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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둑, 해울

서울, 마둑, 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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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28*208*20mm
ISBN13 9791170611271
ISBN10 117061127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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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주 흔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손쓸 새도 없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겪었다. 아내의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책임을 같이 넘겨받았으니.
--- p.22쪽

세찬 물줄기에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퍼져 나가자 멍하던 현실의 감각이 올라왔다. 몰아쳐서 맞은 공에 온몸이 욱신거려 모든 행동이 전보다 느려졌고, 한참 뒤에야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뜨끈한 기름 냄새를 집 안에 풍기며 할머니는 식탁에 앉자마자 접시 하나를 내놓았다.
“이거 묵어봐야. 쑥지짐인디, 지금이 딱 제철이여.”
기름을 이렇게 흠뻑 적셨는데도 쑥에서는 본연의 향이 배어났다.
--- p.46

좀 전까지 종알종알 말을 걸던 시현은 그 앞에서 한 마디도 뱉지 못한 채 벌을 받는 것마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현성이 차가움과 무례함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때도 싱긋 웃음 짓던 시현이 이번에는 숨겨지지 않을 정도로 표정을 일그러뜨리자 현성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더욱이 가장 큰 이유는 중학생이었던 자신이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던 순간에 홀로 울고 있던 시절이 떠올라서였다. 해울에서 할머니가 달려왔던 것처럼 현성도 시현에게 다가섰다. 현성이 처음으로 베푼 타인을 향한 호의이자, 더없는 간섭이기도 했다.
--- p.61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잠깐 와서 얼굴을 비추고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것. 해울에서 본 할머니의 모습은 이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그때 느꼈던 안정감과 추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요양원에 찾아올 때마다 조금씩 지워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견디는 건 순전히 현성의 몫이었다.
--- p.70

엄마를 잃고, 아빠도 빼앗기고 오갈 데 없는 이 외로운 아이가 해울에서 잘 적응해 나중에 돌아갈 곳이 없을 때 이곳을 떠올렸으면 했다.
마침내 그 씨앗은 해울 텃밭에 뿌리내려 꽃을 피웠다. 용담에 내려앉은 민들레 꽃씨처럼.
--- p.131

나는 어딘가 매캐하게 타오르며 연기만 흩어지고, 결국 재 한 줌 남기지 않는 존재 같았다. 내 주변은 줄곧 공허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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