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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4 1. 인간 멸종의 위기 앞에서 15 인간성의 본질과 인간의 자리 2. 짝짓기의 기쁨과 슬픔 33 사랑의 적응적 가치 3. 왜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가 49 양육 전쟁과 가족의 조건 4. 형제자매가 사라지는 세상 65 동기살해와 우애의 균형, 그리고 저출생 5. 평화로운 미래라는 망상 83 공격성과 서열의 기원 6. 이 세상의 첫 번째 사랑 103 유성생식의 시초와 동성애 7. 살려고 먹는가, 먹으려고 사는가 127 최적 먹이 획득과 영양 섭취 8. 우리 안의 방랑자 145 두발걷기와 이주 본능 9. 풍요가 만드는 비극 163 부와 자원 축적의 미스터리 10. 협력을 줄이는 복지의 역설 181 덕과 호혜적 협력의 적응적 조건 11. 살기 위해 죽으리라 199 노화와 죽음의 진화 12. 영혼을 잠식하는 감염병 219 혐오와 행동면역의 탄생 참고문헌 233 |
저박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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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쌓아 올린 세계, 그 꼭대기에서 ‘인간의 자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미물에서 시작하여 영적 존재로 향하는 거대한 존재론적 경주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천한 망나니 유인원의 세계에서 ‘아니야. 난이들과 달라. 고귀한 인간, 영국의 귀족이라고!’를 스스로 깨달은 타잔도 아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즉 대뇌의 거듭된 성능 향상 끝에 뜻밖의 ‘자기 인식’ 능력을 얻은 인공지능 컴퓨터도 아니다. 우리의 행동은 그저 우리 종이 겪어온 독특한 시공간적 생태 환경에 대한 적응일 뿐이다. 다른 모든 종의 행동이 그렇듯 말이다.
---「들어가는 말 7~8쪽」중에서 인류가 곧 멸종할 가능성이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면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다. 어딜 가도 사람이 득실거리지 않는가? 하지만 갑작스러운 성공이 트위들덤이라면 갑작스러운 실패는 트위들디다.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쌍둥이 형제다. 인류의 유전자가 서로 아주 비슷하다는 과학적 사실은 인종차별론의 허위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근거가 되지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조금은 위태위태한 팩트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는 흔히 동일한 질병에 걸리고 동일한 이유로 죽는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 인간의 행동은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비록 인류의 유전자 그리고 중추신경계에 있는 고정 신경구조물의 기능과 생리는 놀라운 수준으로 흡사하지만 결과적인 행동 양상은 대단히 복잡다단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왜 이리 다들 제각각인지? 다양한 생태학적 환경은 복수의 ‘적응적’ 행동 패턴을 낳았고 이는 다시 모자이크식 사회생태학적 조건을 창조했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단일 종임에도 불구하고 창발적 효과를 통해서 영겁의 세월 동안 다양한 행동, 다양한 사회, 다양한 문화가 나타났다. ---「1장 인간 멸종의 위기 앞에서 29~30쪽」중에서 1만 년 전 간빙기가 시작된 이후 시작된 남녀 간의 차별적 자원 공급은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1만 년을 뺀 나머지 기간에, 즉 압도적으로 긴 인류 진화의 기간 동안 남성과 여성은 강력한 짝 동맹을 맺어 협력해왔다. 강간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겠지만 항상 ‘대안적’ 번식 전략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여아 낙태나 영아살해의 전통도 그렇다. 여성 포유류가 양육 환경 조건에 대응해 자손의 성비를 조절한다고 제안한, 트리버스-윌러드 효과Trivers-Willard effect가 불러온 ‘인간적 현상’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수십 년 만에 성비 불균형이 거의 사라졌다. 혼외정사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남성의 20~40퍼센트, 여성의 20~30퍼센트가 외도나 간통, 혼외정사를 하는데 그래 봐야 겨우 제비 수준이다. 이는 곧 미국인의 60~80퍼센트가 정절을 지킨다는 말이다 ---「2장 짝짓기의 기쁨과 슬픔 48쪽」중에서 앞서 말한 대로 조류의 탁란이 성공할 수 있는 행동생태적 조건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양부모가 탁란된 새끼를 친자식으로 알고 있는 경우다. 둘째, 부모가 추가적인 새끼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자원 공급량을 충분히 늘릴 수 있는 경우다. 셋째, 환경 내 자원이 풍부하여 탁란이 아주 양호한 둥지에만 가끔 일어나는 경우다. 인간의 입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입양 아동을 친자식으로 오인하게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친족 입양이나 친족 위탁은 어느 정도 비슷한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입양 가정을 위해 재정적, 사회적 지원을 ‘과도할 정도로 넘치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반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생태적 환경이다. 