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자료 가운데 부(符)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의 명랑(明朗, -647-)과 관련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명랑신인(明朗神印)」 항목에 “법사는 신라에서 태어나 당에 들어가 도(道)를 배웠다(入唐學道)”는 내용과 「혜통항룡(惠通降龍)」 항목에 “밀본법사의 뒤에 고승 명랑이 있었다. 용궁(龍宮)에 들어가 신인(神印)을 얻었다”는 기록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 도(道) 내지 신인(神印)이란 부(符)와 관련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 p.18~19
한국에서 부(符), 부인(符印)에 대한 관심은 근세기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된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은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이 민간에서 사용되던 부적을 집성한 것으로, 그는 이 책의 「주부법(呪附法)」 항목에 전국에서 모은 각종 병을 물리치기 위한 부적의 필사본과 그 용례를 소개하고 있다
--- p.20~21
불교 부적은 인도에서 『오명론(五明論)』의 학습 전통과 맞물려 성립,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대당서역기』 「인도총설」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문으로 나아가게 할 때 ··· (중략) ··· 7살이 지나면 점차 오명대론(五明大論, pancavidy?sth?n?ni)을 가르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여기서 ‘오명대론’은 『오명론』을 말하는 것으로, 『번역명의집』에 의하면 오명(五明)이란 성명(聲明)과 공고명(工巧明), 의방명(醫方明), 인명(因明), 내명(?明) 등 5종의 명(明)을 말하고 있다. 한편 이 가운데 다섯 번째 ‘내명(?明)’을 부인(符印, 符印明)과 폐타(吠陀, Veda, 韋陀)로 대체한 것을 외오명(外五明)이라 칭하기도 한다.
--- p.45
권하(卷下)의 「용수보살오명인론(龍樹菩薩五明印論)」(第五) 항목에는 “어리석고 포악하거나 질병이 있는 자로서, 좋은 의사를 만나 치료할 때를 놓치거나 악귀로 인해 실신하거나 생사를 헤맬 때, 그리고 일체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왕난(王難)을 피하고자 하면 이 다섯 인(印)을 배워 일체중생의 중병을 치료하고, 왕난과 도적, 물과 불의 난을 물리칠 수 있음”을 전하는 가운데 ‘불정인(佛頂印)’ 항목에 3종의 부적과, ‘보살승공인(菩薩乘空印)’ 항목에 2종의 부적을 제시하고 있다.
--- p.57
돈황(敦煌)에서 발견된 불교 사본 중에는 - 현재 〈대장경〉에 포함되지 않은 - 부적이 실린 다수의 문서가 발견된다. 불교 부적이 실린 문서는 12종으로, 이 중에는 일실(逸失)된 『오명론』에 포함된 부적 역시 실려 있으리라 생각된다.
--- p.62
출산을 위한 부적으로 “이 부적은 난산(難産)에 의해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 탕약에 넣어 삼켜라 ··· (중략) ··· 이 법은 극비이니 전하지 말라. 식초로 탕약을 우려낸다”는 말과 함께 2종의 부적이 실려 있다.
--- p.84
P.3874에 실린 부적의 경우 P.2153을 참고로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1. 맨 앞에 실린 것은 부적이 유실되었지만, 기록된 내용을 통해 볼 때 P.2153에 실린 4번째 부적인 (신통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린 부적을 참조해 볼 때 2. (은형인), 3. 애락지인, 4. (현일체보장인), 5. (대지진동인), 6. 마하인, 7. (삼매인), 8. (중생안락인), 9. (구적멸정인) 9종의 부적이 실려 있으며, 부적 설명의 경우도 P.2153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p.99
돈황 사본에는 성수(星宿)와 관련된 부적이 실려 있기도 하여, 오대(五代) 중엽(926~975년경)인 10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S.Ch.liv.0033을 들 수 있다.
