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서 개구리는 풀과 벌레를 그린 「초충도」에 주로 등장해왔다. 이 작품을 보면 꽃치자를 중심으로 매미, 잠자리, 나비, 벌이 모여들고 있다. 그 중심부에는 개구리가 늠름한 자태로 앉아 있고 곁에는 방아깨비가 금방 폴짝 뛰어내린 듯 머리는 땅을 향하고 뒷다리는 살짝 들린 채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한곳에 모여 있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런데도 상상력으로 배치한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변태(變態)라고 하는 형태적 변화를 거친다는 점이다. (……) 이렇듯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며 더 나은 곳으로 늘 도약하는 생물들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초충도」는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항시 사람들에게 일신(日新)의 긴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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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민화 속에서 자연물은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연화도」에서는 연잎이 시들어 말라 있거나, 때론 찢어져 있기도 한다. 오래도록 편안하게 살고 만사 역시 뜻하는 대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우여곡절을 동반하는 것이 또 삶의 한 단면은 아닐지, 넌지시 깨달음을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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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를 잡아주는 힘은 다름 아닌 파격에서 온 불균형의 기막힌 조화임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가장 하단의 작은 책상 위에 켜켜이 쌓인 다양한 기물은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듯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어쩐지 불편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화려하고, 춤추는 듯 활기찬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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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화조도」에서 자주 다뤄지던 팔가조는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단원 김홍도 같은 화원의 작품이나 남종화 등 문인화풍의 그림에 좋은 소재로 이어져왔다. 이처럼 긴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그것이 자못 궁금해진다. 팔가조는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미가 늙고 시력이 나빠져도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먹이를 물어다가 봉양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효금孝禽, 즉 효도를 아는 새라고 불렸다. 옛사람들에게 비친 이러한 특성은 효도와 효행을 근간으로 삼던 유교 사회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회화는 물론 공예품에도 새겨 생활 속에서 효를 실천하고자 했던 다짐의 시각화였던 것이다. 이것이 민화로도 전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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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뜻하는 ‘안녕(安寧)’일 것이다.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늘 입에 달고 사는 ‘안녕’은, 십장생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건강과 장생의 염원이 담긴 함축된 표현이 아닐까. 산과 물, 달, 소나무, 불로초 그리고 사슴, 하나같이 정화수처럼 안녕의 염원을 담을 수도, 끄집어낼 수도 있는 신령스러운 그릇들이다. 그리고 민화는 이것들을 소재로 꽃핀 우리만의 특색을 강하게 지닌 더 큰 그릇이다.
--- p.168
예로부터 모란은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로 ‘꽃 중의 꽃’이라 했으며, 부귀화(富貴花)라고도 불려왔다. 우리나라에 모란이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로 추론되며 『삼국유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모란을 그린 그림과 그씨 석 되를 보내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란은 고려시대에 이르면 더욱더 넓게 퍼져 청자나 와당의 무늬로도 그려지거나 새겨지는 등 인기를 끌었다. 모란의 파급력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기득권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퍼져 애호되었다. 우리 민화에 모란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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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다가오기 전에 집 안팎에 붙여서 벽사와 길상을 염원하던 「문배도」다. 이와 같은 그림에는 개 외에도 호랑이, 해태, 닭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호랑이나 전설의 동물인 해태와 달리 닭과 개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에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긴 시간 동안 사람과 함께하며 희생하고 도움을 주어왔기에 오히려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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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해도」는 말 그대로 물고기와 게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총 여덟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다양한 수중 생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의 배경이 물속 수초들이 아니라, 육지 위 푸른 바위에서 자라난 꽃가지들이라는 점이다. 해당화, 복숭아꽃, 목련, 정향화, 금낭화, 여뀌, 국화, 꽃 사과 열매 등 그 종류도 다양한데 금방이라도 토끼와 사슴이 뛰어놀거나 혹은 새가 날아들 것 같은 생동감을 준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것은, 다름 아닌 황복어, 돔, 메기, 오징어, 농어, 숭어, 가자미, 전복, 게 그리고 잉어들이다. 또한 장면마다 어린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어 짜임새를 더하면서도 이 생명의 연결고리가 영원히 이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의 경계가 나뉘어 있지 않은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자유의 질서가 계속되리라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갈망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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