입양의 필요성도 줄어들고 어쩌다 일어나는 입양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3장 왜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가 62~63쪽」중에서 동성애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최근 블랙 스완 원조 가설처럼 기존의 상식을 깨는 동성애 연구가 발표되었다. 동성애가 먼저 있었고 이후에 이성애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별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성적 행동이 더 먼저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라는 주장을 담은 연구다. 교황청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이상한’ 성적 행동이 자연의 세계에 만연해 있다. 다른 종과 교미하고, 죽은 개체와 교미하고, 무생물과 교미하고, 물론 자위도 한다. 특히 동성 간 성적 행동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려 1500종에서 관찰되었는데,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거의 모든 동물 분기군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혹시 ‘엄격한 배타적 이성애’는 ‘백조의 새하얀 깃털’처럼 예외적 현상인지도 모른다. ---「6장 이 세상의 첫 번째 사랑 112~113쪽」중에서 인간도 종종 그렇다. 마치 이망증에 걸린 새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케냐 북부에 사는 아리알족은 원래 유목 민족인데 최근 정착해서 살고 있는 주민도 많다. 도파민 수용체와 관련된 DRD4 유전자가 외향성, 유목 생활 등과 관련된다는 기존 연구에 근거해서 가설을 세웠다. 아리알족 남성 중 여전히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과 정착 생활을 하는 사람의 유전자형과 체질량 지수를 조사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유목민 중에서는 DRD4 7R+ 유전형을 가진 사람의 건강 상태가 더 좋았다. 반대로 정착민 중에서는 해당 유전형을 가진 사람의 건강 상태가 더 불량했다. ‘역마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유목 생활을 할 때 더 건강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착 생활을 할 때 더 건강했던 것이다 ---「8장 우리 안의 방랑자 160쪽」중에서 전 인구의 약 2~5퍼센트는 임상적 수준의 저장강박장애를 앓는다.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쓸모없는 물건 혹은 앞으로 필요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은 물건을 무조건 쌓아둔다. 집안은 온통 고물과 잡동사니, 쓰레기로 가득하다. 쇼핑도 너무 많이 한다. 비싼 물건보다 값싼 물건을 주로 구매하는데 공짜 물건을 특히 좋아한다. 저장 증상을 보이는 강박장애는 일부 사람만 앓는 이상한 정신장애일까? 아니다.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 저장강박을 가지고 있다. 재정적 어려움이 예견되면, 사회적으로 외로우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저장강박이 심해진다. 어린 시절에 결핍을 경험한 사람일수 록 저장강박을 심하게 보인다. 노인도 그렇다.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떨어지므로 미래를 더 불안해한다. ---「9장 풍요가 만드는 비극 175쪽」중에서 현대 산업 사회는 점점 흡혈박쥐형 전략보다는 때까치형 전략이 더 잘 통하는 쪽으로 달라지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성을 만나는 사람보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짝을 찾는 커플이 훨씬 많다. 경험자의 말로는 소개팅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이다. 주변 소개로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사실 요즘은 지인을 통한 취업이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공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물론 소위‘좋은’ 직장만 그렇다). 쌀이 떨어지면 이웃집이 아니라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편이 낫다. 궁금한 것은 옆집 대학생에게 묻기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니 친구나 동료는 그냥 같이 놀 때만 유용하다. 인류사 초유의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장기적인 호혜적 협력 관계를 쌓아 올리는 수고에 비해서 기대 이익이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비해서 ‘덕’의 비용-이득의 페이오프payoff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인간은 오랜 기간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중요한 자원일수록 점점 더 확실한 제도적 상호 부조로 갈음하고 있다. ---「10장 협력을 줄이는 복지의 역설 197~198쪽」중에서 한국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신종 감염병은 점점 늘어날 것이며 상당수는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므로 지정학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은 진화된 행동면역계를 통해 사회의 보수성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외향성과 개방성이 낮아지고 집단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 균형이 미세하게 조정되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보건의료적 개선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백신 거부와 같은 반지성주의, 외국인 혐오, 장애인에 대한 편견, 사회문화적 가치를 둘러싼 갈등 등은 마치 다른 원인을 가진 사회적 현상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진화적 기원에서 유래한다. 