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중심성과 탁월함을 더 강조할 방법은 없다. 복음은 기독교의 유일한 메시지는 아니지만 그 위치와 존엄성, 아름다움에 있어서 단연 으뜸이다. 복음은 성경의 다른 위대한 진리들을 대체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의 초석이자 그 진리들의 참된 지혜를 드러내고 이해하게 하는 프리즘이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떠나서는 기독교도, 신앙적인 헌신도, 참된 영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복음은 인간과 천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시이며, 타락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참된 경건을 취하여 그리스도를 닮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인도하는 위대한 수단이다.
···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고백의 진실성을 입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서 으뜸이라면, 그분은 우리의 선포에서도 당연히 으뜸이 되실 것이며, 우리가 닮고자 하는 최고의 표준이 되실 것이고, 우리 삶의 탁월한 동기가 되실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한 가지만 빼고 다른 모든 것을 빼앗겨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메시지, 우리의 목표, 우리의 동기, 우리의 마음의 소망을 붙들 수 있다!
---「5. 복음은 가장 탁월하다」중에서
복음은 구원의 최고 메시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종종 성화에 있어서는 복음의 탁월함이 간과되거나 심지어 무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복음은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와 관련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인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을 처음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지만, 지속적으로 복음을 알아갈 때 우리는 변화되면서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 복음의 변화시키는 힘은 생각뿐만 아니라 마음도 움직인다. 종종 우리의 의지는 우리의 지식보다 훨씬 뒤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주의 명령에 보조를 맞추거나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그러나 복음은 마음에 작용하여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끌어내고 순종하게끔 감동을 준다.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열정은 불붙을 것이고 우리의 헌신은 불타오를 것이다.
---「8. 복음은 성화의 최고 수단이다」중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연구하는 것을 삶의 훈련으로 삼아야 하며, 목회자는 그 일을 자신의 가장 큰 직분으로 여겨야 한다. 사실, 목회자는 ‘신학적 감상’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는 매일 오랜 시간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위대한 보화를 캐내야 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보화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의 모든 수고의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관심과 사랑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고, 그들이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체험함으로써(시 34:8) 세상의 허무한 것들을 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주의 백성의 마음은 고양되고, 그들의 사랑은 고상하여지며 성품은 변화되고, 그들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안에서 완전히 만족할 것이다.
우리 중 가장 훈련이 잘된 사람이라도 복음에 마땅한 수준의 헌신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중 가장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도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에 훨씬 못 미치고 삶을 마칠 것이다. 그렇더라도 복음을 알려는 수고는 여전히 우리가 열망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노력이다. 비록 우리가 자신을 위해 세운 목표를 영원히 달성할 수 없을지라도 그 수고로 인한 영혼의 변화라는 가치는 한량없을 것이다!
---「9. 복음은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중에서
우리는 썩어 없어질 메달과 신속히 사라지는 명성을 얻기 위한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현대의 올림픽 경기자들을 칭찬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익명과 가난 속에서 평생을 노력하는 작가, 화가, 여러 예술가들을 존경한다. 우리는 홀로 세월을 지내며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무언가를 찾으려는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들을 높이 평가한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탐험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찾고, 그 영광에 의해 변화되고, 그 영광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칠 기회를 부여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과 책망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현세적이고 유한한 것을 위해 예외적인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하고 무한한 것을 위해 우리 자신을 더욱 훈련시켜야 하지 않을까?
---「12. 복음을 소홀히 하는 것의 위험성」중에서
나는 내 마음을 담아 당신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를 간청한다. 그 일을 삶의 규율로 삼고 매일 실천하라. 그리스도보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보다 당신의 헌신, 시간, 힘, 목숨을 바칠 더 나은 대상이 있을 수 있는가? 없다! 당신은 그런 대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이 신자라면, 주께서 친히 당신에게 자신을 반복해서 입증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이 어리석게도 다른 대상을 쫓아다니며 사랑할 때마다, 당신은 공허함과 더러움과 지침과 불만족에 처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올 때마다 그분은 기대 이상의 자비와 연민과 사랑을 베푸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주를 찾고 그분의 인격과 행적의 위대함, 즉 그분이 살아오신 삶과 겪으신 고난들, 그분이 얻으신 승리들,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이 이루신 구원의 위대함을 발견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매일 새롭게 결심하자. 그분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더 깊이, 더 높이, 더 오래 갖도록 하자. 우리가 이와 같은 왕을 만나는 놀라운 특권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은 우리를 찾아와서 쓸모없는 돌들을 내어놓는다. 이때 우리는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때문에 하늘의 다이아몬드를 멀리하겠는가?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기에”(잠 4:18)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된 자질구레한 것들과 그것들의 모든 오락에서 벗어나 영광을 향한 좁은 길을 따라야 한다. 때때로 어둠 속을 걸어야 하고 빛이 없을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자(사 50:10). 어둠은 결국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림자는 빛에게 자리를 내주고, 빛은 온종일 세상을 비출 것이다.
---「13. 마지막 권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