 3일 밤의 행군. 남편 장이 며칠을 보내야 했던 감옥. 포르투갈에서 영국행 배에 올라 런던에 터를 잡고 통역 일을 시작했던 것……. 전쟁이 끝나고 작은 화면의 TV가 처음 방영되어 열광했고,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이 열린 1953년에도 그는 영국에 머물며 쭉 통역사로 일했다. 그는 TV 프로그래머로도 일했다. 베니힐쇼2)의 성공과 셰익스피어 시리즈 실패의 기억이 또렷하다. 그가 행복한 추억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친한 친구 알베르 카뮈와의 여행이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카뮈는 쉬지 않고 파리지앵을 놀려 댔고, 그 역시 그것을 즐겼던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진 과거 곁에는 쓰디쓴 현재 또한 존재한다. 먼저 떠난 아들의 빈자리는 현재의 시간을 늦추고 있다. 그리고 기억은 망각을 닮은 침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 p.8-10
1960년 생 파비엔
“우리 가족은 짧게 잡아도 루이 16세 시절부터 파리에 살고 있는 파리지앵이에요. 부계 모계 모두요.혁명 200주년에 시행한 파리지앵 가족 집계로 확인된 부분이죠.”
파비엔의 가족은 18세기 이래 파리에 살고 있다. 나시옹 지역에서 자란 그는 청소년 시절 그림을 그리거나 배우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가 영화 학교나 장식 미술 학교에 지원하는 데 있어 가족의 반대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에 휩싸인다. 곧 가족 전통이라 할 법학과 정치 학교로 좌표를 튼다. 쇠약해진 아버지가
치료가 힘든 병으로 결국 돌아가시고, 그간 아버지와 그의 동생들을 돌보느라 희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슬프지만 타협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 변호사가 된 파비엔은 화려한 사무실에서 법률 책임자로 일을 시작한다. 이후 생제르맹데프레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뒤이어 몽소 공원 쪽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운 좋게도 그는 언제나 직장 근처에 살았다. “파리에서 가장 큰 사치를 두 개 들자면 ‘시간과 공간’일 겁니다.” 지적재산권과 신기술에 특화된 그는 예술가들과도 상담한다.
딸이 태어났을 때 연극이 다시금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운명적 신호’로 다가왔다. 파비엔은 연극 수업에 등록했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꼈다. 이는 가족과 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연극 〈위험한 관계〉에서 냉소적인 자유연애주의자 역을 맡은 그는 현재 파리 변호사 극단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에너지를 딸에게서도 발견한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조각도 시작했다. 더불어 온라인 매체에 미술 전시회 비평도 기고하고 있다.
--- p.112-114
1970년 생 나탈리
“난 파리를 결코 떠나지 않아요. 요즘 말로 ‘집순이’죠.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선생님이자 파리지엔인 나탈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열정적인 팬이기도 하다. 마르티르 거리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교외에서 살다가 열아홉 살에 파리 시내로 돌아왔다.
“박사 과정까지 파리 소재 대학에서 마쳤어요. 아버지가 공부하셨고, 내가 입학할 때 아주 자랑스러워 하셨던 루이르그랑 고등학교에서 그랑제콜 준비반에 있었지요.”
파리지엔으로 남기 위해 맞서야 할 일이 많았다. 테제베 왕복 티켓을 끊어야 했고, 런던 금융가에서 딸을 키우는 것도 거절했다. 대학 일자리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리를 향한 그의 내재된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
외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 할 소박한 사람들의 도시 파리, 러시아에서 피난 와 프랑스를 발견한 아버지가 보여 준 지적인 파리, 그가 어린 시절부터 탐독해 온 작가들의 도시 파리에 대한 사랑 말이다.
“난 파리를 결코 떠나지 않아요. 요즘 말로 ‘집순이’죠.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나탈리는 죄수의 삶을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을 이룬 책 더미가 그에게 세상을 보여 준다. 활기찬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문학 산책을 떠난다. 아니 에르노를 다룬 학술 기사를 읽고 학술 발표회에 참여한다. 단편 장르에 대해서는, 여전히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네요. 끝내기가 너무 두려워요!”라고 말한다.
유머냐 정제된 표현이냐 사이에서 나탈리는 본질로 돌아온다. 학업의 괴로움과 억압적인 교육제도에 반대하는 그로서는 유머를 택한다. 지나치게 관대한 점수를 받고 놀라는 학생들에게 그는 웃으며 말한다.
“내가 산수에 약하거든.” 좋은 선생님은 늘 조금은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
--- p.148-152
2006년 생 오디세
“나는 다른 여러 고등학교 친구들과 알고 지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정말 좋고, 친구도 많죠.”
오디세. 그의 이름은 그에게 잘 어울린다. 그가 여섯 살 때 가족 모두가 자전거에 올라 아시아로 떠났는데, 몽골에서 가족은 말을 타고 이 유르트에서 저 유르트로 이동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갔을 때는 캠핑카로 여행했다. 고등학교 2학년 방학 때 다녀온 몰타와 그리스는 그에게 자유와 만남의 향기를 느끼게 했다.
열여섯 오디세에게는 특히 우정이 중요하다. 운동경기를 할 때처럼 학교에서도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관계 속에 있다고 여긴다. 멋진 순간들, 함께 하는 파티, 나누는 대화 속에 말이다.세 명이나 되는 언니, 오빠 들이 독립한 뒤로 집에서 외로움을 약간 느끼지만, 그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어릴 적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친구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이해해 준다. 오디세는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면서 형태를 갖춰 가기 시작하는 미래 또한 그려 본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나 재생에너지라고 안 될 게 있겠어?
--- p.308-310
2014년 생 알반
“학교에서 킥보드나 자전거 타기, 트램펄린, 물구나무서기 같은 걸 해요. 몸을 거꾸로 해서 발을 공중으로 올리는 건 정말 어려워요. 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요.”
벨페이유Belles-Feuilles 거리에 살면서 책을 읽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
여덟 살 알반은 트로카데로Trocadero에 살고 싶을 정도다. 도서관에서 마리옹 뒤발1)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는 소녀는 논픽션이나 만화 서가 사이에서 바쁘다.
“예약이 필요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 책이 없어요. 동생은 장난꾸러기 아나톨 라튈을 좋아하는데, 엄마 아빠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기도 어려운데 말이에요.”
이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소녀는 개학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암벽등반 과정에 등록하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트램펄린, 물구나무서기 같은 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공중으로 발을 들어 올리는 건 정말 어려워요.”
알반은 9월이 오기를 기다리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색깔을 입힌다. 그의 첫 번째 모험이다. 2020년 여름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엄마가 알반과 동생에게 에펠탑 구경을 시켜 주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관람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세 모녀는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는데, 그건 마치 파리 상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유명한 건물들이 다 보였어요. 날씨가 좋았거든요. 구경을 마치고 2층으로 내려와 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었죠. 정말 멋진 날이었어요!”
--- p.325-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