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은 오랜 꿈이었다. 혼잡, 소음, 매연, 바쁜 일상에서 비롯되는 각박함에 대해 여느 사람들보다 짜증이 심했지만, 특히 단조롭고 규격화된 아파트 생활이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할 때면 똑같은 세면기, 변기, 욕조가 놓인 위층과 아래층의 모든 욕실에서 비슷비슷한 사람 들이 비슷비슷한 일정으로 행동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고,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삶의 주체라기보다는 현대 양식에 맞춰 사육되는(?) 객체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종종 일었다.“
--- p.11 「여는 글」중에서
“들에 콩 수확이 한창이다. 꿩은 예년처럼 풍년이고, 놈들로서는 공짜 먹이가 넘쳐나는 풍요의 계절이다. 오늘 아침, 놈들이 찬기네 할머니 콩밭을 털었다. 나도 몹쓸 놈들이라고 혀를 차며 동조해줬지만, 무리 속에 내 꿩도 함께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은근했다.”
--- p.52 「원앙 대신 꿩」중에서
“연못을 만든 데에는 여러 목적이 있다. 연근도 키우고 조경도 하고 가뭄도 대비하고 개구리와 도롱뇽에게 산란터도 제공하고…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황폐해진 동네 수생태계의 복원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각종 야생 물고기를 채집해 풀어주는 거였다. 연못들은 도랑을 통해 동네 개울과 연결되는데, 평소에도 물을 가득 대기 때문에 배수관을 타고 내려간 각종 물고기와 새우, 다슬기, 조개 같은 것들이 온 동네로 퍼져나가게 된다. 특히 큰비라도 오면 내가 바라는 대로 대탈출이 일어난다.”
--- p.63 「버들치」중에서
“수달이 발견된다면 내 연못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게 된다. 연못에는 이미 천연기념물만 해도 원앙새, 황조롱이, 말똥가리가 찾아오고 있으며, 거기에 버금가는 걸로 자라,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등이 있는데, 수달까지 추가된다면 그야말로 ‘야생의 보고’가 된다.”
--- p.79 「수달」중에서
“물은 여느 때처럼 바닥에 잠긴 모래알 하나하나가 식별될 정도로 맑다. 누런 접시 같은 게 건너편의 깊은 곳에서 나와 이쪽 모래톱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뭐지? ‘와! 자라네!’ 놈은 대담하게도 내 발밑까지 왔다가 큰 반원을 그리며 느릿느릿 하류 쪽으로 방향을 튼다. 목과 발을 뻗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어기적어기적 헤엄치는 모습이 마치 모래 스크린에 상연되는 공상과학영화의 외계인 우주선 같다.”
--- p.102 「달래강 자라」중에서
“왜가리가 백련못에서 푸드덕 날아올라 50미터쯤 떨어진 포도나무 시렁 위에 우아하게 내려앉는다. 오늘은 또 뭘 학살했는지 배가 불룩하다. 저 녀석은 우리 집 텃새다. 연못과 도랑들을 순찰하며 물고기든 올챙이든 우렁이든, 살아 움직이는 거라면 뭐든 집어삼키는 악당이다. 순식간에 내 자랑거리였던 금붕어 수백 마리를 몽땅 제 뱃속으로 구겨 넣은 대식가이자, 그러고도 지은 죄를 모르는 철면피다. 잠은어디서 자는지 모르겠지만 낮은 항상 우리 집 연못과 근처에서 보낸다.”
--- p.141 「금붕어와 왜가리」중에서
“봄벌 깨우기를 마치고 한 바퀴 돌아본다. 올 한 해, 꿀벌과 상부상조할 봉사 주변의 식물들도 겨울잠에서 함께 깨어 초록빛 얼굴을 내밀었다. 봉사 바로 앞, 햇볕 가득한 곳은 냉이들 차지다. 성급한 것은 꽃대를 올리고 있고, 벌써 꽃이 피는 것도 있다. 냉이밭 가장자리엔 꽃다지 새싹들이 연둣빛 장미의 모습으로 땅바닥을 가득히 수놓았다.”
--- p.177 「봄벌을 깨우며」중에서
“봄은 3월 1일에 시작해서 5월 31일에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하지만 진짜 봄은 결코 시계가 삼일절 0시 정각을 가리킬 때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다. 가령 올 삼월에는 초순까지도 함박눈이 내렸었고 몇 년 전에는 사월까지 그랬었다. 진짜 봄이 시작되는 날, 다시 말해 자신도 모르게 ‘이제 정말 봄이구나!’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도시 직장인에게 그날은 불현듯 방한 외투가 덥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날일 거고, 어떤 시골 아낙네에게는 밭둑마다 은빛 쑥이 점점이 새싹을 내민 날일 거다.”
--- p.202 「참나무꽃과 소나무꽃」중에서