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풀베개
나의 「풀베개」 옮긴이의 말 |
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상품
박성민의 다른 상품
산길을 오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로 행동하면 모가 난다. 감정에 이끌리면 휩쓸려간다. 고집을 부리면 갑갑해진다. 어쨌든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 p.9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세상을 어느 정도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짧은 목숨을 잠깐이나마 살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모든 예술가는 인간 세상을 한가롭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에 고귀하다. --- p.10 기쁨이 깊을 때 근심은 더더욱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이것을 떼놓으려고 하면, 몸이 견디지 못한다. 해결하려고 하면, 세상이 유지되지 않는다. --- p.11 시인은 보통 사람보다 근심이 많은 성격이고, 평범한 사람보다 갑절은 신경이 예민한지도 모르겠다. 세속을 초월한 기쁨도 있겠지만, 헤아릴 수 없는 슬픔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 p.15 사각의 세계에서, 상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 모서리를 깎아내어, 삼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를 예술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51 그리스 조각의 이상(理想)은 ‘단숙(端肅)’이라는 두 글자로 귀결된다고 한다. ‘단숙’이란 인간의 활력이 움직이려고 하면서도 아직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움직이면 어떻게 변할지, 풍운일지 천둥일지 분간할 수 없는 데서 아득한 여운이 존재하기 때문에, 함축의 정취를 백대 후에 전할 수 있는 것이리라. --- p. 60 모순이란, 힘에서든, 양에서든, 또는 정신이나 육체에서든, 서로 상반되어 어울릴 수 없으면서, 그럼에도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물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둘 사이의 격차가 아주 클 때에는 이 모순은 점점 닳고 닳아, 오히려 세력이 큰 의 일부가 되어 활동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덕이 높은 사람의 손발이 되어 재주 있는 자가 활동하고, 재주 있는 자의 부하가 되어 어리석은 자가 활동하고, 어리석은 자의 심복이 되어 소나 말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p.94 흔히 말하는 즐거움은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기 때문에 온갖 괴로움을 품고 있다. 오로지 시인과 화가라는 사람만이, 이런 이원적 대립의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골수에 스미는 맑음을 아는 것이다. 안개를 먹고, 이슬을 마시며, 보랏빛을 비평하고, 다홍색을 평가하며 죽음에 이르러도 후회하지 않는다. --- p.101 위대한 활력의 발현에는 그 활력이 언젠가는 다하여 없어지리라는 걱정이 담겨 있다. 평소의 모습에는 그런 걱정이 따르지 않는다. 평상시보다는 담담한 지금 내 마음의 상태는, 내 격렬한 힘이 마모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과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음도 나쁨도 없는 평상시 마음의 경지에서도 벗어나 있다. --- p.103 갈탕(葛湯)을 끓일 때, 처음에는 사락사락 젓가락에 걸리는 느낌이 없다. 그렇게 참고 젓다 보면 이윽고 점성이 생겨, 휘젓는 손이 조금 무거워진다. 그래도 상관없이 계속 젓가락을 쉬지 않고 저으면, 이제는 저을 수가 없게 된다. 끝내는 냄비 안의 칡가루가, 원하지 않아도, 제 에서 앞다투어 젓가락에 달라붙는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 p.109 기교가 극에 달했을 때, 보는 이를 강요하는 것을 사람들은 추하다고 한다. 아름다운 것을 더더욱 아름답게 하려고 안달할 때,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그 정도가 줄어드는 법이다. 인간사에 있어서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은 바로 그 때문이다. --- p.125 연민은 신이 모르는 감정이며, 게다가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감정이다. --- p.166 부질없이 하얀 것은 너무 차갑다. 한결같이 하얀 것은 일부러 사람의 눈을 빼앗는 기교가 보인다. 목련의 색은 그렇지 않다. 극도의 흰색을 일부러 피해, 따스함이 어린 연노랑으로, 그윽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다. --- p.180 기차만큼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수백 명의 인간을 똑같은 상자 안에 채워 넣고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인정사정없다. 상자에 채워진 인간은 모두 똑같은 속력으로, 똑같은 정거장에 멈추며, 똑같이 증기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말한다. 나는 실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기차로 간다고 말한다. 나는 운반된다고 말한다. 기차만큼 개성을 경멸하는 것은 없다. --- p.220 |
《풀베개》는 1906년 나쓰메 소세키가 서른아홉 살에 쓴 소설입니다. 1903년 2년간의 영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소세키는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근무하게 되었지만, 유학 시절부터 앓던 신경쇠약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소설을 써보라는 다카하마 교시의 권유로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호평을 받으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풀베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연재가 끝나고 열흘 후에 쓰기 시작해 약 2주 만에 완성한 초기작 중 하나로, 소세키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빠져 있던 시기에 쓴 작품입니다.
