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와의 본격적 인연은 나이 오십에 이루어졌다. 옥스퍼드 대학의 어느 여교수가 내 논문이 흥미롭다며 대학원 입학을 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도망치려 했지만 인연의 끈은 결국 나를 학생으로 재탄생시켰다. 젊은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도 하고 신나게 즐기기도 하면서 공부를 마쳤고, 이제 인연이 마감됐다고 생각하며 옥스퍼드를 떠났다. 하지만 어느 날, 옥스퍼드의 스승들이 아직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고 통보해왔다. 그것이 바로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였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끝내고 오십이라는 나이에 다시 영어영문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면 대부분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도 잠시 잠깐, 남편이 얼마나 능력이 좋기에…라는 부러움이 표정에서 읽힌다.
게다가 이 나이에 영국과 서울을 오가며 일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팔자가 좋아도 보통 좋은 게 아닌, 엄친 할머니’ 취급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자 다람쥐 같은 손자손녀를 둔 전형적인 대한민국 할머니다.
- 프롤로그 ‘원더풀 내 인생’ 중에서
내가 영어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은 생활고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병을 얻어 경제적인 어려움과 생활의 곤란을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어린 두 아이의 엄마였다. 최악의 경우 장기
간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다. 남편이 이대로 낫지 않으면 어디라도 취직해야 하는데, 당시 내 영어 실력은 남편의 처방약조차 사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한 절박함이 나를 영어공부로 이끌었다. 당장 귀국하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독한 마음으로, 아니 남편의 처방약을 제대로 사기 위해서라도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엄마였지만, 영작 시간에는 학생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교정해준 노트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때 내가 한 생각은 딱 하나였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 조금만 ‘덜’ 후회하면 된다는 각오 중에서
나는 지식과 지혜는 축적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를 통해 지식과 지혜는 ‘공유’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어느 교수는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에 출연한 후 뉴질랜드와 아프리카의 어느 대학에서 자기를 알아봤다며 정말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나 역시 중국에 갔을 때 홍콩 대학생이 인사해온 적이 있다. 전 세계 사람들과 지식을 매개체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국에 사는 열두 살 소년이 보내온 메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년의 이름은 구스타프였다. 구스타프는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홈페이지에 실린 런던 시장 보리슨 존슨과의 인터뷰를 보았고, 그 후 벨리올 칼리지를 방문해 “A Lion at Oxford”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 옥스퍼드에 출현한 사자가 벨리올 칼리지에서 공부해 수상까지 되었다는 내용의, 상상력이 듬뿍 담긴 시였다. 나는 그를 수요일 세미나에도 초대해서 강의를 듣게 해주었다. 일곱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이 천재 소년은,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를 통해 유명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한층 풍부해짐을 느꼈다고 했다.
- 아는 자보다 배우는 자가 많은 세상 중에서
우리는 간혹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일을 벌여야만 설렘을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에 쉽사리 싫증을 느끼고, 숨막히는 수레바퀴의 삶이 아니냐며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똑같아 보이는, 반복되는 일상에도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 성공도, 행복도, 야망도, 성장도 바로 그곳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지구에 60억 명의 인구가 있다면 60억 개의 인생이, 60억 개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영화 속 도플갱어처럼 동일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다. 윤리적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한 모두들 자신의 기준에 맞춰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내가 세운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 야망은 욕심일 뿐이다.
- 사라져버린 ‘진짜 나’를 찾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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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노블 교수 역시 성공의 조건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계속해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성공의 필요조건은 ‘계속했다’입니다. 성공은 뭔가 꾸준히 지속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해요. 나는 잘사는 비결, 성공의 비결로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 경우에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이 나타났고, 그것이 저를 계속 노력할 수 있게 했습니다.”
두 메시지 모두 현명한 대답이리라. 나이가 들어 인생을 굽이굽이 돌아보며 무슨 일이든 안 될 건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다만 내가 안 했을 뿐이다. 내가 놓쳐버린 선택지들은, 내가 가지 못한 길들은 단지 내가 택하지 않았을 뿐이고, 가보려고 용기 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놓쳐버린 것과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을 갖진 말자. 어차피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모든 길을 갈 수 없는 게 우리 삶이니까. 대신 가진 것과 가본 길에 더 큰 애정을 쏟자. 내가 가본 길이, 지금 내가 걷는 길이 더 아름답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 단언컨대, 가본 길이 아름답다 중에서
나이가 육십을 넘으니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질 않았다. 화려한 동작도 척척 해내는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씩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하필 이 나이에 괜한 메달 욕심에 빠져서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춤을 추는 일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오늘은 그만 해야지, 하고 조용히 짐을 싸서 나오려는데 지도교사가 다가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생각이 많네요.”
춤은 몸으로 반응하는 것이지 머릿속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 춤에는 생각이 너무 많이 담겨 있었다. 메달을 따고 싶다는 그놈의 욕심, 결과로 보여줘야겠다는 지나친 의욕이 문제였다. 경쟁자들에게 질까 봐, 대회에서 떨어질까 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 지도교사는 내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메달을 원하세요, 아니면 즐겁게 춤추길 원하세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메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대답하는 동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러자 그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내게‘막춤’을 춰보라고 제안했다.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건 춤추고 싶다는 마음, 의지입니다. 내 삶을 신나게 살고 싶은 열정이기도 하고요. 먼저 눈을 감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여보세요. 그리고 원하는 대로 춰보세요.”
-에필로그 ‘나만의 춤을 추어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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