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하나님을 닮아 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여덟 가지 성품, 즉 신의 성품에 이르는 여덟 계단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가장 먼저 믿음의 계단으로 시작합니다. 그다음에는 덕의 계단, 지식의 계단, 절제의 계단, 인내의 계단, 경건의 계단, 형제 우애의 계단으로 이어지며, 사랑의 계단으로 완성됩니다. 이처럼 여덟 계단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왜 믿음으로 시작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시작입니다. 왜 사랑으로 완성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 만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많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외모를 모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외모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써 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다 보면 하나님의 성품이 밖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얼굴에서 나오는 온유함, 사랑, 절제, 경건, 우애, 샬롬 등을 통해서 하나님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을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닮아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첫 번째로 디뎌야 할 계단은 믿음의 계단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면 가장 처음 듣는 단어가 바로 ‘믿음’입니다.
--- p.19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덕이라는 은혜로운 포장지에 싸서 이웃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덕이 빠진 믿음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불쾌감을 줄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던지듯이 주거나 기분 나쁘게 건네면 내용물에 상관없이 마음이 상합니다. 반면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정성스럽게 주면 가격에 상관없이 고맙고 기분이 좋습니다. 덕은 가장 소중한 믿음을 기분 좋게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아름다운 포장지입니다. 대부분 전도가 잘 안 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내용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포장지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 p.35-36
덕은 마음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돌밭 같은 마음을 쟁기로 잘 기경하여 옥토로 만드는 것이 바로 덕입니다. 그처럼 잘 기경된 마음 밭에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심으려고 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그 사람의 마음 밭에 아무것도 심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면 전도 대상자가 아무리 옥토로 준비되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덕에 지식이 더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믿는 복음을 잘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가능하면 배우는 데 열심을 내 필요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호세아 4장 6절에서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 p.55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나의 뜻을 거두는 절제가 예수님의 절제입니다. 우리는 한번 세운 기도 제목은 포기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며칠간 금식하며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면 열흘 금식하고, 그래도 응답을 안 하시면 40일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쭈어야 합니다. 그다음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 p.74-75
우리가 인내를 하려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인내해 주고 계시는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크게 용서해 주셨는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못 기다려 줄 사람이 없고, 못 참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인내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참을 만큼 참았다”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때까지 참아야 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합니다. 여기서 ‘온전히’는 영어로 ‘perfect’(완전한), ‘full-grown’(다 자란), ‘complete’(완벽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몇 번 참다가 못참겠다고 내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내의 양이 있으니, 그 인내의 양을 다 채우라고 하십니다.
--- p.89-90
인내는 경건을 만나지 않으면 시한폭탄처럼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참을 만큼 참았는데, 터질 만한데 터지지 않고, 오히려 대화를 나누어 보았더니 경건하기까지 하다면 그 사람의 인내가 경건을 만나 참으로 복된 성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으로 이어지지 않는 인내는 곧 터질 폭탄을 보듯 불안합니다. 참는데 참는 게 보이면 더 무섭고 불안합니다. 참는데 참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인내를 온전히 이룬 사람이요, 경건의 수준에 이른 사람입니다.
--- p.96-97
경건한 사람이 형제 우애의 옷을 입으면 그 공동체는 삽니다. ‘아직 믿음이 약해서 그런 거지’ 하면서 돌보아 주고 격려해 주고, 험한 일은 자기가 먼저 하고, 헌신적인 사랑과 섬김을 보여 주는 그 사람 때문에 파릇파릇 살아나는 공동체도 있습니다. 경건이 공동체를 죄 가운데 빠뜨리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은 반드시 형제 우애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합니다. 진짜 경건은 형제를 돌보는 경건이 되어야지, 형제를 정죄하는 경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p.118-119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등 모든 과정은 사랑의 성품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정거장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자 할 때 믿음의 정거장이 종착역이라고 생각해 내려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덕의 역에서 만족해 내려서도 안 되고, 지식의 역, 절제의 역, 인내의 역, 경건의 역, 형제 우애의 역에서 내려서도 안 됩니다. 끝까지, 그 모든 역을 다 지나 사랑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에 사랑이 있으면 더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앞의 일곱 가지 성품이 다 허물어지느냐, 그대로 있느냐를 좌우합니다.
--- p.13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