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歲首)란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을 말하며, 세수에 해당하는 달을 정월(正月)이라고 부른다. 고대 중국에서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법을 새로 만들었다고 하였으므로, 그 때마다 세수를 새롭게 정하였기 때문에 세수가 계속 바뀌었다. 기원전 2070년의 하나라에서는 봄에 해당하는 맹춘(孟春), 즉 동짓달인 자월이 지난 후 2번째 달에 해당하는 인월(寅月)의 시점을 새해가 시작되는 첫 달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결정된 배경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의 농경 중심의 생활 방식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봄의 시작 절기인 입춘(立春)은 한 해의 농경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으며, 더불어, 이 시기에는 풍요로운 농작물의 수확을 기원하는 춘제(春祭)라는 중요한 제사도 전통적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인월을 새해의 시작으로 정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역원과 세수」중에서
역원과 세수가 결정된 후 다음 과정으로는 삭망월을 큰 달과 작은 달로 구분하여 배치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태음력은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삭망 주기를 기준으로 한 달을 정하는 역법이다. 그런데 원래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삭망 주기는 29.5일에 해당하므로 삭망월 한 달의 날 수는 정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태음월은 정수 부분이 아닌 0.5일을 빼고 29일로 된 작은 태음월과, 앞에서 제외된 0.5일을 추가하여 30일이 된 큰 태음월로 구성되었다. 태음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는 큰 달과 작은 달의 적절한 배치를 통하여 달력의 날짜가 삭, 즉 합삭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30일의 큰 달과 29일의 작은 달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서 태음력에서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삭망 주기를 달력 상의 날짜와 제대로 일치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큰 달, 작은 달, 초하루」중에서
지금까지 큰 달과 작은 달로 이루어진 12달이 정해졌고, 24절기까지 해당하는 날짜에 지정되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월명을 정하는 규칙에 따라 월명을 확정하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월명을 정하는데 무슨 규칙까지 필요해? 앞에서 정해진 12달에 단순하게 순서대로 1월부터 12월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되는 것 아니야?”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월명을 부여하는 과정이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으며, 그 중심에는 윤달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해가 윤달이 들어있는 윤년에 해당하고 3월 뒤에 윤3월이 들어가게 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윤3월이 없었을 경우에는 윤3월에 해당하는 달의 이름은 4월이었을 것이고, 그 다음 달은 5월, 그리고 계속해서 6, 7, 8, 9, 10, 11, 12월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윤3월이 들어가게 됨으로써, 원래 4월이었던 달 이름은 윤3월로 바뀌게 되었고, 이어지는 다음 달인 5월, 그리고 계속되는 6, 7, 8, 9, 10, 11, 12월 역시 4월, 그리고, 5, 6, 7, 8, 9, 10, 11월로 바뀔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막연히 1월부터 12월이라는 월명을 순서에 따라 부여할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윤달과 무중치윤법」중에서
월건(月建)이란 60간지를 순서에 의해 다달에 하나씩 부여하여 배당한 이름을 말한다. 그렇다면 달마다 60간지 하나씩을 부여하여 배당하는 이름을 왜 월건이라고 하였을까?
월명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후기 상나라 시대에는 숫자를 이용하여 1, 2, 3,…12 그리고 13월과 같이 월명을 부여하였다. 그후 서주 시대에 들어서면서 12지를 사용한 기월법이 나타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나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나라 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간지 체계가 기일법으로부터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 간지 기년법으로 사용되었으며, 이어서 60간지는 월명에까지 적용됨으로써 간지 기월법으로도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간지 기월법에서는 60간지를 순서에 의해 다달에 하나씩 부여하였는데, 이렇게 달마다 배당한 이름을 월건(月建)이라고 하였다.
---「월건과 북두칠성」중에서
일진이란 날짜를 60간지로써 표기한 것을 말하는데, 매일 매일에 60갑자를 순차적으로 이어서 배정하는 방법이다. 가령 어느 날의 일진이 갑자라고 한다면, 그다음날부터 을축, 병인, 정묘의 순으로 일진의 명칭이 부여된다. 이러한 기일 방법은 멀리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자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진이 나쁘다’와 같은 표현을 통해 그 의미가 전해지고 있다. 이 기일법도 처음에는 10개로 이루어진 천간만으로 날을 표기하였지만, 후대에 들어서면서 지지를 결합한 60간지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진 중에서도 특히 ‘매월 초하루’인 삭의 일진이 중요시되었는데, 그 이유는 ‘매월 초하루’의 일진을 근거로 하여 그 달의 일진을 모두 알 수 있었으며, 큰 달과 작은 달을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삭법을 채택한 이후에는 매월 초하루를 실제 달의 위상이 삭인 날로 정하였으므로, ‘매월 초하루’의 일진은 삭의 일진과 같게 되었다. 수 천 년에 걸쳐 일진에 따른 날짜 표기는 60간지의 순서로 계속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귀중한 역사적 지표로서의 의미 또한 매우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진과 기일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