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니야.”
언니의 말이 이어졌다.
“중학교 때 네가 하는 선택은 그대로 고등학교 때 인기를 좌우하고, 고등학교 때의 인기는 그대로 대학 때 인기를 좌우하고, 대학 때의 인기는 그대로 네가 들어갈 여학생클럽(sorority. 회원들끼리의 결속력이 매우 강한 여학생들의 친목단체로 별도의 기숙사를 운영하며 사교활동을 강조한다:옮긴이)을 좌우하고, 네가 들어간 여학생클럽은 그대로 네가 만나고 결혼하는 사람을 좌우하고, 네가 결혼하는 사람은 그대로 평생 너의 인기를 좌우할 거야. 죽을 때까지.”
언니는 자기 말의 심각성이 충분히 느껴지도록 잠시 말을 멈추었다.
“선택. 너어어어무 많은 선택.”
그러고는 호들갑스럽게 내 어깨를 잡았다.
“너무 많은 선택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뭔지 아니? 바로 너무! 많은! 실수!”
언니가 이렇게 말했을 때 진짜로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그건 언니가 내 어깨를 등이 휠 정도로 꽉 잡은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너한테 내 지혜를 나눠주는 것도 그 때문이란다, 동생아.”
그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근데 이건 좀 웃기는 그림이었다. 왜냐하면 키가 벌써 자기만 한 내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언니가 팔을 위로 들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언니는 전문 쇼호스트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명품 핸드백에서 3×5 크기의 카드를 꺼냈다. 그러고는 애타는 내 손가락 앞에서 그 작은 종이를 약 올리듯 팔랑팔랑 흔들다가 마침내 넘겨줬다.
여기! 내 손 안에! 최고의 인생으로 가는 거룩한 비밀문서가 들어왔구나!
종이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 이건 파인빌 중학교 응원단의 옛날 여행계획푠데?”
“인생을 변화시킬 조언은 뒤에 있단다.”
--- p.11-13
내 또래의 남자애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생명체다. 얘들은 자기들의 삶에 중요한 주제가 아니면 대화를 한 마디 이상 못 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남자애들의 삶에서 중요한 대화 주제는 다음 세 가지밖에 없다.
1. 스포츠
2. 비디오게임
3. 방귀
엄마는 내가 같은 반 남자애한테 홀딱 반하지 않는 걸 이상해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게, 홀딱 반하려면 공감할 수 있는 뭐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p. 50-51
홈룸 시간을 알리는 마지막 종이 울렸다. 난 버크가 브리짓을 교실로 경호해 가는 걸 지켜봤다. 브리짓은 심지어 나를 돌아보며 ‘안녕’이나 ‘잘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브리짓은 만난 지 고작 12초도 안 되는 이 남자애 때문에 12년 넘게 알고 지낸 단짝친구를 잊어버린 거다. 난 아직 홈룸에도 안 들어가봤지만 벌써 중학교에 관한 뼈아픈 진실 다섯 가지를 깨달았다.
1. 나의 단짝친구가 예뻐졌다.
2. 걔는 아직 그걸 모른다.
3. 머지않아 걔도 알게 될 것이다.
4. 그러면 우리 사이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5.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p.54-55
다음 날 언니가 시킨 대로 빈티지 티를 버리고 엄마가 몰에서 골라준 것 중에서 맘에 드는 티셔츠 하나를 입었다. 매끈매끈한 보라색 옷감에 은색 줄무늬가 들어간 탑인데 내가 가진 옷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옷일 거다. 브리짓한테서 곧바로 칭찬이 나왔다. 스쿨버스 승강장으로 걸어가면서 브리짓이 말했다.
“오해하진 마. 어제 입었던 빈티지 분위기도 좋았지만 이게 훨씬 더…….”
“제시카답다고?”
난 미심쩍게 물었다. 반짝이는 은색 실이 조금 까끌까끌했다.
“훨씬 더 중학생 같아.”
브리짓이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좋은 선택을 했음에 틀림없다. 다른 애들도 나를 칭찬하느라 난리였으니까.
“예뻐! 멋져! 정말 사랑스러워!”
“너무 눈부셔!”
“완전 매력적이야!”
그리고 그 뒤로도 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몰에서 사온 옷을 입을 때면 칭찬을 받았다. 사라, 만다, 호프 모두 진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걸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매력적인 탑은 1학년 첫날에 브리짓과 사라가 입었던 끝내주는 치마와 같은 가게의 상품이고, 오늘 호프가 입고 있는 사랑스러운 카디건과 같은 가게의 상품이고, 아마도 내일 만다가 입을 환상적인 탱크와 같은 가게의 상품일 거다. 나의 사랑스럽고 눈부시고 완전 매력적인 패션을 칭찬하는 건, 사실은, 동시에 자기들을 칭찬하는 셈인 거다.
이건 지금까지 중학교 생활에서 알게 된 것들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여기 한 가지가 더 있다. 중학교 선생님은 다들 숙제를 내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숙제를 내는 건 별수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보다 너무 많이 낸다는 게 문제다!
--- p.103-104
소지품들을 챙기고 있을 때 호프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곤 간단하지만 복잡한 질문을 던졌다.
“왜?”
이 한 글자 속에는 억만 개도 넘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왜 응원단에 들어가려는 거야?’에는 가장 뚜렷하고 간단한 답이 있었다.(조건 2번: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응원단!!!) 다른 질문들은 이런 거다. 왜 나는 얘들이랑 친구로 지내나?(조건 4번: 잘나가는 패거리에 붙어 다녀야 한다.) 왜 나는 브리짓이 버크와 시시덕거리는 걸 지켜보고 있나?(조건 3번: 첫 남자친구를 잘 골라야 한다.) 왜 나는 브리짓한테 빌린 이 셔츠를 입고 있나? 내 상체가 브리짓보다 좀 더 길어서 허리가 자꾸 나오는데도 말이다.(조건 1번: 날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바로 그 순간, 여름방학 마지막 날부터 혼자서 계속 던지고 있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왜 언니가 준 ‘퀸카의 조건’이 나한테 이렇게 중요해진 거지? 이 모든 질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면서 호프의 질문에도 정직한 답이 될 만한 정확한 대답이 있었다.
“왜?”
내가 바로 대답을 않자 호프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마침내 난 대답했다.
“나도 몰라. 나도 정말 모르겠어.”
--- p.14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