미생물과의 치열한 군비경쟁을 통해 공고하게 진화한 행동면역계가 현대 사회의 새로운 생태적 환경에서 큰 소리를 내며 파열하고 있다. 획득면역계가 과활성화되면 알레르기를 앓는다. 알레르기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늘어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하지만 알레르기를 치료하기 위해서 원시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해결책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 점증하는 혐오와 배제, 편견 등의 사회적 병리를 행동면역계의 과활성화에 의한 ‘자가행동면역질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튼 이를 해결하겠다면서 국경을 폐쇄하고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부족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답이 아니다. ---「12장 영혼을 잠식하는 감염병 231~232쪽」중에서 |
인간은 사는 대로 살면서 이성적이고 도덕적이고 고귀하다고 착각한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연에는 위계 서열이 없으며 인간 역시 자연의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 만물의 영장 같은 건 없다. 이 얘기를 듣자마자 마음속에서 거부감이 든다. ‘어떻게 이성을 가진 인간을 동물의 자리로 격하하는가!’ 그런데 정말 우리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이고 고귀한가? 매일 매시 만물의 영장인 만큼 최상의 판단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 사는 대로 산다. 습관에 따른다. 저자 박한선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착각이 인간 멸종의 위기를 부른다고 진단한다. 50억 마리의 개체 수를 자랑했던 여행비둘기가 멸종한 것과 똑같이 말이다. 여행비둘기는 오랜 세월 비슷한 환경에서 무리 지어 살아왔다. 그러다 환경이 좋아지자 개체 수가 순식간에 불어났고 그 결과로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높은 유전적 동일성은 재앙이었다. 환경은 늘어난 개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여행비둘기 개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했다. 적응에 꼭 필요한 유전적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조리 죽었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구석기말 인류는 고작 400만 명에 불과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80억에 이른다. 인간은 의기양양하다. 이렇게 번영한 건 인간의 지적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실패는 여행비둘기처럼 갑자기 온다. 인류의 유전자는 서로 아주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는 대개 동일한 질병에 걸리고 동일한 이유로 죽는다. 쌍둥이가 되어 가는 인류는 여행비둘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 박한선은 인간의 우월함이라는 허위를 버려야 인류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공존 없는 독존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겠는가. 이제 인정하자. 인간의 자리는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지 않다.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 이에 《인간의 자리》는 우리가 잊어버린, 아니면 일부러 무시해버린 인간의 자리를 다시 찾고자 시도한다. 원래 다정하거나 원래 이기적인 동물은 없다 그 어떤 진화론 책에서도 볼 수 없던 도발적인 주장들 박한선은 기존의 진화론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통념을 모두 거부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보는 책은 단일한 속성으로 인간을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이거나 아니면 다정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틀렸다. 인간은 맥락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전략적인 동물이다. 짝짓기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진화론자는 수컷은 오로지 많은 암컷과 짝짓기하는 것이 이득이므로 거짓과 기만을 활용하여 암컷을 농락하고 바람을 피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진화론자는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해 백년해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진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는 박한선의《인간의 자리》는 기존의 진화론에 의문을 던진다. 