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 곧 모세의 예언은 그 핵심 주제가 그들이 비록 아무리 “하나님! 하나님!”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언약을 어겨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아서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꿈이 있는 자가 망하지 않을 인생의 미래를 예언하지 않았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을 인생의 미래를 예언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마다 문제 해결을 받는다는 인생의 미래를 예언하지도 않았다. 긍정으로 확신하고 긍정으로 시인하면 잘되는 인생의 미래를 예언하지도 않았다.
--- p.31
모세 선지자가 모압 평지에서 불렀던 노래의 말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하는 영원한 노래는 이렇게 이사야 선지자의 사역을 통해 선지자의 소리, 선지자의 예언, 선지자의 노래, 곧 영원한 복음으로 그 불멸의 명맥을 유지해 간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선지자는 있었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다.
--- p.33
그날에 우리는 욥이 극한의 환난을 인내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결말을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약속하셨던 영생이라는 최후의 지복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인내하는 교회에게 약속된 결말은 이 세상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 세상 밖에서부터 이 세상 너머로부터 주어진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고난의 광야를 지나간다.
--- p.49
복음은 부자 되는 인간, 성공하는 인간, 출세하는 인간을 만드는 세상의 성공 신화가 아니다.
--- p.51
교만한 교회 세대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지 나사렛 목수의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p.60
교회 세대는 구약의 하늘과 땅이 심판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나타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 p.96
모세 선지자의 경고 예언이 있은 지 1천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바로 ‘그 날’ ‘그 시’의 마지막 세대는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집행하시는 모든 심판의 저주를 온몸으로 뼈저리게 경험했다. 선민특권 의식에 젖어 있던 남유다 백성이 어떻게 그 년, 월, 일, 시의 참혹한 심판의 날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으며, 믿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 심판의 날은 그들의 눈앞에 이르고야 말았다.
--- p.101
나그네의 길을 걷는 자는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정착의 옷을 벗어 버리고 보이지 않는 본향을 향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다. 옛 관계와는 죽어버리고 현재의 길과 미래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다. 현재의 고통이 있더라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소망으로 광야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이는 곧 고귀한 것을 얻기 위해 낮고 천한 세속에서 떠남을 의미한다. 진리와 생명을 위해 세상에서 보이고 들리는 소란함으로부터 떠남을 의미한다. 신앙의 본분과 소명을 위해서 개인적 안락과 행복으로부터 떠남을 의미한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일시적인 세상으로부터 떠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생의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과 인내와 소망의 삶을 살아감을 의미한다.
--- p.154
그 날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안에서, 곧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낙원의 비애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사는 복낙원의 기쁨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그 날에 죽기까지 믿음으로 계명을 지킨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계 12:11; 14:12)만이, 정결한 신부만이 하나님과 영원한 결혼에 이른다.
--- p.156
이 땅에 이미 현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종국적인 하나님 나라의 성취인 천국의 완성을 향해 아직 달려가야 하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긴장 속에서 순례의 노정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후손인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이 땅에서의 10년 20년 후의 영향력 있는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약속하신 믿음의 꿈은 ···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그분 안에서 구속받은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을 상징하는 ‘14만 4천’의 수가 채워질 때, 곧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모든 피조물의 열망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몸의 속량을 받고 나타날 때 성취된다.
--- p.167
오늘날 교회 안에 만연한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은 신약 교회 시대에 나타난 근래에 일어난 새 신(神)의 역사이다. 참된 성도에게 진정한 부는 소유의 넉넉함이나 이 세상이 추구하는 성취가 아니다.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 14:17). 성도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나 지위가 아니다.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아 가고, 더 소유하고, 더 닮아 가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아 가는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소유해 가는 부와 예수 그리스도를 더 닮아 가는 거룩함을 가르치고 있다.
--- p.19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땅에 속한 천하만국 영광과 관련한 부요함과 성공의 꿈을 목적하시고 꿈꾸시고 입술로 시인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행하지는 않으면서 땅에 속한 꿈을 크게 디자인하고 입술로 무조건 된다, 된다고 염불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들 모두는 종국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으로 발견될 것이며, 바깥 어두운 가운데 슬피 우는 사람으로 발견될 것이며, 거짓말하는 사람으로서 성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계 22:15).
--- p.231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회개하고 돌이켜 이기는 자가 되면 주님께서 이기시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21절). 여기서 ‘보좌’는 통치권의 상징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긴 자에게 약속된 축복은 천년왕국의 축복이다.
--- p.254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축복은 이미 이루어진 교회 시대가 아니라 다가올 영광의 시대이며 신실한 신앙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하실 축복의 시대이다.
--- p.255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는 교회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 땅에 창조되었고, 바로 그날,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교회 시대로 도래했던 그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시대이다. 즉 요엘 선지자가 예언했던 말일의 심판의 날은 신약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신약 교회 시대가 도래한 날이고, 바로 그날에 하나님의 구속사는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아브라함의 할례와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시대로, 보이는 성전 시대에서 보이지 않는 성령의 전의 시대로의 변화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가 도래한 날이다. 바로 그날 옛 언약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
교회 시대는 구약에서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 시대 역시 또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를 전망하고 있다.
--- p.259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산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이 나오는 참된 진리의 산인 교회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나무와 풀인 성도가 자라난다. 그런데 산이 불탔다면 그곳에 나무와 풀이 존재할 수가 없다. 결국, 산이 불탔다는 것은 교회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죽음의 의미는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에서 이해할 수 있다.
--- p.269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대칭법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데, ‘누가 당신의 소유된 백성이며 누가 당신의 소유된 백성을 양육하는 자인가, 누가 심판받을 사람이며 누가 심판받을 가라지를 심는 원수들인가’를 예언한다. 그래서 ‘이긴 자와 진 자’, ‘신부와 음녀’, ‘하나님의 표, 인과 짐승의 표, 666’, ‘두 증인과 두 뿔’, ‘어린 양과 짐승’. ‘큰 성 바벨론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대칭적 은유로 누가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지는 당신의 소유된 백성이며, 누가 멸망하게 될 큰 성 바벨론으로 지어져 가는 심판받을 사람인가를 보여 주며 경고한다.
--- p.295
하나님에게서 ‘인’이 나오듯이, 짐승에게서 ‘표’가 나온다. 바로 이 ‘짐승의 표’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오는 미혹이다. 최후의 대전 아마겟돈 전쟁에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데, 그 영은 귀신의 영이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3~14, 16). 그러므로 최후의 대전 아마겟돈 전쟁은 적 그리스도의 실제 군대 혹은 중공 군대, 미국 군대, 소련 군대, 아랍연방 군대가 참전하는 종말 핵전쟁의 날이 아니다. 아마겟돈 전쟁의 그림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 곧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맹렬하게 진격해 오는 원수의 군대 곧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종말이 가까울수록 여기저기는 물론이거니와 광야와 골방에서까지 활개 치며 교회를 미혹할 것을 상징한다(마 24:23~27).
--- p.303
모세 선지자가 “하나님! 하나님!” 하는 이스라엘 후세대를 향해 그들의 파국적 말로를 경고했듯이 주님께서도 일찍이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신앙의 후세대에게 경고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 p.309
이제 교회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심판 경고의 말씀을 듣고 깨어나 신앙의 싸움에서 이기기를 다투어야 한다. ··· ‘이긴 자’만이 썩지 않을 생명의 관을 얻게 될 것이다.
---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