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부산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저희는 4월 29일 미국에서 출발해서 5월 24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상당히 빨리 도착한 셈입니다. 일본에 잠시 들르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가능한 빨리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정 자체는 모든 면에서 탁월했습니다. 아내는 여정 중 상당 부분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였는데, 탈진하지 않기 위해 말할 힘조차 아껴야 했습니다. 아들과 저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착 후 평상시 컨디션을 회복하기까지 한참 걸렸습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저희 마음에 들고, 이곳만큼 사역자들과 마음이 맞는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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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가운데에서 성령의 진정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들이 눈에 보이고 있으므로, 저는 머지않아 그곳에서 일어날 더 위대한 일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배우고 싶은 갈망, 더 많은 깨달음에 대한 갈망, 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은 갈망, 자신에게서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상태를 계속 보존한다면, 그들은 분명한 한 가지를 얻을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한 부으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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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서 형제들의 겨울 사경회를 도와주고 방금 돌아왔습니다. 날씨가 추웠습니다. 2월에 짐 싣는 조랑말을 타고 3일간 다녔더니, 도착하자마자 감기에 걸려서 며칠 앓아 누웠습니다. 하지만, 사경회는 아주 즐겁고 놀라웠습니다. 28명의 남성들이 모였습니다. 잠깐 왔다가 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 들은 상당히 깨어있고 전도유망한 남성들이어서 가르칠 때 제가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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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저의 조사와 이 영수와 함께 이웃한 마을들을 방문했는데, 모두가 너무나 열린 마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재차 동학도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불태워 버리겠다는 협박도 있었지만, 제 생각엔 이제 다 지나간 듯합니다. 개령 송내에서는 전직 학교 선생님이었던 분에게 세례를 베풀어 이곳 신자들을 이끌 수 있도록 영수로 삼았고, 22명의 학습 교인을 받았습니다. 그중 17명은 이곳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평촌과 강 건너편에서 왔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거의 그리스도인이며, 집집마다 찬송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부잣집에서 모임을 가지다가 교회로 사용할 건물을 구입하였는데, 한 달쯤 지나자 출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 건 물을 높이 올리고 확장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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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이 넘는 여성들이 아내의 관 옆으로 울면서 지나갔습니다. 집에서 관이 나가자, 문에서부터 장지까지 한국인들이 양쪽으로 늘어섰습니다. 2천 명 혹은 3천 명은 족히 되었습니다. 장로들이 관을 들고 지나가자, 그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아내의 사역의 진정한 결실들이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대열은 아내의 업적이었습니다. 어느 나라 혹은 어느 시대든 영광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거의 없는데, 아내는 죽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천 명이 넘는 이국 여성들이 울면서 그녀의 시신을 무덤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의 은사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의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그 장면을 지켜본다면, 아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외하며 찬양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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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에서 당국의 시스템에는 그런 선례가 없습니다. 그것은 일본 내 시대사조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문명 세계 어디에서도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희가 확신과 믿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확신과 믿음의 힘으로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당국이 저희에게 기대하는 적정 수준보다 저희가 한 발 더 나아가면, 당국이 저희를 더 배려해주고 저희에게 양보할 것이라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의 표현이 웃깁니다. 그러한 동양적 방식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길가에 인력거꾼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당국은 당국이 원하는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의무감 따위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보같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넘겨준다고 해서, 그들도 바보같이 그것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바보라고 해서, 그들 도 그만큼 바보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익을 챙기지 못하 는데, 당국이 우리를 챙겨줄 이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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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회가 출범한 지 33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 선교사 3명으로 시작했는데, 1916년에는 124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선교 지부는 처음에 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8곳으로 증가했습니다. 개종자, 세례자, 세례 후보자 수는 66,988명이고, 전체 원 입교인은 총 107,850명입니다.
자매 선교회들과 제휴했고, 저희가 물러나면 안 되는 확실한 구역들과 과업들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정했습니다. 사역의 근본 원칙들을 기도 속에 고민하며 확립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널리 뿌린 덕분에 이제는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3개 선교회들과 344개의 토착인 교회학교들에서 이루어지는 일반교육, 의학교육, 신학교육 등 기독교 교육을 통해 한국인들 사이에서 기성세대와 다른 현생과 영생의 인생관을 확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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