진화한 인간 본성은 하나로 표현되지 않는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 본성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기능으로 진화한 전략인가? 이 책은 사랑, 양육, 우애, 동성애, 협동, 자원 저장, 이동성, 영양 섭취, 노화와 죽음, 공격성, 건강과 혐오 등 보편 행동에 담긴 인간의 특정 전략과 그것이 진화한 생태적 맥락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이제껏 나온 그 어떤 진화론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가득하다. 사랑은 장기적 보상이다, 입양은 인간화된 탁란이다, 출산은 투자이고 자식은 보험이다, 평화로운 사회라는 건 서로의 거리가 멀 때나 가능하다, 동성애가 첫 번째 사랑이다, 우리는 먹으려고 산다, 역마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더 불행하다, 저축은 강박증이다, 덕과 이타성은 희생이 아니라 체외 자원 저장이다, 노화와 죽음은 살기 위한 것이다, 혐오는 면역 기능이다 등등. 저자 박한선은 다종다양한 동물 이야기를 인간 이야기와 교차하며 이런 도발적인 인간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동물도 결혼하고 이혼하며 새끼를 키우거나 버리고 노래하고 협력하며 재산을 모으고 늙고 병든다. 우리가 인간적 특징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을 동물도 갖고 있다. 동물의 특성을 동물이 진화한 환경에서 갖게 된 전략으로 파악하는 만큼 인간의 특성 역시 그렇게 연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간의 자리》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특성이 아니라 ‘전략’으로서의 인간 행동으로 다루면서 인간 중심인 편견을 버리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정말로 인간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근본적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아마 우리가 인간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왜 인간의 본성적 전략을 알아야 하는가? 알아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의 전략적 본성을 아는 것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된다. 배신과 질투가 유리한 전략인 사회는 고통스럽다. 비친족 입양에 따른 아동학대와 영아살해가 만연한 사회는 끔찍하다. 서로를 공격하고 외부인을 배척하는 사회는 고립되어 절멸한다. 박한선은 인간 본성을 아는 것은 그 본성을 되도록 모두에게 그리고 유리하게 바꾸도록 유도하는 통찰을 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럼 박한선이 말하는 우리의 본성은 어떻게 생겼는가? 예를 들어보자. 입양은 인간화된 탁란 뻐꾸기처럼 남에게 새끼를 맡기는 탁란은 이른바 ‘모성 본능’에 반대되는 모순된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탁란은 살리기 위해 버리는 행동에 가깝다. 인간에게도 탁란 비슷한 행동이 있다. 바로 입양이다. 그러나 비친족 입양이 늘어나면서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아동학대다. 비친족 입양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반대된다. 처음의 선의는 인정하지만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우리 조상이 살던 환경에서는 친족 입양이 비해 비친족의 입양은 매우 드물었다. 인간화된 탁란이 최선이 되는 사회는 불행하다. 동물 사회에서 탁란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에서 해결책을 찾아보자. 첫째, 양부모가 탁란된 새끼를 친자식으로 알 때. 둘째, 부모가 새끼 수 증가에도 자원 공급량을 늘릴 수 있을 때 셋째, 환경 내 자원이 풍부하여 탁란이 아주 양호한 둥지에만 가끔 일어날 때.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출산은 투자이고 자식은 보험 카인과 아벨에서 보듯 최초의 살인은 형제자매 간 살인이다. 형제자매는 부모의 투자를 놓고 갈등한다. 부모는 자식의 질과 연령 등을 고려해 자식의 양과 투자의 향방을 결정한다. 그런데 손위 자식은 계속해서 부모의 투자를 독차지하려 한다. 형제자매 갈등이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이유다. 부모에게 여러 명의 자식은 보험이다. 투자에 실패해 한 명이 죽어도 괜찮다. 산업 사회의 저출생은 보험 목적으로 자식을 많이 낳을 필요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생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동기갈등의 역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녀 양육에 드는 비용은 점점 높아져 부모의 투자 부담은 확 늘었다.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도 그렇다. 극단적인 출산율 저하는 예방적인 차원의 선제적 형제자매 살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의 사랑을 투자의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마뜩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고려해봐야 할 지점이다. 