《풀베개》는 속세를 벗어나 산골 마을의 온천장으로 여행을 떠난 한 화공이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들려주는 소설로, ‘풀베개’란 ‘여행지 또는 객지에서 자는 잠’을 뜻하는 말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코이 온천장은 구마모토에 있는 오아마 온천을 모델로 한 가공의 장소로, 소설을 쓰기 약 10년 전 구마모토에서 영어 교사로 지내던 무렵 소세키가 여행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때의 여행이 후에 《풀베개》라는 소설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인해 속세의 온갖 번뇌를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자연을 거닐고 싶었을 소세키는 아마도 그때의 한가로운 여행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풀베개》에서 소세키는 예술의 목적이 고달픈 인생에 여유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세상을 어느 정도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짧은 목숨을 잠깐이나마 살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모든 예술가는 인간 세상을 한가롭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에 고귀하다. - 본문 10p. 이런 한가롭고 풍요로운 삶은 소세키가 말한 ‘저회취미(低徊趣味)’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회취미’란 소세키가 만든 조어로, 속세를 떠나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자연이나 예술, 삶을 느긋하게 관찰하며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소세키는 이것을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취미, 쉽게 움직이지 않는 취미”라고도 했는데, 《풀베개》는 바로 이 ‘저회취미’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무렵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유럽의 자연주의나 사실주의를 따른 것이 대세로, 삶이나 죽음 같은 큰 문제에 직면한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일상의 여유로움이 사라진 소설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소세키는 차를 마시거나 꽃에 물을 주는 등 한가로운 일상도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고, 그렇게 긴장감 없이 느긋하게 전개되는 소설, 즉 “여유 있는 소설”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핵심 주제의 깊이만으로 소설의 우열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본모습을 맛보게 하는 소설도 좋지만, 또한 동시에 인생의 괴로움을 잊게 하고 위로해주는 의미의 소설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풀베개》는 물론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 나의 《풀베개》 중에서 한가로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즐기는 저회취미는 《풀베개》 속의 화공이 말하는 ‘비인정’과 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비인정’은 ‘몰인정’과는 다른 개념으로, 속세의 모든 도리와 인정, 이해(利害)와 감정을 초월한 것을 말합니다. 속세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온갖 인정을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비인정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화공은 말합니다. 《풀베개》가 나오고 얼마 후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인정에 대한 그 무렵 소세키의 갈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화공은 어지럽게 뒤섞인 세속의 정을 추하다고 여긴다. 특히 20세기는 더 추하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비인정의 여행을 떠나 잠시나마 떠돌아다니려는 것이다. 설령 완전한 비인정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비인정에 가장 가까운 인정으로 인간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 - 모리타 소헤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런 비인정은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가 강조한 ‘사생’이라는 개념과도 통합니다. 시키의 하이쿠 창작은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신념을 배제한 객관적인 사생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데, 그런 하이쿠 창작의 마음가짐은 비인정의 태도와 비슷합니다. 절친이었던 시키의 하이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소세키가 《풀베개》를 ‘하이쿠적인 소설’이라 부른 것도, 하이쿠를 지을 때의 마음이 ‘비인정’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인정’의 태도로 사람을 바라보려는 화공에게 ‘나미’라는 여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묘한 대상입니다. 나미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자기만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여자로, 화공의 눈에는 “지금까지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여자로 비칩니다. 하지만 화공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를 그릴 수 없었고, 마침내 ‘연민’이 담긴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속에 그녀의 그림을 완성하게 되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오로지 비인정을 바라며 속세를 떠난 화공이 끝내는 ‘연민’이라 는, 신이 모르는,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풀베개》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비평,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 삶에 대한 태도 등 그 무렵 소세키의 문학관과 예술관, 인생관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읽기 쉽지 않은 소설입니다. 동서양의 예술 비평을 비롯해, 한시, 하이쿠, 영시 등 동서고금의 시문학, 난해한 어휘와 불교 용어, 인물들의 대화 등,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펼쳐지는 감각적이면서 회화적인 소세키의 문장을 즐길 수 있는 소설이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게 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만약 《풀베개》가 그 아름다운 느낌을 독자에게 조금도 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것이고,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다면, 조금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 나의 《풀베개》 중에서 《풀베개》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풀베개》를 읽으며 제가 받은 아름다운 느낌을 번역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잘 전할 수 있을까. 번역 작업을 하는 동안 내내 이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소세키가 전하려고 한 아름다움의 느낌이, 번역된 문장이지만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