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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I의 비극…007
1장 가벼운 비…013 2장 얕은 저수지…091 3장 무거운 책…131 4장 검은 석쇠…183 5장 깊은 늪…265 6장 흰 불상…297 종장 I의 희극…377 |
Honobu Yonezawa,よねざわ ほのぶ,米澤 穗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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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제 배를 보존하기 위해 썩은 목재를 교체한다. 노를 바꾸고, 돛대를 바꾸고, 배 밑바닥까지 뜯어내 바꾼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이윽고 모든 부품이 교체되었을 때, 그것은 원래 배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황폐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서서 그런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 마을은 6년 전에 유령 마을이 되었다. 농지는 다소 남아 있고, 땅 주인 몇몇이 시내에 살면서 가끔 농작물을 관리하러 오긴 하지만, 주민은 없다. 일찍이 이 고지대에서는 탐스럽게 여문 벼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내려다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에 논이었던 네모난 땅을 생명력이 강한 잡초가 마구잡이로 뒤덮은 모습이 보일 뿐이다. 무너진 헛간, 갈라진 아스팔트, 버려진 수레, 메마른 저수지……. 이 마을은 죽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 난하카마 시 미노이시를 재생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죽은 마을에 이주민을 불러 모아 이 땅에 정착하도록 돕기 위한 여러 조례가 제정되었고, 그에 따라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모두 성공하여 다시 이 마을에 결실이 맺힌다고 해서 미노이시가 되살아났다고 할 수 있을까? --- pp.15~16 “사실은 옆집 말인데요.” “아쿠쓰 씨 말인가요?” “그랬었나요. 아니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아무튼 민폐라서!” 거기까지 말하다 갑자기 불이 붙은 듯 그는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녁부터 마당에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해요. 그것도 일반적인 소동이 아니에요. 모닥불을 피우고 스피커를 꺼내와서는 영문을 모르는 음악을 주야장천 트는 거예요. 대략 5시 정도부터 한밤중까지요. 믿어지나요? 하루 이틀 정도야 집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그래요.” 말을 꺼낸 구노 씨의 얼굴은 금세 뻘겋게 달아올랐다. “제일 화가 나는 게 본인들은 음악 같은 걸 별로 듣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불도 제대로 끄지 않는다고요. 그렇게 놀다가 그 바보처럼 큰 차를 타고 어디론가 나가버립니다. 음악을 끄지도 않고요! 단 두 가족만 살고 있는 터라 가능한 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아내도 이제 한계입니다. 부디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면 머리라도 싸쥐고 싶었다. 현기증마저 느꼈다. 첫인상만 보건대 아쿠쓰 씨는 보통 사람이라 판단되었다. 시청에 근무하다 보면 딱 보자마자 이 사람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사람과도 자주 접한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아쿠쓰 씨의 언행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하지만 구노 씨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반대로, 만약 구노 씨의 말이 과장된 것이고 아쿠쓰 씨의 ‘음악’이 상식적인 것이라면, 구노 씨는 사소한 일로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어느 쪽이든 좋은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 pp.48~49 현재의 이코 마타조 시장은, 5년 전 선거에서 초선으로 당선되었다. 전 시장의 이름은 다카라다 후이쓰. 난잔 시 시장이었던 다카라다는 인근 세 개 지자체와의 합병 협의를 주도하여, 온갖 반대와 방해의 태풍을 어떤 때는 버드나무처럼 받아넘기고, 또 어떤 때는 뱀장어처럼 빠져나가, 합병하게 된 기초자치단체에서 한 글자씩 따 난하카마 시를 탄생시켰다. 합병을 성공으로 이끈 수완을 인정받아 초대 난하카마 시장이 된 다카라다는 갓 태어난 시에 활력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다. IT기업 유치를 추진하고, 정체 해소를 위한 우회도로를 계획하고, 무료 와이파이를 마구 설치하고, 출산에 관련되는 비용의 거의 전부를 시에서 부담할 수 있도록 국내외의 사례를 연구하게 하고, 청년 창업이나 출점에 특별 보조금을 지원하는 조례안을 기안해 재정과 공무원의 안색을 새파랗게 만들었다. 이 다카라다의 정책에 반발한 것이, 구 마노 시에서 선출된 시의회의원 이코 마타조였다. 이코는 다카라다의 재정 사용은 모두 구 난잔 시를 위한 것일 뿐, 합병에 참여한 다른 지역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노골적인 이익 공여라고 비난했다. 이코는 시장 선거에서 구 난잔 시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다른 세 개의 지역을 돌며 다카라다 시장은 당신의 세금을 자신의 고장으로 가져간다고 호소해 당선되었다. 덕분에 구 난잔 시와 구 마노 시는 눈에 띄게 사이가 나빠졌다. 새롭게 시장에 당선된 이코 마타조는, 공약대로 다카라다 시정(市政)의 부정 청산을 최우선 사항으로 삼았다.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모조리 정지되어, 적어도 시의 재정 상황은 개선되었다. 그리고 다카라다의 정책을 부정하는 것 이외에 처음으로 내세운 정책이 I턴 시범 지구 지정으로, 그것이 구체화한 것이 난하카마 시 ‘I턴 프로젝트’인 것이다. 왜 하고많은 지역 중에 미노이시인가. “살고 있는 주민이 없으니 얽매이는 것 없이 생활 공간을 제로 상태에서 자유롭게 구축할 수 있으니까.” 시장은 그런 답변을 통해 미노이시가 자기 고향인 것은 일절 관계없다고 역설했다. 그 말을 믿느냐 마느냐는 개개인의 마음에 달렸을 테지만. --- pp.106~107 “열차 안이야. 간단히 부탁해.” “아, 선배. 죄송해요.” 간잔의 목소리는 어딘가 곤혹스러운 듯했다. “지금 마키노 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요. 도둑이 들었다며…….” “……도둑?” “마키노 씨가 뭘 시작했는지는 알고 계시죠?” 물론이다. “잉어잖아.” “그거예요. 그걸 도둑맞았다고 하네요.” 마키노 씨의 아이디어는 휴경논에 물을 넣고 거기서 잉어를 기르는 것이었다. 