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꿈이었다. 잠시 멍한 느낌이 들었다. 눈가가 촉촉하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꿈속에서 처음에는 곰이 되었다. 힘든 경쟁에서 부딪치며,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양보하면 바로 굶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으로 물속이 보이고 다른 연어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자신은 또 연어가 되어 있었다. 연어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흘러가는 물결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밀려드는 압력을 온몸의 근육과 살과 뼈의 힘으로 넘어가야 한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뇌에 각인된 고향의 냄새를 따라 한 어깨라도 더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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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의 장미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무궁화는 그렇지 않다.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샤론의 장미’라는 이름을 붙인 투자자는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쓴 것일까? 아니면 ‘무궁화’가 한국의 국화라는 것을 알고 제목을 부여한 것일까?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아무도 ‘샤론의 장미’를 보고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샤론의 장미’는 그저 ‘프로젝트 가나다’, ‘프로젝트 ABC’와 다를 바 없는 부호에 불과할 뿐이다.
과도하게 예민한 자의 호들갑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일 출근시간을 맞추려면 빨리 잠을 청해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끄고 책상을 정리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내버려두고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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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격부문 평가점수는 자문보고서의 내용, 인수의 대상이 되는 태양광발전소의 위험분석과 평가, 보험의 효율적 관리방안, 투입인력의 경력과 자질, 프로젝트 투입시간, 회사의 재무적 안정성과 관련프로젝트 수행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지시하여야 한다.
엠앤에이보험에 대해서는 보험요율을 보험사에 요청해서 요율을 구해야 한다. 엠앤에이보험을 위해서는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바이어(buyer)와 셀러(seller)의 구체적인 회사정보와 인수합병조건을 상세히 기재한 엠앤에이 계약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인수합병 계약서의 상세부분은 확보하기 어렵고, 인수합병 금액과 개략적인 조건 정도만이 확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정식요율이라기보다 일단은 가견적 정도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견적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지운의 팀이 확보한 요율이 다른 경쟁자보다 높다면, 전체적인 평가 점수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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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리, 이 회사는 전에도 화재사고가 한 번 나지 않았나?”
“네, 보니까 10년 전에도 화재가 난 적이 있더라구요. 그때 사고 난 다음 다시 복구를 했는데 다시 사고가 났네요.”
“보상에는 문제가 없겠지?”
“네, 패키지보험으로 가입하고 있어서 일단 사고보고서나 손해사정보고서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면책이 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보상이 될 것 같습니다.”
뉴스나 댓글을 보는 중에 이렇게 사고가 자주 나는 회사가 왜 안 망하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보였다. 사실 일반 사람이 보기에 이런 화재사고가 한 번 일어나면, 말 그대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고 한 집안이나 기업은 망해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의 화재가 한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167
“재보험회사나 언더라이터(underwriter)들도 개별적으로 애피타이트가 있더군. 그걸 자기들은 리스크애피타이트라고 해.”
“네, 재보험사들이 사무실 방문했을 때 자기들이 선호하는 리스크가 있다고 리스크애피타이트를 정리해서 주더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자기들에게 그런 류의 어카운트(account)를 가져오면 아주 적극적으로 인수를 검토한다고 하지. 참, 정대리, 커피를 처음 시작한 곳이 어딘지 들어 본 적 있나?”
“커피를 맨 처음 마시기 시작한 곳은 에티오피아라고 한 번 들어 본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야, 정대리도 많이 알고 있네.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야.”
“하하 뭘요. 정말 잘 모릅니다.”
--- p.217
미팅을 마치고 나오니 12시가 다 되었다. 담당자와 별도로 점심 약속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인사를 하고 바로 내려왔다.
“건호 씨,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이사님 덕분에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니, 가까운 곳에 가서 점심식사하고 올라가지.”
“네, 좋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로 나가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 가능하면 시내나 근처에서 식당이 있으면 점심을 먹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식당을 검색해 보니 감포 쪽에 식당들이 많았다.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데가 감포네. 그쪽으로 가볼까?”
“네. 제가 감포 맛집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 p.260
솔로몬왕은 많은 왕비와 첩을 거느리고 있다고는 해도, 여자에 미친 자가 아니었다. 만일 여자만을 탐하는 자였다면, 그의 재위기간 동안 벌써 그것으로 인하여 상당한 추문이 나왔을 것이다. 여자로 인한 추문보다, 오히려 그의 통혼 정책으로 인하여 제사장이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불만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의 결혼 정책은 정략적인 것으로서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주변 왕국이나 부족장의 딸과 결혼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가 여자의 얼굴이나 육체적인 매력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이다. 그가 이복형인 아도니아를 다윗왕의 시녀였던 아비삭을 탐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하고, 아도니아를 따르던 요압장군과 같은 세력을 일거에 처치한 것은 그가 잔인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빌키스의 생각에 솔로몬은 아도니아가 가진 속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 p.270
그중에 한 분의 질문이 머리를 때렸다. 이거 누구를 대상으로 쓰신 건가요?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이걸 누가 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살펴본 내용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금융기관, 기업의 리스크 담당자, 기업에 대한 리스크 컨설턴트나 보험전문가들을 위한 리스크 및 보험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굳이 이런 책을 사서 볼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중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단순하게 리스크가 어떻고 보험상품이 뭐니 하면서 해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수행한 프로젝트와 연관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리스크와 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 넣으면 어떨까?
--- p.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