문서 상단에는 2인의 신상(神像)이 그려져 있는데, 상단 우측의 경우 방제란(傍題欄)에 “근청(謹請) 계도성(計都星) 호신보명(護身保命) 제자(弟子) 일심공양(一心供養)”이 기록되어 계도성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좌측 여신(女神)의 방제란에는 “근청(謹請) 북방신성(北方神星) 호신보명(護身保命) 제자(弟子) 일심공양(一心供養)”이 기록되어, 북방신성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p.126
상구리 동녀가 부처님께 “저에게 상구리법문(常瞿利法門)이 있으니, 능히 일체 세간의 모든 독을 멸할 수 있다”고 하면서 주문을 설하였다. 이어 세존께서 앞선 주문에 대한 심주(心呪)와 그 공덕을 설하였으며, 일체중생이 상구리의 진언에 따라 대이익을 얻을 것임을 설하였다.
--- p.151
부적 명칭은 생략된 채 1종의 도상이 실려 있는데, 도상 밑에는 “혹자가 써서 이르되 이것은 이 경전의 법인(法印)으로, 작법을 행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밤에 나무를 1촌 8푼의 크기로 깎아 만든다”고 부적 형태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서 대력금강다라니(大力金剛陀羅尼)로서 ‘예적대단(穢積大壇) 오추사마진언(烏芻沙摩眞言)’과 ‘기관음진언(期觀音眞言)’ 등 2종의 진언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내용을 감안할 때 이 도상은 ‘오추사마진언’ 및 ‘기관음진언’의 염송과 관련된 부적임을 알 수 있다.
--- p.153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迦蘭陀)의 죽림(竹林)에 머물 때, 한 비구가 도적에게 위협을 당하고 뱀에 물리며 귀신에 씌우는 등 대고뇌를 받게 되었음을 인연으로 경전이 시작된다. 이에 귀신 대장인 아타파구(阿?婆)는 이 비구를 보고 연민의 마음을 내어, 부처님의 허락하에 일체 극악한 귀신들을 항복 받고자 3종의 극엄악주(極嚴惡呪)와 결계의 방법 등을 설하고 있다.
--- p.154
이에 천부(天符)의 경우 생사를 벗어난 - 달이 머무는 세상 위, 또 다른 세계에 머무는 모습을 그려두었으며, 지부(地符)의 경우 달과 태양 사이에 팔을 벌린 신체의 상반부를 그려둔 모습으로, 생사의 세계에 머물고 있으나 달의 세계를 뛰어넘은 모습으로, 생사에 걸림이 없는 모습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이 부적은 ‘생사를 벗어나 해탈, 열반의 경지를 얻게 된다’는 효능의 부적으로, ‘옴 슬저리 가라로파 우흠 사바하’란 주문과 함께 지녀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p.160
고려시대의 부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는 유물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은제연화당초문천(銀製蓮花唐草文釧)’ 안에서 발견된 것을 들 수 있다. 은으로 만든 팔찌 안에서 범자(梵字) 진언 1매와 3종의 부적 인쇄물 1매가 수습된 것으로, 281 이는 고려시대의 다른 부적들과 비교해 볼 때 형태가 자연스럽고 양식화(樣式化, stylization)가 덜 이루어진 까닭에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부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 p.206
돈황 사본 중 ‘애락지인’의 경우 “애락(愛樂)을 구하고자 하면 복숭아나 무[桃木]를 깎아 인(印)을 만들어 지니고 다니면, 가는 곳마다 보는 자가 환희〈見者歡喜〉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하루를 지니면 만 가지 죄가 소멸될(帶一日 〈万罪消滅〉) 것이고 ··· (중략) ··· 7일을 지니면 해탈을 얻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은제연화당초문천 출토 유물의 경우 부적 명칭 및 제작법이 생략되었으며, 지니는 기간에 따른 효험 역시 생략되어 있다. 그럼에도 “〈諸障消〉 〈見者歡喜〉 世尊愛敬” 등 돈황 사본 중 부적의 효능 중 몇몇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p.209
송대(宋代) 내지 서하(西夏)에서 유입된 경전을 바탕으로 위 고려본 『불정심다라니경』이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위 송대의 간행본과 서하문자로 된 필사본 경전 모두 3개의 글자처럼 보이는 형태의 부적 옆에 “능구산난(能救?難)”이란 효험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