확실히 미노이시는 물이 풍부한 데다, 아직 완전한 들판으로 돌아가지 않은 휴경논에 급수를 하면 얕은 연못 정도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잉어는 수심이 얕아도 살 수 있고 상품 가치도 있으며, 수전양어라면 이미 다른 지자체에서 시도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농지 용도에 벗어난 일이 아니냐는 의혹은 있겠지만, 농지법 운용은 소생과 관할이 아니라며 눈감아준다면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엉뚱한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지역과 어울리는 계획이라 오히려 약간 감탄하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실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마키노 씨가 이미 잉어를 풀어놓았을 줄은 몰랐고, 그것이 도난당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좀 이상하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각은 밤 10시에 가까웠다. “……마키노 씨는 이런 시각에 전화를 건 거야?” “네…….” 이주자들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소생과에 연락을 하라고 말은 했지만, 마키노 씨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 pp.11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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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위기의 마을을 되살릴 ‘I턴 프로젝트’
요네자와 호노부가 그리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극치! 모든 주민이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요양 센터로 떠나고, 마지막 남은 주민까지 자살을 시도한 후 6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유령 마을 ‘미노이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새롭게 취임한 시장은 타 지역에서 이사 오는 주민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I턴 프로젝트’를 시작, ‘소생과’라는 부서를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지만, 소생과 직원들은 이것을 일종의 좌천으로 여긴다. 공무원인 만간지는 다시 출세 가도로 돌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고자 하고, 도로 정비부터 제설작업, 통학버스 준비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마을에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가는데……. 과연 I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정말로 우연이었을까? 《I의 비극》은 공무원인 만간지가 사람들이 떠나간 이유를 하나씩 파헤치는 연작 단편집의 구성을 취한다. 우연처럼 보였던 것이 우연이 아니고, 호의로 보인 것이 호의가 아님을 깨달은 순간, 만간지는 놀랍고도 씁쓸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 편 한 편의 단편은 본격 추리이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는 순간 거대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가적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고령화, 저출생, 일자리 감소, 청년이동, 인구감소……. 《I의 비극》 속 일본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오늘,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갈등, 미스터리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한국보다 먼저 이 같은 문제를 겪은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청년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해 빈집을 고쳐 싼값에 임대하는 한편 일자리를 찾아주고 이주비를 지원하는 일명 ‘I턴 프로젝트’를 시행해 왔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을 ‘I턴’이라고 부른다.) 노력이 결실을 맺어 활성화된 도시도 있지만, 대부분 막대한 세금만 투입된 채 실패로 끝난 것이 현실이다. 실패 이유는 다양하다. 여전히 부족한 일자리, 불편한 교통, 열악한 의료, 문화 시설의 부재……. 이 같은 지방도시의 씁쓸한 현실을 요네자와 호노부는 놀랍게도 ‘미스터리’라는 틀에 담았다. “미스터리 작가로서 한 번은 폐쇄된 땅을 무대로 삼고 싶었다.” 미스터리 작가와 독자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창조하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I의 비극》을 집필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스터리 작가로서 한 번은 ‘폐쇄된 땅’을 무대로 삼아, 미스터리의 이상향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기술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현대, 미스터리 작가들은 과거의 작가들보다 많은 제약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은 마을 ‘미노이시’는 모두가 떠난 채 방치된, 순수한 미스터리 해결이 가능한 공간이다. 게다가 주민 전원이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독자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원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추리소설 작가에게나 공정한 두뇌 싸움을 원하는 독자에게나 더없이 완벽한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추구하고자 한 것이 단순히 미스터리인 것은 아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일본 내에서 있었던 ‘굳이 소도시를 되살려야 하는가’ 하는 회의적인 목소리에 대해서도 작가는 지적한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굳이 외딴 지방에 계속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하는 물음에 반박하기 힘든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결코 그 논의에 동의할 수 없는 마음도 있다. 살아가는 것은 본래 합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렇게 오늘날 작가들이 직면한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주제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