사랑의 시작은 동성애 사람들은 흑고니를 보기 전 모든 백조는 하얗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흑고니를 발견했을 때 충격에 빠졌다. 우리는 흑고니를 통해 인간 경험의 한계를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됐다. 태초의 고니는 원래 까맣게 태어났으며 그 후에 하얗게 진화한 것이라는 연구다. 박한선은 여기서 도발적인 추측을 한다. 유성생식의 시초도 그와 같다고. 사실 이성애가 훨씬 더 까다로운 행동이다. 짝이 같은 종인지 이성인지 구별해야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동성애, 정확히 말해 암수의 차이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성적 행위가 먼저였을 것이다. 박한선은 동성애의 시초에 관한 연구의 진정한 의미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을 하나의 원인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동성애는 기나긴 진화사를 반영하며 그 역사에는 본성과 환경의 유구한 상호작용이 있었다. 이성애는 자연스럽지만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는 주장도 그 반대도 다 틀렸다. 폭력성은 동물의 기본값 이 사실은 너무나 인정하기 어렵지만 폭력성은 생물학적 본능에 강력하게 뿌리를 두고 있다. 종 간은 물론이고 짝 탈취와 영역 방어 등을 위해 동물은 종 내에서 끊임없이 죽고 죽인다. 인간 사회에서 평화로운 시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원시 인류는 평화로웠다고? 근거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폭력은 본능이다. 원초적 공격성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랑과 도덕에 호소해봤자 별무소용이다. 박한선은 사실 인간 사회의 복잡성이란 각자의 영역을 세세하고 정교하게 규정해 폭력이 발생하지 않게 합의 매뉴얼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선점권과 위계, 서열을 인정할 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완전한 대책인 것도 아니다. 위계의 반대에는 차별과 착취가 있으니까. 인류학적 해결책은 없을까? 일단은 서로의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리적이든 지리적이든. 저축은 미스터리이자 보편적 강박증 원래 인간에게 자원을 모으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고기는 상한다. 주변 사람과 나눠 빨리 소비하는 게 좋다. 그러나 농경 생활을 하게 되며 짧은 시간에 저장 본능이 진화했다. 저장 본능은 풍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대가로 생긴 저장 강박만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평생 써도 다 못쓸 자원이 넘치는 사람도 모으고 또 모은다. 뺏기지 않기 위해 거짓말하고 타인을 불신하고 사회를 원망한다. 이게 정말 유리한 전략일까? 세계 최대의 부국에 사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괴로워하며 최저의 행복도를 기록하고 저장 강박증이 과도해 쓰레기집을 만든다. 강박증을 낮추려면 진화라는 틀을 통해 사회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내 미래의 예측 가능성을 늘려야 한다. 상대방이 사기 치지 않는다는 신뢰와 유대를 회복하는 장치가 강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사회적 신뢰의 회복은 고사하고 남보다 더 많은 자원을 모으라고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가? 덕과 이타성은 내 몸 밖에 자원 저장 하기 우리가 칭송해 마지않는 ‘덕’은 박쥐에게도 있다. 피를 나눠주는 흡혈박쥐가 그렇다. 덕은 내 몸 바깥에 자원을 저장하는 방식이다. 즉 나중에 돌려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자원과 에너지를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상호 이타주의가 덕의 진화적 토대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은 이 덕을 대신한다. 친구 대신 돈을 주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보장제도는 분명히 인간의 행복을 늘렸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개인화된 세상이다. 덕은 협력을 줄인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를 꺼려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을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박한선은 이를 “인류사의 초유의 사건”(197쪽)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사회가 정말 좋은 걸까? 우리가 정말 즐겁고 행복함을 느끼는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가는 것이 말이다. 사회적 연금과 타인과의 선물 나눔에서 오는 기쁨이 양립하는 사회를 설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진화만 가지고 세상을 모두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라는 이론적 틀을 바닥에 두고 사회학, 인류학, 의학, 정치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을 통섭해서 인간성의 본질을 올바르게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을 따지는 것이다. 우리의 지배적 전략이 고통스럽다면 그 전략이 유리하지 않은 조건을 만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