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이, 그거 알아? 육하원칙.”
유겸이 내게 물었다.
육하원칙이면, 여섯 개의 질문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는데? 미처 생각해 내기 전에 유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꺼냈을까?”
그렇군. ‘누가’를 찾기 전에 다른 질문부터 해 보자는 거다. 무엇을? 가방을. 어디서? 화단에서. 도대체 어떻게? 저 아찔한 화단에 들어갔다니, 진짜 간도 큰 5학년이다. 선생님에게 들키면 혼자 혼나고 마는 게 아니라 고학년 전체의 출입이 금지될 수도 있다. 그럼 우리 4학년들만 또 억울해지는 거다……. 어? 뭘 놓친 기분이 들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언제! 내 생각은 순식간에 ‘언제’로 뻗어 나갔다. 왜 이걸 까먹고 있었지?
--- pp.26~27 「사람을 찾습니다」 중에서
어플을 켜자마자 한 일은 바로 ‘사랑 제한 모드’를 해제하는 거였다. 아빠는 나 같은 어린아이에게 사랑은 필요 없는 감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가끔 아이들의 연애 소식을 접할 때면 아빠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번은 ‘나도 연애하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아빠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크면 다 할 수 있는데 뭘 벌써부터 하려고?”
그러고는 사랑 제한 모드를 켜 놓은 거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그것만은 참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하진이가 탈옥을 하고 사랑 모드를 제대로 즐기는 걸 본 이상, 결코 가만있을 수 없다. 툭하면 남친 자랑을 하는 하진이에게 나도 제대로 보여 주고 싶었다.
--- pp.58~59 「4학년이 되면」 중에서
우주 브로콜리가 덩굴을 뻗어 내 오른손을 살포시 잡았다. 간질간질, 보드라운 이파리가 나를 둥그렇게 감쌌다. 내 주위로 넓고 깊은 어둠과 작고 환한 빛 덩어리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우……주, 우주다! 어둠은 점점 더 커졌고 빛 덩어리들은 빠르게 멀어져 갔다. 멋지고 아름답지만 어쩐지 쓸쓸했다. 간질간질, 다시 손바닥이 간지럽더니 천천히 우주가 사라졌다.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 우주 브로콜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 우주에 있는 것 같았어! 뭘 어떻게 한 거야?”
--- p.93~94 「우주 브로콜리는 지구를 정복하지 않아」 중에서
“지금부터 음파 호흡법을 배울 거예요.”
선생님이 다음 수업을 안내했다. 물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숨을 쉬는 것이다. 수영의 기본이었다. 호흡쯤이야 내겐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면서 물속에 있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수영을 해서 그런가? 나는 물안경을 고쳐 쓰고 숨을 최대한 들이마셨다. 이제 음파를 하면 된다. 그런데…….
‘켁!’
얼굴을 물에 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저절로 기침이 쏟아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스러웠다.
“괜찮아?”
놀란 유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물안경을 잘못 썼나 봐.”
나는 대충 둘러대며 물안경을 벗어 탈탈 털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가슴은 정신없이 뛰었다.
--- pp.134~135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 중에서
“이것 참 큰일이네. 나는 누구랑 마니토를 한담.”
“나랑 하면 되지.”
등 뒤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나는 화들짝 놀라 사물함에서 몸을 뗐다. 그 소리와 비슷했다. 선생님이 우렁각시 이야기를 해 줄 때 들었던 소리. 휘파람을 부는 듯, 유리잔이 울리듯 영롱한 소리. 이번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내 뒤에 있는 건 사물함과 벽, 그리고 우렁이가 있는 채집통뿐이었다. 나는 우렁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우렁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바닥에 붙어 있기만 했다. 나는 주위를 살피다 우렁이에게 다가섰다.
“혹시 방금 네가 말한 거니?”
나는 누가 들을까 봐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우렁각시 이야기가 퍼뜩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우렁각시도 혼잣말에 대답부터 했는데. 눈이 따끔따끔하도록 우렁이를 빤히 들여다봤지만, 우렁이는 그대로였다. 나는 미심쩍게 다시 물었다.
“너 말할 수 있어?”
--- pp.175~176 「너는 나의 우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