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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열두 달

: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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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526g | 150*215*18mm
ISBN13 9791172036607
ISBN10 117203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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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바람과 함께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나일강이 범람한 덕분에 밭은 아직 물에 잠겨 있었다. 바키는 비교적 가벼운 집안일을 끝마치고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마을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다시 집에 돌아가면 점심을 먹고 한숨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 있으리라. 그러나 농부는 집이 가까워지자 발걸음을 멈추고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 집으로 들어갈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낯선 두 남자가 그의 이웃집 문 앞에 서서 집주인과 뭔가를 다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는 나리처럼 말쑥한 옷차림이었고, 다른 사람은 간편한 옷차림에 무시무시해 보이는 창을 들고 옆구리에는 짧은 단검까지 차고 있었다. 바키는 방향을 바꿔 물에 잠긴 밭의 가장자리를 가로질러 뛰었다. 집에 도착하자 몸을 낮춘 채 재빨리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천을 슬쩍 젖히자 아까 보았던 낯선 남자들이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 여기로 오면 남편은 집에 없다고 해.” 바키가 무투이에게 말했다. “다리를 다쳐서 먼 곳에 있는 친척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 말하라고!”
--- p.74

로이는 일하는 동안에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의 주인 또한 탁월한 솜씨를 지닌 뛰어난 일꾼을 방해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해 스물다섯 살로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로이는 여자에게도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어울리는 짝이 있다면, 진흙으로 구운 항아리일 거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지난주에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둥글넓적한 항아리를 수백 개나 구워냈는데, 특별히 어렵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 p.78

“우리가 쓰는 파피루스 종이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 우선 칼로 가져온 파피루스 줄기의 바깥쪽 녹색 껍질을 벗겨내고, 안쪽의 흰색 줄기를 가느다란 끈처럼 잘라낸다.”
다기는 잘라낸 흰색 줄기의 두께와 길이가 놀라울 정도로 균일한 것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두 사람은 평평한 돌을 깔아놓은 장소로 이동했다. 설명은 계속되었다.
“여기에서는 아까 끈 모양으로 잘라 가져온 줄기들을 나란히 촘촘하게 붙여서 늘어놓는다. 그리고 다른 줄기들을 직각으로 가로질러 그 위에 늘어놓지. 그런 다음 가장자리에 삐져나온 부분이 없도록 자르고 다듬어서 우리 서기관들이 흔히 쓰는 종이 크기로 만든다. 그렇게 늘어놓은 줄기들이 서로 잘 달라붙도록 두드린 다음 말리면 파피루스 종이가 완성되는 거지!”
--- p.96~97

테베는 나일강을 비롯한 중요한 공사 현장들과 가까웠기 때문에 늘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 많았다. 어딘가에 베인 사람, 뼈가 부러진 사람, 배가 아픈 사람, 악어나 하마에 물린 사람,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심장이 안 좋은 사람, 임신부 그리고 심지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자꾸 찾아오는 단골 환자와 가망 없는 대머리 치료를 부탁하는 사람까지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네페르호테프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는 법이 없었고, 수술에서 찜질, 투약에 이르기까지 어떤 식으로든 치료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일종의 의학 서적인 파피루스 두루마리에는 여러 증상에 대한 조언과 치료법이 실려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치료를 주관하는 신들을 향한 기원도 적혀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마법이나 마술도 치료의 일부였으며, 신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부적이 언제나 의사의 상자 안에 준비되어 있었다.
--- p.136~137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마후는 갈라진 살의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번들거리는 덩어리를 꺼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꺼낸 창자를 준비한 그릇에 담았다. 창자에 딸린 다른 부위들을 칼로 잘라낸 뒤 그릇을 즉시 천연소다가 가득 담긴 항아리 안으로 옮겼다. 다음은 심장을 제외한 다른 장기들을 꺼낼 차례였다.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간과 위장, 폐를 떼어낸 뒤 따로 건조하기 위해 각각 다른 그릇에 담았다. 마후는 풍부한 경험과 노련한 감각으로 각각의 장기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았고, 심장에는 흠집 하나 남기지 않도록 놀라운 솜씨를 발휘해 모두 제거했다. 아마포 뭉치를 건네받은 마후는 장기를 꺼낸 시신의 끈적거리는 내부를 야자기름으로 닦아낸 뒤 더러워진 천은 커다란 흰색 항아리 안에 따로 치웠다.
--- p.167

농부인 바키는 파라오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집트의 통치자가 자신을 위해 해준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자신과 같은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쥐어짜가서는 잘 먹고 잘 살며, 백성들은 상상도 못 할 호화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던가. 파라오는 멤피스와 테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살았고, 번드르르한 배와 전차를 타고 이집트 전역을 돌아다녔으며, 자신의 변덕과 명령을 받아주는 시종과 관리도 잔뜩 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바키는 이집트의 백성으로서 파라오 아멘호테프가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신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머릿속에서 불경한 생각들을 지워버렸다.
--- p.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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