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음식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수업이 모두 끝나고, 드디어 왕의 밥상과 마주하는 날. 흔히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왕의 밥상을 떠올리며, 갖가지 산해진미로 호화롭게 조리된 음식들의 향연을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원행을묘정리의궤〉 속에 그림과 함께 등장한 정조의 밥상은 내가 상상했던 왕의 밥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따르면, 하루 5번 수라상이 올랐다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죽이나 미음을 올리는 초조반(자릿초반이라도 함), 아침식사에 해당하는 조수라, 가벼운 점심에 해당하는 낮것상, 저녁식사에 해당되는 석수라, 그리고 늦은 밤 다과나 안주를 올리는 야참상이다. 조선의 임금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씩이나 하는 대식가였나 하는 오해도 잠시, 수라상 별로 올려진 음식들을 살펴 보니, 제대로 갖춘 식사는 하루 2끼, 조수라와 석수라뿐이고, 낮것상은 국수나 만두같은 면상이며, 초조반은 허기를 달려기 위한 간단한 죽상이다. 또한 야참상은 현대인들의 간식꺼리나 다름 없는 상이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도 아침과 점심 사이 시시때때로 강냉이며 옥수수, 초코릿이나 과일 같은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사니, 수라상을 셈하듯 꼽아 보면 나 역시도 하루에 대 여섯끼는 족히 먹는 셈이다.(pp27~28)
한국인의 잔치상에 빠지지 않는 잡채, 가히 국민요리라 할만하다. 게다가 파스타와는 또 다른, 당면의 쫄깃한 식감에 반한 것일까? 잡채는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한국의 대표 면 요리가 됐다. 그런데 우리가 잡채를 만들면서 당면을 쓰기 시작한 역사는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당면은 ‘호면’이라 하여 원래 중국에서 유래된 면이다. 1919년 일본인이 황해도에 당면 공장을 세우고, 당면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면서 당면이 우리의 밥상에 오르게 됐고,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잡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종부님께서 잡채라며 내놓은 음식은 지금의 잡채와는 사뭇 다르다. 본디 잡채(雜菜)의 ‘잡’은 섞는다는 의미고, ‘채’는 채소를 뜻한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잡채’의 원형은 다양한 채소를 한데 섞어 내놓은 음식이었다. (p60)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방식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리법 아닌가? 그 오래된 조리법을 중원의 귀족들이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그들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였다면, 맥적이라는 음식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을 법하다. 내가 질문을 하자마자, 마치 내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는 듯, 조영광 교수님은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주었다. “ 맥적은 아주 오래된 고기구이 방식이지만, 맥적이 한족의 문헌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예전의 불에 굽는 원시적인 방식이 아니었어요. 내가 연구한 바로는 이미 세밀한 가공이 이루어진 조리법이었죠. 고기구이 위에 뭔가 있었는데 그것은 농경민족이 발명한 조미료였습니다. 조미료, 다시 말해 장이 가미된 섬세한 형태의 고기구이가 바로 맥적입니다.” 정리해보면, 양념을 해서 구워낸 고기음식이 맥적이라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과연 이 맥적이라는 음식이 우리민족 최초의 고기구이였을까? 그리고 이천년 전 맥적에 사용됐던 양념은 또 무엇이었을까?
(p105)
평소에는 고기보다 채소를 즐기는 나지만, 고기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1년 동안 먹을 다양한 고기음식을 모두 맛본 것 같다. 얇게 저민 소고기에 찹쌀가루와 계란으로 옷을 입혀 부쳐내는 육전, 쫄깃한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편육, 배 채와 육질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식감의 육회, 갖은 버섯과 채소를 넣고 함께 끓여낸 소고기 전골, 수원에서 맛본 엄청난 크기의 갈비구이. 다진 소고기를 석쇠에 올려 구워 먹는 언양식 불고기에서부터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 평양식 불고기까지 우리 민족의 고기음식은 그 어떤 민족의 음식보다 다양한 것 같다. 조리법은 어떠한가? 끓이고 삶고 찌고 볶고 지지고 말리고 삭히고 굽고... 무궁무진한 조리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인의 고기음식이다.(p140)
만찬장에 도착한 첫 번째 손님은 첼리스트 정경화 선생님이다. 내일이면 해외 공연을 위해 출국을 하신다며 최종 리허설이 마치고 바로 이 곳 만찬장으로 달려왔다는 말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더니 되려 “너무 뜻 깊은 일이니까... 우리 음악으로도 한국을 알리지만 우리 음식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당연히 와야죠.” 하시며 내 손을 꼬옥 잡아주신다.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도, 사물놀이를 하시는 김덕수 선생님도, 그리고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선생님도 같은 마음으로 만찬장을 찾아주셨다. 터키대사관의 슉크루예 바야르 발시우스 부부는 한국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서 만찬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고 일본, 스리랑카, 이란, 미얀마의 대사부부는 드라마 〈대장금〉을 기억한다며 우리 음식에 대한 호감을 표해왔다. 에이미 잭슨(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은 가족을 위해 직접 김치찌개를 끓일 만큼 한국음식을 사랑한다고 전해왔고, 아시아재단의 피터백 대표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 음식의 이름을 줄줄 꿰서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시몽 뷔로(전 주한 캐나다 상공회의소 대표) 씨는 사찰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은, 진정한 한국음식 매니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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