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린도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헬라인(Hell?nes[헬레네스])으로 불렀다. 그들은 사실상 미케네인(Myceneans)과 도리아인(Dorians)의 후손이었다. BC 5세기까지 고린도인들은 아카디아(Arcadia)와 엘리스(Elis)를 제외한 펠로폰네소스(Peloponnesus) 거주민들의 대부분이 사용했던 헬라어 방언인 도리아어(Doric)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는 위대한 고전 시기의 문화였고, 1세기의 키케로(Cicero)는 고린도를 “온 그리스의 빛”(the light of all Greece)이라고 회상하였다(Pro lege Manilia 5.11). …
그 이후 라틴어가 공식어가 되었는데, 이는 로마 고린도에서 발견된 공식 비문들(official inscriptions)에 의해 입증된다. 하드리아누스(Hadrian) 통치 이전에 발견된 104개의 문서들 중 101개의 문서가 라틴어로 기록된 반면, 단 세 개만이 헬라어로 기록되었다(Kent, Inscriptions, 8/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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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이단은 바울 시대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2세기 중엽 알렉산드리아의 발렌티누스(Valentinus)나 바실리데스(Basilides) 및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비로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하고 복잡한 2세기 이단 현상의 모체는 1세기 3분기(third quarter)의 바울과 다른 기독교 저자들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철학 사상, 특히 이집트의 종교 영역에서 발전된 철학에서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구약의 몇몇 개념과 바울의 몇몇 용어나 개념이 후대 영지주의에 반영되었다는 점은 확실히 인정될 수 있지만,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개한 영지주의가 존재했다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 시대의 고린도에 영지주의적 소피아-신화(sophia-myths)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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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울은 AD 57년 늦여름에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Troas)로 갔다(고후 2:12). 거기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그는 마게도냐로 갔다(2:13). 마게도냐(아마 빌립보)에서 그는 고린도로부터 되돌아오는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인들과 화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교회에 네 번째 서신을 기록하는데, 이것이 바로 AD 57년 가을에 기록된 고린도후서의 일부(고후 1:1-9:15)이다(이러한 바울의 서신 작성 및 고린도 방문의 순서와 약간 다른 재구성을 위해서는 Gilchrist의 논문 “Paul and Corinthians”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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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는 신약의 바울 서신 중 나사렛 예수의 어록을 가장 많이 암시하고 있다. 어록에 대한 가장 유명한 암시는 7:10-11에 전해진 이혼 금지 명령과 11:23-25에 보존된 마지막 만찬 제정 말씀이다. 다른 어록에 대한 암시도 그 밖의 곳에 언급되어 있다(4:12; 9:14; 13:2). 그래서 해석자들은 이러한 어록들 중 일부를 공관복음의 “Q” 자료와 연관시키려고 했다(Robinson, “Basic Shifts,” 82-86; Balch, “Backgrounds,” 352-58; Kuhn, “Der irdische Jesus,” 311-16).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설득력이 별로 없었다(Tuckett, “1 Corinthians and Q”를 보라).
--- p.103
로마서가 바울 서신(Pauline corpus) 중 가장 중요한 서신이라면, 고린도전서는 두 번째로 중요한 서신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바울 문헌들과의 비교는 가급적 줄이고 고린도전서 자체의 신학적 가르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린도전서가 고린도후서와 관계가 있고, 두 서신의 목적지가 같아 공통의 주제를 공유할 때도 있지만, 각 주제를 고린도전서에 나타나는 그대로 다룰 필요가 있다.
다른 곳에서 필자는 바울 신학의 중심(key)을 기독론적 구원론(Christological soteriology)으로 규정한 바 있다(PAHT ㄷPT28). 바울 신학의 중심을 그렇게 규정한 근거는 사도 바울의 신학적 가르침의 핵심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고린도전서의 짧은 단락에서 연유한다.
하나님께서 전도(k?rygma[케뤼그마])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k?ryssomen Christon estaur?menon[케뤼소멘 크리스톤 에스타우로메논])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1-24).
--- p.124
바울이 퀴리오스를 이렇게 사용할 때 초기 교회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의 야웨(Yahweh)와 동등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는 빌립보서 2:10-11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거기서는 이사야 45:22-23에서 하나님에게 돌린 것과 동일한 경배가 주되신 그리스도에게 주어진다.
바울이 서신을 기록할 즈음에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주”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다(“아무 수식어가 없는 ‘주’라는 표현은 유대인의 용례에는 상상할 수 없다”는 불트만의 주장과는 반대로[TNT, 1:51]).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 아돈(?d?n)이 보통 인간의 “주인”(master 또는 lord, 창 45:8-9)을 의미하고, 아도니(?d?n?, “나의 주인,” 출 21:5)와 아도나이(?d?n?y, 문자 그대로는 “나의 주인들”[my lords])는 때로 “주”(Lord=God)에 대한 대리적 용어일 경우가 있었지만, 아무 수식어가 없는 아돈(?d?n)이 가끔은 야웨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시 114:7).
--- p.130
그러나 이 서신에서 그리스도-사건(Christ-event)의 가장 독특한 결과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해 죽은 자의 부활 안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승리이다(15:54-57). 이것은 다른 모든 결과가 지향하는 종착지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씻음, 거룩함, 의로움, 구속, 구원의 목표를 설명하기 때문이다(de Boer, The Defeat of Death, 93-140을 보라).
--- p.139~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